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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인체-치유와 생성의 자기위안’

변종필


 



- 비평워크숍을 통한 유성호의 작업에 관한 몇 가지 인상




1.
작가 유성호는 인체 원형을 제작할 때 유토(Oil clay)를 사용한다. 그가 찰흙 대신 유토를 사용하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는 유년시절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한 이후 지극히 제한적 삶을 살았다. 피부에 약간의 영향이라도 주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했다. 습관이 돼버린 물질에 대한 경계심은 삶의 영역을 여러모로 축소시켰다. 여기에 대학졸업을 앞두고 재발한 병, 7년의 휴학과 14년 만의 졸업, 온전히 작업에만 몰입할 수 없었던 환경 등 그가 작가로서 극복하고 인내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틈틈이 유토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캐스팅까지 진행하지 못한 작품이 다수다. 완성작을 보관할 수 없는 환경과 작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맞물려 캐스팅까지 가지 못했다. 현재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Sunlight>는 캐스팅 직전 파기한 작품으로 그동안 유성호의 작업과정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이다.

결과적으로 찰흙을 다룰 수 없는 신체의 아픔과 개인작업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환경적 요인이 유토를 선택한 동인이다. 유성호에게 유토는 재료로써 작업의 폭을 제한했지만, 신체적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며, 유토의 특성(굳지 않는 성질)이 한정된 공간에서 조형적 탐구를 지속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 점에서 유성호 작가에게 유토는 단순한 하나의 재료가 아닌 현재 그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재료로써 피부 같은 존재다.
 


2.
유성호는 인체를 다룬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에서 몸을 대상으로 모더니즘의 틀을 깨는 작가들(폴 매카시, 제임스 크록, 제프 쿤스, 로버트 고버 등)의 파격적인 시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론 뮤익의 작품처럼 압도적인 크기의 반전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스타일도 아니다. 이상적인 몸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전통을 전복시키고 패러디와 패스티시, 과장의 극대화로 몸의 변형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반영하지 않는다. 이 같은 흐름에 견주어보면 유성호의 인체는 지극히 고전적이다. 신선함이나 파격적인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자칫 인체의 사실적 재현에 머문 진부한 형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그러나 현대조각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목표를 단념했다고 해서 위대한 손기술이 돋보이는 전통조각의 가치마저 소멸하지는 않았다. 미켈란젤로에서 베르니니, 로댕에 이르는 전통적인 인체 조각술이 여전히 황홀한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듯이 인간의 감성을 흔드는 인체조각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유성호 작업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현재 유성호의 작품이 지닌 매력은 뛰어난 손기술과 진한 노동의 힘에 있다. 섬세한 손의 감각에서 나오는 인체의 질감을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조형감각과 땀이 느껴지는 노동력을 지녔다. 이는 작가지망생으로서 미술대학의 아카데미 형식에서부터 축적해온 힘이다. ‘인체를 사실적으로 조각하고, 해부학적 자료와 미술학적 자료에서 근육과 뼈를 관찰 한다(작가노트)’는 말처럼 그는 전통조각의 형식을 고집해왔다. 실제 2001년~2013년까지의 작품 <Laocoon>, <Teamptation>, <끼리끼리>, <화몽(花夢)> 등은 조형성 탐구를 위한 자기 모색과정의 결과물이다. 그 과정의 산물 중 대표작이 졸업 작품으로 내놓은 <Gloomy Sunday>이다. 여체의 아름다운 곡선을 음악적 선율과 조합시켜 고전적 미(아카데미 형식의 전형)를 추구했다. ‘Gloomy Sunday’는 1933년 헝가리에서 발표된 곡으로 특유의 고독함과 쓸쓸함 때문에 자살의 찬가로 알려졌는데 작가는 이 곡을 들으며 ‘많은 현악기 중 바이올린이 가장 슬픈 음색을 지녔다’고 느껴 작품의 모티프로 삼았다. 인체 전체를 검은 색조로 감싼 것은 ‘Gloomy Sunday’의 치명적 우울함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기 위함이다.


 
3.
유성호는 작품제작 시 직접 모델을 두고 작업하지 않는다. 형편상 이유가 크지만, 미적 완벽함을 갖춘 여체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더 크다. 현재는 구상한 자세와 유사한 이미지를 수십 장에서 수백 장 찾아 모형화하고, 반복 수정을 거쳐 원하는 형상을 완성한다.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Zeuxis)가 미인의 대명사인 헬레네를 그릴 때 부위별 아름다움을 지닌 다섯 명의 신체를 조합해서 완벽한 한 명의 미인을 완성했듯이 유성호는 수많은 여체의 이미지 중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동세에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선택하여 모형화한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완벽한 비례미와 사실적 동세를 형성하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고증을 통한 세심한 제작방법은 앞서 언급한 <Gloomy Sunday>작품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미간을 찡그리는 표정, 바이올린의 연주 시 손동작, 왼쪽 엄지발가락이 치켜 올라간 자세 등 연주자가 바이올린 연주에 몰입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살리기 위해 실제 바이올린 연주자들과 인터뷰를 거쳐 표현의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정경화의 연주 동영상을 수십 번 보면서 바이올린 연주에 스스로 몰입되는 과정을 통해 작업의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할 만큼 작품제작에 임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4.
인간의 육체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육체는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는 시작점으로 중요하다. 육체는 인간존재의 실존적 증거이다. 특히 여체는 인류의 모태이자 원초성의 출발이다. 여체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많은 작가에게 창조적 표현대상이 되어 왔고, 여전히 창조적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 꼽힌다. 유성호 역시 <Gloomy Sunday>, <One>, <Sunshine>, <번뇌화(煩惱花)> 등 작품에서 보듯 여체가 지닌 고전적 아름다움을 재해석하는 것에 집중해왔다. 특히 여체에 담긴 원초성과 곡선미 표현에 주력했다. 이는 ‘인체의 아름다운 미묘한 능선, 굴곡을 조형적으로 재해석 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묘하고 독특한 선의 조형적 특성에 집중해 작업을 진행한다.(작가노트)’는 말처럼 독자적 조형언어의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유성호의 작품은 오랜 학습기를 지나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찾기 위한 출발점에 있다. 아픔을 딛고 다시 흙을 만질 때의 감동이 단순히 감성적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고심한다. 그래서 처음 조각가의 길을 선택했을 때보다 절실함이 더하다. <Sunshine>과 <번뇌화>의 작품은 이러한 절심함을 대변한다. 두 작품 모두 소품이고 누군가의 형식에 기댄 학습의 흔적을 떨쳐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여체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쫓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인물의 내면을 한층 깊이 있게 표출하기 위한 시도는 긍정적 변화다.

<Sunshine>은 “단순히 미적으로만 예쁘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이지만, 고통의 깊이만큼이나 그 절실한 희망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이 작품은 희망적 햇빛, 햇살의 표현뿐만이 아닌 불행한 삶속에서의 행복한 삶에 대한 갈구를 표현한 작품이다.”라는 그의 고백처럼 불편하게 움츠린 자세에서 오른손을 하늘로 뻗어 빛을 뿜어내는 구(球)를 응시하는 것은 절망 속에서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번뇌화>의 경우는 “인간의 번뇌는 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답 또한 자신에게 있다. 결국, 번뇌에 대한 고통을 극복할 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는 작가의 철학적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이 작품은 평소 불면증에 시달린 작가를 정신분열에 빠지게 할 만큼 힘들게 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상 <Gloomy Sunday>, <Sunshine>, <번뇌화>의 세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유성호의 인체는 외형적으로 비치는 아름다움과 다르게 스스로 겪은 아픔, 고통, 절망, 번뇌를 극복하고 기쁨, 희망, 행복의 메시지를 담고 싶은 작가 의지가 숨어 있다. 이 점에서 유성호의 인체작품은 ‘치유와 생성을 위한 자기 위안적 고백’이라 할 수 있다.



5.
‘뚜렷하고 명료한 작가 정신의 정립’, ‘작가 의도와 완성작의 일치감’, ‘창작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업 노트나 드로잉의 축적’, ‘여체를 보는 시선의 솔직함’, ‘작업규모의 확장과 확대’, ‘인체조각가로서 자부심 유지’ 등은 인터뷰, 그리고 현재까지의 작업을 기반으로 유성호 작가에게 말하고 싶은 보완점들이다.

작업 노트는 현학적인 어투나 장황한 설명이 아닌 작업세계를 명료화하는 과정으로써 제안이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아닌 자신의 삶과 창작의 순간순간을 기록한 정직한 생각의 흔적들은 모호하고 불투명한 작업세계를 명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드로잉도 같은 맥락이다. 작업환경이 여의치 않을수록 현실을 대신할 대안을 찾는 일도 작가라면 지녀야 할 열정이다. 직관은 사라지면 그만이다. 직관적 표출을 축적할 수 있는 드로잉은 유성호 작가의 정신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작품크기에 대한 변화도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다. 입체는 특성상 크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작품의 크기는 타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시각적 효과 이외에 작품의 내용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인체는 미술의 영원한 주제지만, 표현된 모든 작품이 같은 가치를 지닐 수 없다. 고전적 형식을 답습하는 작업일수록 더하다. 따라서 유성호의 작품이 유일성(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는 인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을 갖춰야 한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변곡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 탐구와 고민의 시간은 필연적이다.

다행히 유성호가 지닌 탄탄한 구상력과 섬세한 감각은 인체조각가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작가라는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현란한 색채, 파괴행위로써 창조성을 추구하는 현대조각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고전적 형식으로 인체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가적 태도 역시 지켜볼만하다.

비평 워크숍을 통해 작가 유성호에게 갖게 된 한 가지 믿음은 그의 작품이 가능성 있는 작가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독자적 조형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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