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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트가이스트’전, 과연 시대정신이 담겼나?-①

변종필

‘자이트가이스트’전, 과연 시대정신이 담겼나?


변종필 미술평론가

 

 

2013년 11월 1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했다. 옛 국군기무사령부 부지일대에 미술관 분관을 세우기 위한 발안부터 개관까지 15년, 총 사업비 2,460억 원, 공사기간 4년이 소요된 만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1986년 개관), 덕수궁 분관(1998년 개관)을 잇는 국립미술관으로서 위상을 세우고, 서울관 개관을 기점으로 한국미술의 재도약을 기대하는 미술계의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발한 서울관이 정작 개관과 동시에 기획 전시로 인한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대상은 <자이트카이스트-시대정신 Zeitgeist Korea>(이하 ‘자이트가이스트’로 약칭)전이었다. 미술관 소장품 7,000여 점 중 60여 점을 선정한 이 전시는 작가선정부터 작품배치 등 전시 전반에 많은 문제점이 제기됐다.1) 논란의 내용을 보면 ‘39명2)의 작가 중 28명(72%)이 같은 대학출신’, ‘72% 중 절반이 같은 대학 전현직교수로 구성’, ‘출품작 59점 중 27점(46%)이 대여 작품’, ‘전시연출력(작품배치와 동선) 미흡’, ‘외압에 의해 일부 작품 배제’, ‘미술관 운영의 구조적 모순’ 등이 주요 골자이다. 논란이 일면서 기획자와 미술관측에서 나름의 입장표명이 있었지만, 문제의 여진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특정 학교 작가의 작품이 대다수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특정 학교 작가의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한 부분은 그 자체만으로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출품작품들이 전시기획에 적합하다면 작가의 출신학교는 문제요인이 될 수 없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한국미술계에서 비슷한 맥락에서 반복되어온 학연을 둘러싼 파벌주의 논란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예컨대 1960년대 초 국제전 참가 선정 시비로 빚어진 ‘108인 연서소동’ 에서부터 70~80년대까지 이어진 국제전 작가 선정과 운영에 따른 시비나 미협 중심의 국전심사에서 불거진 위원선정 등 특정작가, 특정학교가 이익을 독식해온 관료주의적 풍토와 권위주의적 서열의식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반복되어온 파벌주의는 제도권 밖의 미술인들에게는 늘 대동소이한 일처럼 비친다. 불통과 독단적 운영체제를 거론하며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퇴진을 외친 목소리도 대중에게는 미술계의 헤게모니에 대한 미술인 사이의 이해득실 문제로 보일 수 있다.

이에 필자는 어떤 헤게모니나 이해득실을 떠나 ‘자이트가이스트’전이 과연 전시 기획의도만큼 객관성과 전문성을 갖춘 전시였는지 전시주제, 작품선정, 전시연출 등 세 부분과 소통 부분에 초점을 두고 되짚어 보고자 한다.

*


주제의 적절성

 

‘자이트가이스트’전은 서울관 개관 특별전시인 <미술관의 탄생>, <현장설치 프로젝트>, <알레프 프로젝트>, <자이트가이스트>, <연결-전개>의 다섯 가지 중 중 유일하게 한국 현대미술사를 다룬 전시이다. 한국 전쟁이후 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면모와 방향을 시대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정작 개관과 동시에 논란이 된 것처럼 ‘자이트가이스트’가 한국 현대미술사를 조망하는 소장품의 특성과 미술사적 가치를 포함할 수 있는 국립미술관 개관전시로 적절한 주제인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알려진 대로 독일어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는 ‘시대정신’이란 말로 해석된다. ‘시대정신’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樣式) 또는 이념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개념의 뿌리는 철학이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독일 철학자를 중심으로 등장한 시대정신은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가 1769년 제시한 민족정신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헤르더는 민족적인 정신문화(민족적 언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인류사를 인간정신의 완성으로 향하는 보편적 역사라고 파악하는 생각을 제시하면서, 시대의 정신을 나타내는 '민족의 정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칸트에게 역사는 각 시대가 각자의 자연스런 표현을 발견하는 '세계의 계획'을 펼치는 것이었다. 헤겔에게 시대정신은 특정한 사회나 문명의 정신을 형성하고 인류의 사회 문화적인 진보에 있어 그들의 위치를 규정하는 능동적인 힘이었다. 부연하면 민족정신을 세계사의 각 발전 단계에서 보편적인 '세계정신'의 현상으로 파악하고, 보편적인 인간정신이 특수적·역사적 현실 속에 펼쳐있는 가운데, 한 시대의 정신문화를 나타내는 시대정신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헤겔의 형이상학적 구성과 달리 빌헬름 딜타이는 생(生)의 입장에서 시대정신과 개인정신과의 연관을 밝히려 했다. 한마디로 생활 체험의 시점에서 시대정신을 파악했다. 현대에서는 그 시대에 특유의 사회적 상식을 가리켜 시대정신으로 부르기도 한다.3) 이처럼 ‘시대정신’은 단정적으로 이것이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철학자와 시대적 관점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미술에서 ‘시대정신’의 개념은 무엇인가? 미술에서 시대정신은 어떤 특정 시대를 풍미한 감정 상태와 사고 경향을 의미한다. 인간의 기본적 특성인 감정과 사고가 어떤 시대나 특정 시기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고유한 속성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서 1890년대 세기 말 미술의 멜랑콜리한 경향이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통과 역사를 수용하는 태도 등을 꼽을 수 있다. 미술에서 이 용어가 직접적으로 사용된 것은 1982년 독일에서 시작된 현대미술 국제전시 <자이트가이스트>에 의해서이다. 이 전시에 45명의 작가들이 초대되었는데, 보이스(Joseph Beuys,1921~1986)와 톰블리(Cy Twombly, 1929~), 워홀(Andy Warhol,1928~1987),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등 세계 각국의 유명 미술가들이 참여했다. <자이트가이스트> 전시회의 특징은 다른 시각매체보다도 특히 회화 양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점이다. 대부분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신세대 독일 작가에 관심을 둠으로써 국제무대에서 독일미술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는데 공헌한 것이 <자이트가이스트>전이다.4) 특히1982년 로젠블럼(Robert Rosenblum)이 「자이트가이스트전」카탈로그에 게재한 ‘시대정신’의 개념은 목적성에 맞서서 무목적성을, 규율에 맞서서 전적인 자유를, 원칙에 맞서서 자연발생적인 표출을, 보편적인 것에 맞서서 개인적인 것을 앞세우는 새로운 예술가들에 창작활동에 근거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를 지배했던 빈약하고 이지적이며 추상적인 양식들을 완전하게 무너뜨리려 했고, 또 미적 실험이라기보다는 유치원과 같은 느낌을 주는 심상(心象), 대화, 사물들, 물감 그리고 자유롭게 부유하는 공간 등을 택함으로써…십 년에 걸친 …기하학적 ․ 기호학적 이론, 다양한 시각적 순도와 지적 순도의 상아탑이 국제적 군단의 새로운 예술가들에 의해 비로소 침해받고 있다. 신화, 그리고 서로 용해해 가는 어수선한 형상과 색조들로 되어 있는 소란스러운 세계가, 지나간 마지막 십 년의 예술을 가장 유력한 힘으로 지배해 왔던 지성의 억압적인 구속에서 자유로워졌으며… 어느 곳에서든지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하는 폭발감을 느낄 수 있다. 형식적 투영이라는 객관적 영역이 예술가 자신의 개인적인 폭발에 의해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5)


서울관 기획전은 바로 독일의 <자이트가이스트>와 연관되어있는데, 주목할 부분은 서울관 ‘자이트가이스트’ 전시 기획자의 시대정신에 대한 개념이다. 기획자는 전시소개 글에서 ‘자이트가이스트’의 기본 태도는 1960년대,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같은 추상미술, 또는 개념미술 등의 메마르고 건조한 미술풍토를 부정한 것이었으므로 그러한 정체성의 문제가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으나, 대승적인 관점에서 ‘추상’과 ‘개념’도 그 시대의 이유 있는 형식과 내용의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는 포괄적 개념으로 자이트가이스트를 해석했다. 기획자가 차용한 ‘자이트가이스트’는 분명 미술사의 용어이지만, 그 개념은 미술사의 틀거지를 벗어난 의미이다. 철학의 관점에서 보았듯이 시대정신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하는 입장과 역사의 진보를 인정하지 않은 입장의 시대정신이 다르듯, 시대정신이 인간의 삶과 사고의 결과물인 이상 국가에 따라, 사회나 집단, 개인에 따라 상대주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서울관 ‘자이트가이스트’전도 기획자의 말대로 일견 포괄적 개념으로 접근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한국 현대미술사를 재조명하겠다는 전시에서 굳이 ‘자이트가이스트’란 용어 차용이 적절했는지는 여전히 생각해볼 문제이다. 기획자는 1980년대 초 독일 <자이트가이스트>가 정치 사회적으로 시대정신을 표현한 작품과 스타일처럼 표현주의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선정하려고 한 점을 이번 전시 맥락과 연결점으로 꼽으면서도 자이트가이스트가 부정했던 1960년대,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같은 추상미술, 또는 개념미술 등을 시대정신으로 보는 포괄적 개념을 적용했다. 기획자의 포괄적 개념대로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중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다. 작품은 작가 고유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은 대부분 시대성을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미술사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개념이 적용되었어야 했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 미술사를 되짚어보는 전시에서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전시주제와 개념을 표명하지 못한 채 해외 유명 전시명을 차용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여기에 개관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자이트가이스트’라는 용어를 차용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어온 ‘자이트가이스트’의 근본 태도와 다른 양식의 다양한 작품들을 포함시킨 것에 관한 명확한 미술사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자이트가이스트’ 용어만 차용했다면 철학사에서의 시대정신을 확인했어야 했고, 베를린의 시대정신 자체를 차용했더라면 그 정치적 목적과 지향점의 틀거지를 그대로 접목하거나 훨씬 치밀하게 번안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자이트가이스트’ 기획전의 주제는 우리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새로운 장이며, 동시에 우리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전시로서 미술사적 가치와 의미를 담아내기에는 부적절했다.


작품선정의 공정성


‘자이트가이스트’의 주제에서 오는 모호성은 결과적으로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작품선정의 공정성과 직결된다. 기획자는 인터뷰를 통해서 ‘작가보다는 작품위주의 선정이었다’고 전제6)하고 ‘시대정신의 정체성(identity)이 뚜렷한 작품들을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옳은 선택이고 설득력 있는 기준이다. 그러나 <표 1>의 ‘자이트가이스트’전의 시대별 선정작가 및 출품작수를 분류해 보면 기획자가 말한 선정기준이 과연 객관적으로 적용되었는지 그 공정성에 의문이 간다.

 

시대

선정작가 수

출품작수

(제작년도기준)

비고

1960년대

2

4

이성자7) 회화 3점, 전준 조각 1점 작품

(비소장품)

1970년대

2

2

김차섭8), 이석주 등 중복작가

(비소장품 포함)

1980년대

6

12

1990년대

13

15

가장 많은(작가와 작품) 비율을 차지함(비소장품 포함)

2000년대 이후

15

28(30)

38

60(62)

미술관측이 보도한 39명의 59점과 차이가 있음


기획자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이 한국현대미술사에서 획기적인 선을 그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에 1960-1970년대의 미술사적 중요성을 여기서 덧붙이지는 않지만,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필자도 공감한다. 그러나 정작 선정된 출품작을 보면 기획자가 강조한 시대성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의문이다. 1960-1970년대 작품은 전체 작품 중 5점에 불과하다. 그 마저도 대여 작품이고, 중복 작가이다. 현재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960-1970년대 작품은 1,000여 점9)이다. 1000점이 넘는 소장품 중에서 시대정신이 부합하는 작품을 선정하지 않은 채 굳이 대여 작품으로 대체할 만큼 절실했는지 의아하다. 이 부분은 다른 시대를 대표한 작품설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출품작 60점 가운데 실제 소장품은 32점으로 대여 작품이 28점이나 되었다. 대여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에 관해 기획자는 ‘대여품의 작품을 외부 작품이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하다. 결과적으로 비소장품도 출품됐지만 전시의 출발은 기본적으로 소장품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10)고 반론했다. 이 논리에 미술 관련자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기획자의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모든 소장품전은 그 시작이 소장품에서 시작했더라도 다른 작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과연, 해외유명 미술관의 소장품전이나 다른 미술관의 소장품전에도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그야말로 애매모호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히려 전시선정과 관련하여 몇몇 작품이 개막전에 배제되었다는 논란을 상기하게 한다. 만약, 수십 년 동안 자기세계를 구축하며 활동해온 소장화가들의 작품이 누구나 이해할만한 객관적 기준 없이 기획자에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 배제된 것이라면 이는 몇몇 미술계 인사들이 개관전에 초대받지 못한 모멸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미술사적 접근으로 볼 때 1980년대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부족한 부분도 아쉽다. 출품작의 상당수가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잇거나 적어도 그러한 맥락에서 접근한 작품들이라 주장하더라도, 정작 1980년대 정신을 읽을 만한 작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11) 작품의 제작연도는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1980년대 시대정신은 1980년대 제작한 다양한 작품들에서 가장 시대와 밀착된 정신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과 이러한 정신을 이어간 혹은 다른 시각의 작품들을 비교할 수 있었다면 관람자들이 각 시대의 정신을 표출한 한국의 현대 미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 문제와 예술적 문제는 관련 전문가의 시각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본래의 성공적인 작품을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예술은 상대적이다. 평론가, 작가, 관람자 등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전문성을 떠나 상대적이다. 그러나 예술의 상대성은 영원한 대치가 아니다. 나와 다른 타인의 시각을 나의 시각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타인의 시각으로 들어가 나의 시각을 재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소통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소통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감대가 보편성을 획득하며 작품의 미적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미술관은 이러한 소통을 위한 최상의 영역이고 작품은 소통을 위한 최고의 매개체이다. 전시회는 실제로 예술의 방향성과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평가하는 대단히 중요한 행위이다. 때로는 예술의 미래방향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지나온 예술의 발자취를 통해 국가(그룹, 장르, 작가)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시에 선정되거나 참여한 작가들은 작품이 전시장에 걸리는 순간부터 어떤 식으로든 비평의 대상이 된다. 작가의 자발적 참여가 아닌 기획자의 선택에 의해 전시회에 포함된 경우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번 전시 참여 작품(작가)들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이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계속>



<주>

1) 관련기사《한겨레신문》, 《조선일보》,《한국일보》,《세계일보》외.

2)지금까지 일부 보도자료에서 ‘자이트카이스트’전의 출품작가와 작품수를 39명의 59점 작품이라고 했지만, 실재 작가수와 작품수는 38명의 60점(1층 전시실외의 신현중 작가 실외 작품 포함 시 62점)이다. 1층 전시실내외 14명의 21점(신현중 실외 작품 포함시 23점), 2층 전시실내외 24명의 39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자이트가이스트’전의 전시작가 및 작품목록을 작성한 부록<표 2>의 참조요함.

3)리차드 웨스턴 지음, 김광현+서울대건축의장연구실 옮김『건축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외 ko.wikipedia.org.  네이버두산백과. 4)『세계미술용어사전』월간미술, 1999. p.272.

5) 로젠블럼, 『Thoughts on the Origins of Zeit Geist』; 이일 저『현대미술에서의 확원과 확산』열화당, 1990. p.82.

6) 기획자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미술관 소장품 7000여 점을 확인했을 때 컬렉션에 체계적이지 않았으며, 이는 관장이 바뀔 때 마다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았다. 이에 소장품에 대한 방향이 명확히 설정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월간미술, 2013.12월호) 이 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선정에 대한 기획자의 솔직한 생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컬렉션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도로 읽힌다. 소장품 선정기준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기획자의 견해는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품성이 뚜렷한 작품을 소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서 국립미술관 소장품 확충에 관한 방향설정과 그에 따른 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이 취임하면서 인터뷰한 내용(월간미술, 2012. 3월호) 중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에서 보강할 점으로 소장품에 소홀했던 점을 제일 먼저 꼽으며 소장품 확충과 연구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던 부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7) 이성자 화가의 경우는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중인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에도 선정된 작가이다.

8) 김차섭 작가의 경우는 기획자가 특별히 시대정신을 담은 중요한 작품으로 언급한 화가로 다른 출품작품과 다르게 1976년 ~ 2012년 작품까지 출품(비소장품)되었다.

9) http://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검색결과에 따르면 1960-1970년대 소장품은 1466건(한국화, 회화, 조각, 사진), 1180건(한국화, 회화, 조각)이다.

10)『월간미술』 12월호. 2013. p.112 인터뷰.

11) http://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한국화, 회화, 조각, 사진) 중 1980년대 소장품 검색결과- 137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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