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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항 : 박이도의 ‘Human pattern’

변종필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항 : 박이도의 ‘Human pattern’

 

박이도의 ‘Human pattern’ 시리즈의 첫 인상은 정교한 묘사로 제작된 아름다운 장식타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첫 개인전에 출품한 140개의 정사각형 세밀화(각 22×22cm, 석고판 위 연필 또는 유채)는 각각 개별성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전시 공간과 면적, 설치방법과 장소에 따라 설치의 확장성이 달라지는 특별함이 있다.

 

                                                                   2012-2014 ,석고판 위에 연필.유화 각 22 X 22 cm

 

박이도의 ‘Human pattern’은 작가가 밝혔듯이 덴마크 심리학자 에드거 루빈(Edgar Rubin)에 의해 널리 알려진 ‘루빈의 잔’을 차용했다. '형의 인식은 주변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개념을 술잔 그림으로 설명하며, 궁극에 형의 지각을 위해서는 바탕이 필요하고, 이때 바탕은 무형태의 의미를 지닌다는 루빈의 이론을 토대로 삼았다. 작가가 유독 관심을 집중한 부분은 바탕과 도형의 관계를 동시에 인식할 수 없어 심리적 작용에 따라 잔으로 보이거나 사람의 옆얼굴로 보이는 반전의 반복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이 사물을 지각하는 데는 심리적 요인의 작용이 크다. 인간의 눈은 형태를 지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 있지만, 정작 사물을 지각하는 과정에는 사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때 사물을 지각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것이 심리적 요인이다. 박이도의 ‘Human pattern’ 역시 심리적 요인에 따라 사람의 옆모습과 나무기둥과의 관계를 지각하는 반전이 지속된다. 그러나 루빈의 잔과 차별화된 ‘박이도의 잔’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요소는 색의 반전과 나무기둥에 부가한 이야기들이다. 그는 루빈의 하얀 잔을 장식적이고 화려한 나무기둥으로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초상 모델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바탕은 검은색 얼굴에서 하얀색 얼굴로 변환을 꾀했다.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사람의 옆얼굴보다 나무기둥이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작가의도가 배어있다. ‘군중 속의 개인, 개인이 모여 만들어 내는 군상, 개별적이며 통합적인 인간상을 그려내고자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인간의 초상화를 구상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관람자가 애초에 나무기둥과 사람의 관계성을 손쉽게 지각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선택적으로 얼굴모습보다 나무기둥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시각적 유도를 꾀하였다. 이는 ‘정해진 모양이 없는 나뭇결은 다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수용하기에 적합하며 마치 성화의 도상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알아야 나뭇결 안에 드러난 형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의 표명이기도 하다.

 

박이도가 나무기둥에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유학시절부터이다. 아르바이트로 여행가이드를 하면서 무료함을 떨쳐내기 위해 관광객의 신상에 관심을 두면서부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렇게 소통과정에서 얻은 정보들을 하나둘 작품에 새겨 넣기 시작한 것이 ‘Human pattern’의 출발이었다. ‘마술사, 화가, 공예가, 건축가,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군과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소녀’, ‘부엉이 모양의 물건을 30년간 모아온 할머니’, ‘자신의 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만든 친구의 이야기’ 등 각기 다른 사연들을 듣고 자신만 아는 비밀처럼 은밀하게 숨기거나 특정한 표식으로 암시하듯 그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관광객들의 직업, 살아온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외모에서 느꼈던 선입견과 실제 내면의 삶과 차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외모는 본성을 완벽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Human pattern’에 그려진 사람 옆모습만으로 모델 주인공의 실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옆모습만으로 표현모델의 이력을 지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초상화는 무명성을 지녔다. 무명성은 <배닌의 가족>과 같은 뚜렷한 제목을 부여한 작품에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의 옆모습이지만, 정작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대상은 없다. 대신 그림의 주인공과 관련한 사물이 나무기둥에 그려져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는 나무기둥은 인간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듯한 이야기들로 보이지만, 실상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오브제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감상자는 직접적 연관의 부재로 해석에 어려움을 겪지만, 나무기둥에 그려진 세심한 표현들은 궁극에 대상(모델)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열쇠이다. 그의 작품에서 사람 옆모습보다 나무기둥이 핵심인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박이도의 ‘Human pattern’은 ‘다양한 인간의 형상을 일정한 유형과 양식으로 배열한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사람에 따라 같은 대상이 전혀 다른 사물로 인식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에 따라 어떤 현상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Human pattern’는 ‘가시와 비가시’, ‘실상과 허상’, ‘바탕과 도형’의 경계에 주목하며, 이중 이미지가 주는 지각의 반전을 표현하고 있다. 박이도가 그리는 수많은 얼굴과 나무기둥은 보편적 인간의 삶과 모습을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에 서서 기록해가는 ‘수집화’이다.

 

* 키스갤러리 - 2015. 6.25-20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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