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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컬렉터

변종필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컬렉터

 

 

인간의 수집본능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을 꼽는다면 현존하는 세계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구매할 컬렉터가 없다면, 미술품은 그 존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수많은 명작이 누군가의 애장품이었으며,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대형 경매사에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화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3분의 2가 개인 컬렉터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컬렉션의 목적과 동기는 컬렉터마다 다르다. 교양과 부의 과시, 재테크의 투자대상, 투기나 세금절약, 미적 가치 존중, 미술품에 대한 순수한 열정 등등 각양각색이다. 유형 역시 투자형식에 따라 ‘거액투자형’, ‘소액투자형’, ‘단기투자형’, ‘기업투자형’, ‘아트펀드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섯 유형 중 이른바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들은 ‘거액투자형’과 ‘기업투자형’이 많다. 두 유형은 거액자본을 투자해 동시대 블루칩작가의 작품을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실질적 힘이다. 특히 기업투자형은 작품 가격, 유행, 장르, 개인적 기호 등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컬렉터가 소장하기 힘든 실험적이며 거대한 크기의 작품까지 살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 세계 100대 대기업의 오너 중 30%가 미술품 수집을 한다. 1세기가 넘는 컬렉션 역사와 5만여 점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독일 ‘도이치은행’. 앤디 워홀, 클래스 올덴버그, 게르하르트 리히터, 루시안 프로이드 등 미국에서 가장 역량 있는 동시대작가의 작품들의 컬렉션으로 유명한 스위스 ‘연방은행 UBS’는 기업이미지에 미술품 컬렉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세계적인 금융기관인 ‘JP모건 체이스’ 경우도 2만 8천여 점에 이르는 미술품을 수집했는데 이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인수하면서 설립자 록펠러의 컬렉션 철학을 내세워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을 수집한 결과이다.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5대 기업 컬렉션의 하나로 인정받는 ‘프로그래시브사’는 미술이 종업원들의 창의력을 신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확신했던 창업주 2세 CEO 피터루이스의 컬렉션 철학이 만들어낸 성과로 평가받는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7대 명소의 한 곳인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예술을 모르는 인재는 성과가 1위라고 해도 필요가 없다. 21세기엔 좋은 기업, 매력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은 미술의 창의성”이라고 강조한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의 예술철학이 만든 세기의 걸작이다.

이처럼 기업의 미술품 컬렉션은 단순히 개인의 수집에 머물지 않고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고, 국민들이 성숙한 예술문화의 소양을 키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때때로 기업의 미술품 수집이 부정적 용도로 사용되어 순수성이 퇴색되는 경우도 있지만, 예술품 수집은 기업이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 환원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소박한 투자와 취미로 미적 감상을 즐기는 소액투자형이나 꾸준한 수집보다는 작품의 환금성과 투자성을 중시하는 단기투자형도 미술 시장에 필요한 컬렉터이다. 특히 한 번에 거액을 쓰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모은 돈으로 눈여겨 봐왔던 작가의 작품을 사는 방법으로 컬렉션을 지속하는 소액투자형은 미술 시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소액투자형은 평소 미술품에 관심이 많아 누가 화단에서 주목받는지, 어떤 작가가 새롭게 부상하는지 등등 정보의 수집도 빠르다. 매년 다양한 아트페어나 미술품 경매에 소액투자형 컬렉터들의 참여가 높아지는 것은 미술 시장의 활성화를 돕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미술품 컬렉션의 보람은 단순히 투자 대비 이윤창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기호에서 출발했더라도 결국에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미술관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 개인컬렉션이다. 삼성의 경우 선대 호암 이병철 회장부터 현재까지 고미술품에서 현대작품까지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며, 세계적 미술품 컬렉션 기업으로 한국을 대표한다. 매년 두 차례 미술애호가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간송 미술관은 1인 컬렉터로서 20대에 물려받은 천문학적 재산을 ‘민족의 얼’을 찾아 국보급 미술품을 소장하는데 힘쓴 전형필의 젊음과 열정의 산물이다. 개성출신 사업가인 호림 윤장섭이 평생에 걸쳐 수집해온 유물을 토대로 설립, 현재는 1만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는 국내 대표박물관으로 성장한 호림박물관. 40여 년간 수집한 동아시아 중심의 다양한 미술품을 바탕으로 한광호 박사가 설립한 화정박물관이나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이 외국 기업들이 설립한 전용 박물관을 보고 개인적으로 수집해온 수천 점의 유물로 설립한 코리아나 박물관과 미술관 등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가 박물관․미술관 1,000개 관 시대를 맞이했지만, 진정 예술품을 아끼는 컬렉터들이 없었다면 한국 미술의 역사는 그만큼 가벼워졌을 것이다. 현재 국민적 관심 속에 연일 만원사례를 보이는 덕수궁미술관의 ‘명화를 만나다. 근현대회화 100선’의 출품작 중 43점이 개인소장품이라는 것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걸작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고미술품부터 현대미술품까지 세기의 걸작은 언제나 컬렉터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박수근과 이중섭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 나올 때마다 최고가를 경신하며 시선을 끌었던 것도 명작을 소장하고 싶은 컬렉터들의 경쟁이 낳은 결과이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좋은 미술품을 소장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컬렉션이다. 컬렉터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이상적인 컬렉션이 되려면 최소한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나 '속아서 사면서 배웠다'는 말은 하루아침에 좋은 컬렉터가 될 수 없음을 대변한다. 컬렉터가 갖추어야 할 요건에 재력보다 인내심과 안목을 더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미술품을 사랑하는 컬렉터들의 수집 열정이 결과적으로 걸작을 낳는 보이지 않은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BIZart 비자트 12월호 기고글>

  

* 참고문헌 / 관련하여 읽을 만한 책: 돈이 되는 미술(김순응 지음) / 간송 전형필(이충렬 지음), 은밀한 갤러리(도널드 톰슨 지음, 김민주 송희령 옮김), 예술의 섬 나오시마(후쿠다케 소이치로 , 안도 타다오 지음, 박누리 옮김), 수집이야기(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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