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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국-공간의 해석_상실

변종필

조윤국의 살아가는 공간의 해석

- ‘상실’ 작업에 관한 몇 가지 인상

 

1.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라고 말한다. 외형적 닮음이 아닌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요소, 즉 작가의 생각, 성격, 특성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이다. 필자가 접한 작가 조윤국은 꼼꼼하고 세심하다. 또한, 차분하고 솔직하다. 꼼꼼하고 차분한 그의 성격은 지난한 과정의 육체적 노동이 집약된 작품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2013년 이후 꾸준하게 한 가지 제작방식을 고집해온 그의 작품은 한결 정교해졌다. 과거 작품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작품제작의 밀도가 높아지고 기술적 노하우가 쌓였다. 2014년~2015년 사이의 작품에서 노출된 보존의 취약성을 보강하여 견고성과 보존성을 높이고, 표현의 단조로움은 채색과 리터치의 반복으로 다양성과 무게감을 더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작가의 작품이 유사한 내용과 형식의 반복으로 밀도와 기술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하다. 숙련의 쌓임은 작품의 제작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외형의 견고성만큼 내용의 깊이도 동반발전 했는가이다. 몇 차례 만남에서 기본적으로 조윤국의 입체작품은 작가 개인의 취향(신발, 생활용품)과 향수(아버지의 서재)에 근거한 사물과 공간에서 경험의 폭(단기간 뉴욕체류)이 넓어지면서 삶의 근본에 관심이 깊어지고 그에 따른 작가 의지와 생각도 달라졌음을 느낀다.

조윤국의 미니어처 작업은 작은 공간에서 큰 작업을 할 수 없던 시절, 드로잉적 성격으로 만들게 된 ‘신발시리즈’가 출발점이었다. 이후 주변의 개인 생활용품으로 재현의 대상이 확장되면서 골판지 작업이 하나의 표현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대상을 골판지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객체에서 공간으로 시선을 옮긴 ‘서재시리즈’, 하나의 공간에서 수십 채의 공간을 집적시킨 ‘기둥식 건물시리즈’지형의 건물모형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십 채의 집이 마치 지도(섬)처럼 펼쳐진 거대 형식으로 확장했다. 나이키신발이라는 한 가지 브랜드에서 ‘개인 공간-건물-지역이나 장소’로 확장한 과정은 사적물건과 사적공간에 집중했던 시선을 외부로 옮기면서 거주의 문제, 상실의 시대라는 현대사회의 보편적 현실문제로 전이된 부분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특히 입체에서 부조형식의 펼친 면으로 변형을 준 시도는 수집의 소유욕이 만들어낸 작품, 즉 작가 개인의 취향과 사적공간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잠식해가며 일으킨 ‘살아가는 공간 문제’로 확장한 부분은 그동안의 작업이 하나의 지도처럼 펼친 면으로 집약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2. 집은 인간의 안락함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지만, 불변의 대상은 아니다. “모든 집은 위협받고 있다”라고 했던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현대사회에서 집은 빠르게 변화·발전하며 과거의 존재감을 잃어간다. 재건축과 재개발의 바람 속에 과거 건물이 강제 철거되고, 세월을 견뎌온 집들은 노후 되어 사라진다. 결국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자의든 타의든 그 존재성을 장담할 수 없다. 주인이 물건을 버리거나 팔고, 집주인이 집을 떠나는 순간 그동안의 존재가치와는 전혀 다른 대상으로 남는다. 조윤국이 애장품(나이키)을 판 후의 감정, 동네 집들이 철거되는 광경에서 느낀 감정 등 스스로 어떤 대상의 존재성이 사라진(파괴된) 후 남겨진 상실의 감정을 집적시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예컨대 서재시리즈가 지닌 내밀함은 작가 개인의 집착이 만들어낸 공간을 들여다보는 호기심보다 지식의 보고가 폐허처럼 잔존해있는 모습에서 느끼는 허무, 불안, 상실에 있다. <서재>(2012), <책을 파는 거리>(2013), <오래된 방>(2014) 2012년부터 꾸준하게 제작하던 서재시리즈가 2015년 한동안 제작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6년 서재 시리즈가 재등장했다. 외형적 틀거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 속 공간은 더 깊어지고 이곳저곳 흩어진 물건들은 미처 끝맺지 못한 이야기처럼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다. 마치 작가의 고뇌와 방황의 흔적들을 보는 듯하다. 서재에 널린 다양한 사물은 잊혀진 이야기, 못다 한 이야기, 꿈꾸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마주하던 불안감과 욕망까지.

서재시리즈가 여전히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지식의 욕구처럼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작업에 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킬 수 없었던 것들, 지켜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애틋함이 작품에서 묻어난다. 무엇보다 2013-2014년 가로형의 서재가 2016년 작품에서는 공간의 표현과 해석이 깊어진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는 공간의 표현에 그만큼 자신감과 동시에 조형적 완결미에 집중한 결과로 보인다. 지극히 개인의 편린적 경험에 기반을 둔 작업이지만, 그가 보여준 작품들은 철저한 계산보다는 직관으로 감지되는 공간인지감각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조윤국의 작품에서 현재 작가로서 성과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부조식 평면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2015년 미국 뉴욕 맨해튼 근처(퀸스)의 낡은 건물에 잠시 머물었던 경험에서 나왔다. 나온 부조식 작품은 작품이다. 보는 관점에서 따라 ‘섬’ 같은 형태를 띤다. 사실 전작의 기둥시리즈는 레고장난감을 조립하는 과정처럼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이나 무의미한 채움 같은 인상이 강했다. 이에 견주어 부조식 평면 시리즈는 위로 쌓아가던 건물 덩어리를 옆으로 쌓는 구성력부터가 다르다. 건물이 옆으로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다는 조형적 즐거움을 준다. 무엇보다 건물들이 빼곡히 붙어있는 뉴욕 맨해튼의 공간을 제대로 파악하고 조형화한 부분이다.

‘서재시리즈’와 ‘기둥식 시리즈’가 체험에 근거한 실체적(구체적) 공간이라면, ‘부조시리즈’는 추상적 공간에 더 가깝다. 전자의 작품들이 일정한 박스크기, 입체의 크기가 얼마간의 범위 내로 고정되었다면, 후자는 고정된 틀이 없고, 면적과 부조의 높낮이, 작품의 면적 등에서 앞선 시리즈보다 수학적 범위를 벗어나 자유롭게 새로운 공간구성으로 형성하고 확대·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3. 우리는 누구나 ‘상실의 시대’를 산다. 어떤 기억이나 정신, 자격이나 물질, 권력 등 인간의 삶에 관계한 것들은 상실된다. 물질의 사라짐이 아닌 정신의 망각도 마찬가지이다. 상실은 사전적 뜻처럼 어떤 것을 ‘잊거나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는 것이다’ 조윤국의 ‘상실’시리즈도 같은 맥락이다.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익숙한 것을 잃어버린 기억들이 작가에는 상실이라는 단어를 남겼다.

궁극에 조윤국의 작품은 개인의 삶에서 되풀이되는 ‘상실’의 근거를 입체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종이박스라는 보잘 것 없는 물질이 살아가는 공간, 존재의 가치를 묻는 메타포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골판지사용의 타당성과 효율성, 명제의 명확성, 작품표현의 다양성, 작품의 보존성 등 여러 형식적 측면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살아가는 공간 문제에 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내밀하게 정착된 작품으로 이어가야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어온 과정들이 단순히 손재주에 느끼는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살아가는 공간에서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찾기 위한 시도라는 점이 작가로서 발전 가능성을 높여준다.

삶의 철학은 혼돈의 시기를 거치며 그 존재 가치가 더 빛난다. 몇 차례 만남에서 현재 조윤국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일련의 혼돈은 작품이 지닌 의미와 가치의 명료성을 세우기 위한 새로운 문제 제기와 과감한 실험적 시도는 필연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솔직히 조윤국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 글을 쓰면서도 그의 작품에서 받은 일관된 인상은 상실, 방황, 고뇌, 삶에 대한 진솔한 태도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보다 남다른 공간인지력이다. 이에 건축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입체의 안과 밖의 형식과 의미를 내외적으로 견고하게 구축하는 방법, 다양한 형식과 새로운 시도의 전시방법, 더하여 모든 작업과정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정리해나가는 것들을 병행하며, 조형적 완결미를 추구하는 작업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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