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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섭 / 잃어버린 역사와 전통, 그 상처와 치유의 기록

변종필

이관섭 목조형초대전


잃어버린 역사와 전통, 그 상처와 치유의 기록

 

 

작품의 힘은 현장성에 있다. 전시작품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록으로 그 존재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지만, 메시지의 진정성은 역시 전시장에서 만날 때 명확해진다. 특히 설치작업은 작품이 설치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순간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 한층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이관섭 작가의 작품과 만남도 그랬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나무향기가 배어있는 2m가 넘는 커다란 나무판이 거대한 병풍처럼 서서 빛을 안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수천 개의 나무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연결한 작품이 건축물을 옮겨놓은 듯 웅장함을 갖추고 있었다.

 

40년 경력의 목칠공예가 이관섭이 국내 첫 개인전을 열면서 그동안 제작해온 수많은 공예품 대신 설치작업을 전시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나무로 조형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크기, 용도, 분야의 제한 없이 ‘나무의 물질성과 사물의 본질적 구조’를 탐구했던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동시에 예술과기술,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대중의 시선과 부딪쳤던 갈등 및 고민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특히 이 전시는 전통과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Natural revolution>은 800년 수령에 지름만 2m인 나무판이 그 자체로 유구한 세월을 품고 있어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녹나무의 넓은 원판에 새겨진 선들은 정교한 기계로 새긴 것처럼 빈틈이 없다. 이는 40여 년간 다져온 작가의 장인적 손길이 지나간 흔적들이다. 이러한 원숙함은 배움의 과정이 남달랐던 그가 불혹의 나이에 떠난 7년간의 일본유학에서 낯섦과 힘겨움을 견뎌내며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몸과 마음을 정련했던 성과이기도 하다. 특히 이 작품은 자연의 빛, 바람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선들이 넓은 전시 공간 속으로 확장하는듯한 착시감을 준다. 4개의 나무판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나무판과 그 위에 새겨진 원형 선들이 궁극에는 하나임을 의미한다. 나무판 주변에 놓인 숯과 접시는 자연이 머물다간 그림자들로 생성과 소멸을 통한 자연치유의 시간을 암시한다.

 

 

전통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힘든 이유이다. 이관섭은 유독 전통과 역사를 중시한다. 이는 문화재 전문위원으로서 지닌 책임감,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신념과 애정을 기울였던 삶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닫집을 해체하여 거대한 조형물로 설치한 <RecordⅠ-2013>은 이 같은 맥락에서 접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숭례문의 복원을 지켜보며 가졌던 문화재에 대한 생각을 입체화한 것이다. 숭례문은 복원되었지만, 사라진 시간과 문화적 가치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음을 깨우쳐준다. 닫집은 궁궐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으로 내부 안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그러나 이관섭의 닫집은 단청의 화려함도 권위와 위엄도 사라진 채 나무 자체의 물성만을 드러내고 있다. 닫집 한 채를 만들 수 있는 부재들을 해체하여 형태와 모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펼쳐 놓았다. 소로, 첨차, 살미 등 해체된 공포(公布)의 구성 부재들을 사각의 조형물에 평면적으로 부착하거나 수만 개의 작은 조각들로 분리해 수북이 쌓아 놓았다. 닫집 한 채를 만드는 데는 수천수만 개의 부재들이 필요하다. 이에 작가는 숭례문 같은 국보급 건축물을 건축하는 데 얼마나 많은 목재와 공력이 필요하겠는가를 상징적으로 제시했다. 역사와 전통이 하루아침에 조성될 수 없음을 말한다. 설치한 부재들 사이사이에 부착한 크고 작은 송판 접시들은 오랜 역사와 함께한 우리 소나무[松木]에 대한 소중함과 잃어버린 우리 것에 관한 슬픔과 그리움의 표시이다.

전통과 역사에 관한 한층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세 번째 작품 <RecordⅡ-2013>이다. 이 작품은 ‘영조 옥책함’을 재현한 것으로 주칠과 니금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왕조의 위엄을 상징하는 옥책함을 투명아크릴, 문서(보도자료, 연구분석자료)와 연결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설치한 것이 핵심이다. 먼저, 시각적으로 화려한 옥책함이 눈에 띄지만, 정작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투명아크릴 밑에 깔린 문서들이다. 이 문서는 팔만대장경 조사보고서로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내용파악이 힘들지만, 다행히 최근 팔만대장경 경판의 훼손이 심각하다는 기사와 연관 지으면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전통과 역사, 명예와 권위의 상징인 옥책함과 국가를 지켜낸 국력이자 정신이었던 팔만대장경을 투명아크릴을 사이에 두고 배치하여, 국가의 전통과 정신이 상실돼가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RecordⅠ-2013>와 <RecordⅡ-2013>은 사라지고, 병든 문화재에 대한 항변이다. 전통과 역사에 대한 얕음, 무관심과 과오를 질타하는 두 작품의 울림이 가볍지 않은 것은 전통과 역사를 바로 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만큼 정직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쓰다듬고 만지다 보면 일순간 나무가 원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때 나무가 의도하는 것을 따라가서 나무에 맞는 옷을 조각하고 색을 입힐 뿐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겸손함을 넘어서 나무를 대하는 경건함이 묻어난다. 실제 이관섭은 지금까지 50여 종의 나무를 다루며 나무의 특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형상을 찾아내는 데 노력했다. 조각하기 쉬운 비자나무부터 단단한 흑단까지, 민족의 시작을 알리는 제왕운기의 박달나무에서 일본의 녹나무까지 시공간을 떠나, 다종다양한 나무를 다루며 인위적 변형보다 나무의 자연성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불상이 되고 싶은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것은 나무의 생명을 끊는 것이다”는 고백은 그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작품에 임하는지를 대변한다. 재질은 단지 어떤 특성의 나무인지를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 핵심은 ‘무엇으로 태어나느냐’에 있다.

나무의 본성을 깨우는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나무를 세상의 가장 소중한 벗으로 여기는 이관섭의 작품들은 14살에 시작하여 40년 동안 부딪치며 겪은 기쁨과 슬픔의 흔적들이 나무의 결과 결 사이를 촘촘히 메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예술적 성취를 떠나 평생 한길을 걸어가는 삶의 태도에 대한 경외감이다.

기쁨과 슬픔은 또 다른 기쁨과 슬픔으로 치유된다. 작업에서 느끼는 환희와 절망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작업을 통해 절망이 치유되고 환희를 맛본다. 작가가 작업을 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이유이다. 세 개의 설치작품으로 압축한 이관섭의 첫 목조형전은 잃어버린 역사와 전통, 자연의 소중함을 향한 작가적 항변이다. 무엇보다 이 항변은 타인을 향해 강요하는 명령어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스스로 깨우치는 외침이자 치유의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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