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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빛의 모나드’, 그 영원의 세계

변종필

ARTSIDEGALLERY -2015.8.26.- 9.10

 

박현주의 ‘빛의 모나드’, 그 영원의 세계

 

 

박현주 작가하면, ‘빛’이라는 주제 하에 화려한 금빛을 발산하는 육면체의 금박나무패널박스, 수평과 수직의 기하학적 화면구성, 생기 있는 파스텔톤의 긴 바(Bar)와 점(Dot)이 이뤄내는 착시 효과작업이 떠오른다. 평행선, 동심원과 같은 단순 조형요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색채의 다중 조합과 배치를 통해 진동이나 시각적 착시를 유발하는 작업을 통해 ‘빛’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다. 시각적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옵티컬아트와 유사함을 지녔지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작가가 추구해온 일관된 작품세계가 단순히 특정 미술사조에 국한되지 않고 차별화된 형식과 내용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현주의 작업은 크게 캔버스를 이용하는 평면작업과 반 입체의 성격을 띠는 입체작업으로 양분되는데 이번 <빛의 모나드>전시는 각각의 유닛(unit)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는 식의 공간 설치 방식을 채택한 입체작업이 주를 이룬다. 과거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시도했던 화면구성에서 한층 간결하고 단순해진 표현형식을 취하였다. 기존의 평면화면 속 바(Bar)와 점(Dot)이 독립적 개체로 분화되어 입체화된 형식이다. 특히 개별화된 유닛 표면을 스펀지 롤러를 이용하여 그라데이션 효과를 극대화하고, 단색조에서 다색조에 이르는 색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 눈에 띈다.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다양한 색조로 분사되어 입체표면을 덮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옵티컬 아트의 시각적 효과를 이끈 것이 선(線)이었다면, 박현주 회화의 시각적 효과를 리드하는 것은 색(色)이다.

색과 더불어 박현주 입체작업의 시각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화려한 금박이다. 그녀 작업의 핵심으로 알려진 금박기법은 동경예술대학 재학 중 유화재료기법연구소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모사실습수업과정에서 프라 안젤리코의「리나월리(Linaiuoli)성모자상」을 모사할 당시 그 그림에 사용된 조형기법에 매료된 이후 사용해온 기법이다. 재현을 통해 표현방법을 탐구하던 중 우연히 마주하게 된 금박기법이 현재의 작품세계를 이끌었다. 황금배경 템페라의 성스러운 빛이 ‘빛’이라는 근원적인 명제에 이르게 된 계기였다.

 

박현주의 금박면은 ‘현실과 비현실, 물질과 정신, 입체와 평면, 수직과 수평, 사각과 원 등의 서로 모순되면서 대조되는 요소들이 한 화면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세계임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다. ‘창이 없는 모나드는 저마다의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살아있는 우주의 거울이다’*라고 한 라이프니츠의 지론에서 보면 반사라는 물질적 특성을 지닌 박현주의 금박은 거울의 역할인 셈이다. 금박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각적 착시효과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금박면은 정면이 아닌 측면에 표현되어 벽면에 설치된 다수의 오브제가 측면끼리 정반사를 일으키며 자체적으로 빛을 발산하는 듯한 은밀함과 신비로움을 준다. 여기에 오브제가 서로 부딪히는 반사효과로 평면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렇듯 금박면은 색의 시각 효과와 더불어 박현주의 독자적 빛의 세계를 특징짓는 조형요소로 각별하다. 과학적 도구와 기술로 디스플레이를 극대화하여 빛의 효과를 드러내는 라이트 아트(light art)와는 분명히 다른 표현이다.

박현주의 이번 전시에서 표현기법의 개별성과 더불어 주목할 것은 ‘빛의 모나드’라는 전시 타이틀이다. 작가는 모나드(monad, 單子)의 사전적 정의인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 실체로, 비물질적이며 우주의 일체의 사상을 표출하는 우주의 생명 활동의 원리’의 측면에서 접근했다. 작업에서 반복되는 오브제의 유닛이 ‘단자를 궁극의 원리로 하여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과 상통한다. 라이프니츠가 모나드의 구성원칙을 부분과 전체라는 형이상학적 구도로 설명한 것처럼 박현주는 빛의 단위를 근본적인 형이상학으로 접근했다. 작은 것(소우주)에서 큰 것(대우주)으로, 부분(하나)에서 전체(여럿)로 이동한 후 다시 시작점으로 회귀하는 지각 이동을 강조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처럼 그녀 작품에서 유닛들은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전체 그림의 한 조각을 이루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하나는 전체고, 전체는 하나(一卽多 多卽一)’라는 세계관과도 연결된다.

 

박현주는 ‘모나드’를 이번 전시의 핵심어로 삼았지만, 실질적으로 <빛의 모나드>를 통해 표현하려는 세계는 기존 작업과정과 마찬가지로 자아성찰을 위한 자기수행과 치유로써의 빛이다. 빛이 지닌 파장, 흡수, 반사 등 빛의 물리적 특성을 넘어 정신적, 상징적 측면에 주목했다. 한마디로 빛을 탐구하는 과정을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여기며 외형적 화려함보다 내면의 깨달음을 중시했다. 이는 10년(1997~2007)간 지속했던 연작「Inner Light」에서부터 축적해온 세상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와 연관지을만하다. “서로 모순되면서 대조되는 요소들이 한 화면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세계, 불확실하고 어두운 오늘날의 현실에서 삶에 지친 영혼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그리고 싶다.(작가노트)”는 고백의 실천이다. 여기에는 동서양의 구분도 없다. 금박기법은 성상화에서 차용했지만, 정작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동양적 정신세계에 밀착되어 있다. 이는 불교적 세계관을 지닌 용어나 화제에서 드러난다.「Inner Light」Documentation 에서 언급했던 ‘공관(空觀, 현상의 배후에 고정적인 실체는 없다)’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니르바나’(Nirvana, 涅槃, 일체의 번뇌를 해탈한 불교의 최고의 높은 경지) 라는 범어를 화제로 삼은 부분에 지향하는 세계관을 드러냈다. 결국에 박현주 작가에게 빛은 동서양의 종교를 초월한 희망이며, 살아가는 생의 에너지이다.

 

Park Hyunjoo, Nirvana, 240×130×12cm(WHD) wood, gold-leaf, acrylic, 2015

 

빛은 초월적이다. 특정 공간에 가둘 수 없고, 특정 이미지로 고정할 수 없다.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절대 빛은 없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체계가 오감과 과학체계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철학 정신이었듯이 빛은 하나의 형식과 내용으로 규정짓거나 가둘 수 없다. 단지 머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실체와 존재를 지각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뿐이다. 빛을 인간의 시각 속에 잡아두겠다는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지금까지 전시방식이 빛을 인공적으로 연출하는 제한적 시도였다면, 앞으로는 작품의 내면과 자연이 발산하는 빛의 특성이 한층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라이프니츠 <모나드론>의 핵심주제인 ‘모나드, 신, 세계’와 자신이 추구하는 빛의 세계를 아우르는 한층 정교화된 논리도 필요하다.

궁극에 박현주의 작품이 발산하는 빛의 일루전은 시각과 촉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념의 표현이다. 자연의 참된 원자인 모나드를 ‘빛의 모나드’라는 자신만의 빛의 세계로 끌어낸 영원(永遠)의 투영이다. <빛의 모나드>전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빛처럼 언제나 자기 변신을 꾀하는 박현주 작가의 섬세한 지각이 발현하는 또 다른 빛의 아우라다.

 

* 라이프니츠 지음 , 배선복 옮김 『모나드론 외』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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