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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의 음과 양: 인간본연의 해방과 무체의 일체

변종필

김구림의 음과 양: 인간본연의 해방과 무체의 일체

변종필 미술평론가


김구림(1936~)은 지난 40여 년 동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해온 한국 전위미술 1세대이다. 규정된 틀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상상과 변화로 연극, 영화, 음악, 무용, 미술의 예술 영역 간 협업(collaboration)과 설치, 퍼포먼스, 사진, 회화, 조각 등 미술장르 간 통합과 해체로 예술의 일반적 경계를 무너뜨렸다. 예술의 탐구를 전방위로 확장한 그의 활동은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언제나 미술계 안팎의 시선을 끌었지만, 정작 한국 미술계에서는 급진적 변화를 거듭하는 불연속적 작품스타일로 객관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과 미국 등 외국에서 예술적 성과를 이루면, 국내에서 주목하는 형식이었다. 이 점에서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 기획한 ‘김구림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오랫동안 한국 미술의 제도권에서 이방인적 대우를 받던 그의 작품세계가 공공미술관에서 처음 재조명된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섭, 융합이 세계적 문화코드로 인식되는 흐름에서 그가 추구해온 작품세계가 유의미한 미적대상으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김구림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시대와 함께 변화되고 공존해왔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현재 시점에서 시대성과 시간성을 추출해온 그는 특정한 형태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끝없는 자기변화로 권태로움을 이겨내는 것에 화가의 존재성과 예술 가치를 두었다. 이는 2차원의 평면에서 탈 공간과 탈 재료를 시도한 1960년대부터 <현상에서 흔적으로>시리즈, <1/24초의 의미>, <문명, 여자, 돈>, <불가해의 예술>, <매스미디어의 유물>, <서울현대음악제> 등으로 이어진 작품 활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집약된 작가정신은 1970년 결성하여 5장 23조의 규약까지 만들었던 <제 4집단 선언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을 본연으로 해방함과 순수한 한국 문화의 독립이 세계문화의 주체임을 확립하고, 무체의 원리로서 모든 예술을 통합시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 등 각 분야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일체의 체계를 이룬다’는 강령과 선언은 40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그가 추구해온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핵심 개념으로 삼을만하다. ‘잘못된 오류를 타파하고 정신과 육체의 분리에서 오는 모든 모순을 종식시키며 인간으로부터 인간으로 가는 새 인간문화를 형성하겠다’는 행동강령을 선언하면서 펼친 여러 극한의 퍼포먼스는 당시 사회문화 정서에 부딪혀 해체될 만큼 시대와 소통하지 못했지만, 세계의 구조적 모순을 향했던 외침은 여전히 중요한 이슈를 던지며, 김구림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정신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 4집단의 선언은 김구림이 1980년 이후 일관된 테제로 명시해온 ‘음양’시리즈에서 한층 집약된 결과물로 제시된다. 음양은 동양적 사유의 근저로 천체, 자연, 물체, 사회, 운동, 형태 등 인간과 자연환경에 관련한 모든 것에 해당한다. 연속과 단절, 열림과 닫힘 등의 운동영역과 양극과 음극, 생물과 무생물 등의 물체영역은 물론 희망과 절망, 의식과 무의식 등 심리적 영역까지 우주만물에 확대․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음양의 세계는 ‘우주의 원체가 무체로서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무체의 유체화인 인간이 무체에서 출발하여 무체로 환원되는 새 인간 윤리의 표방이다. 정신과 육체, 밤과 낮, 흑과 백, 우연과 필연 등이 같다’는 그의 철학적 사유와 상통한다. 무체에 관한 명증한 설명은 없지만, 세상의 어떤 것도 개별적으로 완결한 실체란 없음을 말하며 모든 것은 상호융합을 통해 일체를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윤회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환원되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리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 김구림은 많은 음양시리즈를 통해 이 같은 예술관을 표명해왔다. 대중잡지나 광고이미지를 차용하여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로 실사한 후 붓질을 가하여 이미지를 지워나가는 형식으로 실재와 허상, 생성과 소멸을 표현했다. 대부분 저항적이고 원시적이다. 거침없는 붓놀림 속에 이미지가 소멸하고, 또 다른 이미지로 생성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예컨대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실상을 통렬하게 비판한 작품들처럼 정신과 육체의 일체보다는 외형적 과시, 즉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 본연을 상실해가는 현상은 인간 본연의 해방이 아닌 해체로서 원체(元體)의 소멸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폐기된 오브제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생명 형상의 생성과 소멸을 표현한 다각적인 입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최근에 선보인 대형 작품인 <Yin and Yang(Buddha+Maria 석가+마리아)>은 인간 본연을 해방해 음양 일체의 체계를 지향해온 의지를 직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종교성을 넘어 부처와 성모마리아도 한 명의 남자와 여자라는 발상에서 성적뉘앙스를 지닌 대상으로 삼았다. 부처의 발그레한 볼과 성모마리아의 처녀막을 파열한 파격성이 말해준다. 종교모독 논란이 있을 만큼 도발적이지만,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종교성을 철저히 배제한 가운데 부처와 성모마리아를 남과 여, 음과 양, 인간과 인간이라는 관계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성인 육체적 사랑을 부처와 성모마리아에 대입하여 음양의 일체를 상징화했다. 음과 양은 상대적이지만, 지위고하, 종교적 틀과 상관없이 세상에 공존해야 하는 필연적 관계임을 말한다.

김구림에게 음양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초월해 하나의 형체로 귀결 지을 수 없는 무체의 일체이며, 모든 생명의 이치이자 핵으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이다. 이는 모든 예술을 통합시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 등 각 분야에 직접 참여하여 일체를 이루겠다는 강령의 재확인이기도 하다.

 

‘작품은 세월의 변화에 따라 그 시대의 환경과 문명의 혜택을 받아 살아감으로 당시의 감각과 체취가 배어있는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만 된다.’라며 작품의 변화와 시대성을 강조한 일관된 작가정신은 그가 추구하는 전위미술의 본질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패러독스처럼 시대를 질타해온 김구림의 ‘위반의 미학’이 여전히 진행형인 이유이다.





<미술과 비평3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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