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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감정과 미술사의 역할

변종필

미술품 감정과 미술사의 역할


변종필(미술평론가)


1991년 ‘한국미술협회’와 ‘한국화랑협회’는 미술문화발전의 대명제 앞에서 스스로 자체정화 또는 체질의 제도적 개선에 앞장서 미술문화의 공개념화를 정립하기 위해 미술문화발전협의회를 결성했다. 그 첫 공동행사로 「미술문화 공개념과 유통질서의 확립」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하고, 이때의 합의를 기초로 문화부 장관에게 건의문1)을 보냈는데 그 자료에「공신력 있는 감정기구의 개발에 관하여」라는 미술품 감정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술품의 올바른 유통과 계승은 필수적인 일로 공신력 있는 감정기구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첫째, 국가 공인(또는 관계협회에 위임)의 감정사자격제도의 도입, 둘째, 과학적 감정시설의 설치 운영, 셋째, 공신력 있는 민간 감정 기구에 대한 지원 및 보장, 넷째, 감정 인력의 양성. 이상 네 가지 항목이 공신력 있는 감정기구 개발의 필요성으로 건의되었다. 그로부터 2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크고 작게 감정과 관련한 논의와 더불어 그때마다 비슷한 개발방안이 제시되어왔다. 미술품감정의 문제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님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반복적으로 미술품 감정 기구의 개발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일차적으로 큰 틀에서 미술품감정 시스템의 불균형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미술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즉 고가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이상 위작은 만들어진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는 물론 미래도 그럴 것이다. 실제 한국 미술품감정평가원이 지난 10년(2003~2012) 동안 감정한 5,130점의 작품 중 4분 1(25%)에 해당하는 1,330점이 위작으로 판명 났을 만큼 위작은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위작비율은 2010년 약간의 내림세를 보였을 뿐 2011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실정이다. 결국, 문제는 위작생산이 아니라 지속해서 생산되는 위작을 가려내는 감정의 기준과 시스템에 있다.

 

감정에 있어 방해요소는 언제나 존재한다. 때로는 직관보다 객관적 사실이라고 하는 자료들에 무너지기도 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인식하다가 정작 위작을 진품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특히 원본성이 사라지고 작품의 보존과 에디션의 불명확성이 미술품감정의 어려움을 더하는 현대미술에서는 더욱 안목감정의 어려움이 증가하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과학적 감정시설의 설치 운영이다. 과학감정은 긍정적, 부정적 요소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만, 현대미술 시장에서 감정의 공신력을 높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는 과학 감정이 미술품감정의 모든 과정에서 우선하는 것이 아닌 안목감정이나 자료감정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앞으로는 재료, 기법, 보수, 액자, 서명 등 감정요소에 대한 세세한 측면까지 활용빈도 수가 증가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흐름은 지능화된 범죄가 수사의 과학화를 자극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존수복기능을 수행하는 몇몇 뮤지엄, 국립과학연구소, 대학의 과학 관련 연구소를 제외하고 미술품 과학감정만을 전문으로 시행하는 곳이 없다는 것은 국내 미술품감정시스템의 열악한 환경을 대변한다. 한시적 긴급 처방에서 벗어나 안정화된 미술품 과학감정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이유이다.

과학감정이 미술품감정에 큰 힘으로 작용하지만, 여전히 감정의 주를 이루는 것은 안목감정이다. 기계적 차가움이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경험과 직관은 여전히 미술품감정에 중요한 역할로 작용한다. 실제 미국의 폴게티 뮤지엄에서 쿠로스 상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과학 감정이 미술사학자의 직관과 그리스조각 전문가의 안목을 뛰어넘지 못한 일화는 인간의 경험과 직관이 때때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한다. 미술평론, 화랑, 미술사, 보존수복, 미술재료상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다. 그중에서 미술사적 시각에서 접근한 진위감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미술품이 지닌 근본적 가치와 의미를 중시하고 그것을 토대로 감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작품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은 이른바 작품의 제작 여건(장소, 재료, 년도, 기법, 의도 등)을 자세히 추정하여 판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 어떤 재료로 왜 작품을 했는지 소소한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미술사적 연구는 그 자체로 앞으로 작품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감정의 진위문제에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미술사는 미술품의 가치와 의미를 구축하는 뼈대이다. 여기에 주요작가의 작품세계를 화법, 재료, 채색, 색감, 구도, 서명 등 세부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는 것은 살을 붙이는 것과 같다. 감정가가 감정에 임할 때는 반드시 미술사적 연구가 충분히 선행된 후 실물을 보고 감정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이 바람직한 근거이다. 결국, 미술사적 연구를 통한 개별적 특징연구나 작가 심화연구는 감정의 깊이와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이 점에서 미술품 감정에서 미술사가들의 참여는 다른 분야 전문가들처럼 미술시장의 유통에 일찍이 보이지 않은 안전장치 역할을 해온 셈이다. 실제 일반인들의 경우 미술사가의 객관적인 공신력은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경매사나 다른 전공감정가들보다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술계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사전공 교수의 경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대중적 인지도가 많고, 전문성과 경력을 갖춘 미술사학자일수록 미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견고하여 시가감정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는 다년간 강연이나 저술(논문, 카탈로그, 칼럼)로 쌓은 신뢰도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미술사가 학문인 이상 진리탐구와 진실규명을 위한 연구는 필연적이다. 미술사는 많은 학문 중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미술작품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어떤 교활함이나 거짓이 보태지는 것을 밝히고,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으로 위장한 미술품을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바로잡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여러 미술품감정전문가가 강조했듯이 문헌사료의 중요성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고미술품의 경우 미술사적 사료들이 작품 진위감정과 미술사적 가치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사례부터 근대미술품에 관한 미술사적 연구와 결과물이 진위와 가치판단에 중요한 단서가 된 사례는 많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미술사적 연구가 고미술이나 근대미술의 편중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동시대 미술까지 포함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대미술 역시 미술사에 편입되는 시점부터 작품사료로 남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미술사적 연구는 또 다른 문헌사료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작가의 미술품 가치를 명증하게 서술하고 그것을 입증해가는 역할이 미술사의 몫이라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광범위한 작품들을 한층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카탈로그 레조네와 같은 전문 자료를 축적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감정에서 미술사의 역할은 미술품감정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작가론의 심층 연구․분석을 통한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높이고 증명하는 데 있다.

 

미술품감정의 신뢰도는 하나의 절대적 기준이나 제도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한 가지 뚜렷한 기준이나 제도를 마련하기보다는 공통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감정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현실적 대안은 지속해서 제기된 부분의 공통분모를 찾아 해결방안을 강화해가는 방법이다. 사실 과거에 견주어 한국 미술품감정의 수준은 나름의 향상과 발전을 이루어 왔다. 따라서 이제는 큰 틀의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한층 세밀한 부분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미술품감정에는 예기치 않은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만큼 그에 따른 미술품감정 매뉴얼을 만들어 체계적인 감정관리 시스템으로 정착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감정의 도입,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문가 양성, 자격증제도 도입 등 한국 미술시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데 필요한 4대 방안 중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격증 제도 도입은 당장 실행이 어렵지만, 현재 일부에서 미술품감정 전문가양성아카데미를 통해 미술사적 안목을 키우고 여러 학술세미나와 토론회를 바탕으로 발전방안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긍정적 시도이다. 이는 미술품감정이 영리의 효율성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더 중시하는 풍토를 형성해가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1)1991년 7월 29일 (사)한국미술협회 김서봉이사장과 (사)한국화랑협회 김창실회장이 건의문에는 ‘예술가에 대한 보호 지원’, ‘미술품 유통구조(화랑)의 제도화와 그 지원’, ‘수장가에 대한 보호’, ‘박물관진흥법(안)에 관련’, ‘국제개방화에 따른 대처’, ‘미술문화 진흥기금의 조성’ 등 미술시장전반에 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공신력 있는 감정기구 개발은 미술품 유통질서의 확립과 미술품 담보 및 보험제도의 기초 작업이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제기했다. 이에 문화부에서는 ‘세미나를 통해 도출해낸 미술문화발전방안은 문화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술정책의 방향과 일치하며, 미술문화의 진흥을 위해 배전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끊임없는 협조와 의견을 제시하여 주길 바란다’는 간략한 문화부장관의 회신으로 대신했다.《화랑춘추》46호. 1991, pp.35-36 참조 재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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