변종필
제주현대미술관의 야외 포토존 ‘open cage’
뉴제주일보 승인 2022.04.07
벽화는 세계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표현 장르로 꼽힌다.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벽화처럼 주술적 의미로 그려진 벽화들이 있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벽화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처럼 종교적 의미를 담은 명작으로 미술사에 화가의 이름을 남긴 벽화도 있다. 벽화는 시대를 불문하고 화가들의 창작 표현의 대표 방식이었다.
현대에서도 벽화는 여전히 창작활동의 표현방식 하나로 각광 받는다. 성당과 같은 특정 장소를 벗어나 마을재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을을 탈바꿈시키는 데 벽화가 자주 애용된다. 볼품없는 거대한 벽이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공간이 벽화를 통해 재탄생한다. 뿐만아니라 세계 유명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불리는 뱅크시와 같은 얼굴 없는 화가는 과거와 다른 파격의 표현방식과 사회적 이슈를 담은 벽화로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특정 장소의 벽화는 불특정 다수에게 사회적 메시지의 전달 효과를 낸다.
제주현대미술관에도 벽화가 등장했다. 그동안 야외공간에 자연환경을 이용한 조각이나 설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벽화전시는 처음이다. 장소는 현대미술관의 직원주차장 쪽, 본관 계단과 이어진 벽면이다. 이 벽면은 건축 당시부터 사각의 뚫린 창으로 설계됐다. 벽을 볼 때마다 자연의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게 설계한 건축가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창을 ‘자연의 창’, ‘우연의 창’, ‘생각의 창’으로 부른다.
창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자연을 보여주곤 한다.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담은 창이 되었다가, 어느 시간엔 구름으로 가득한 창이 되어 준다. 그러다 운 좋으면 한 번쯤 날아가는 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로 창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이 벽화를 그리게 된 화가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구헌주 화가가 이 벽에 ‘새’를 그렸다. 제목은 <open cage>이다. 겨울 날씨가 아직은 매서운 2월,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벽화에 몰입한 화가의 손끝에서 흰 벽면이 점점 새와 새장의 그림으로 채워졌다. 오직 스프레이 페인트만을 사용해 실제 존재하는 현실처럼 사실적인 그림이 탄생했다.
새장에는 한 마리 새가 있다. 봄 햇살을 받은 새의 깃털이 반짝인다. 그런데, 날아가 버린 짝을 그리워하는 걸까? 창밖을 응시하는 모습이 어딘지 외롭고, 애처롭다.
새장은 애초에 애완동물로서 새의 안전을 위해 설계했지만, 새의 입장에서는 감옥이다. 현실보다 몇십 배는 큰 새장은 때때로 새보다 인간을 가두고 있는 현대사회의 창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장은 여러 고정관념, 몸과 마음을 가두고 있는 생각의 틀일 수 있다.
<open cage> 벽화에는 반전이 있다. 벽 뒤로 돌아가면 뜻밖의 또 한 마리의 새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 막 자유를 찾아 새장을 빠져나온 새일까? 날개를 활짝 펼치고 경계하듯(혹은 무엇인가를 붙잡기 위해) 발톱을 세우고 날갯짓하는 모습이 힘차 보인다. 난간에서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거대한 새의 발끝과 닿을 것 같다.
구헌주의 <open cage>는 자연과 인간, 자유와 속박, 그리고 건축과 미술 등 보는 관점, 생각의 차이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는 그림이다. 생각의 차이가 색다른 경험을 이끈다.
자유의 행복을 이색 연출을 통해 느껴보고 싶다면, 제주현대미술관의 <open cage>의 만남을 추천한다. 추억과 마음에 오래도록 간직할 인생샷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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