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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톡톡>명화로 보는 도박의 속성

변종필

도박의 속성, 현대인의 자화상

  

한국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불법 도박사건은 돈을 향한 인간의 꺼지지 않는 욕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큰 거 한판에 인생은 예술이 된다’는 영화 홍보문구처럼 현대사회에서 한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 도박은 인간세상에서 영원히 버릴 수 없는 카드일지 모른다.

예술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는 예술의 일반적 특징을 증명하듯 도박은 미술작품에서도 빈번한 소재로 등장한다. ‘카드와 도박사’라는 공통의 소재를 통해 인간의 욕심을 드러낸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그림 1>은 언제 보아도 흥미로운 조르주 드 라투르의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지닌 도박사>이다. 연극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 수상쩍은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

세 명의 도박사가 한 명의 부유한 젊은이를 속이는 음모의 현장임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음모를 주도하는 가운데 여인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시선이 술잔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연결되고, 그녀의 눈짓은 다시 도박사에 연결된다. 각 등장인물의 눈빛과 손동작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흐르게 하여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시도가 색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그림 > Georges de la Tour<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지닌 도박사> Oil on canvas, 

106 x 146cm Musée du Louvre, Paris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지닌 도박사>는 루브르가 천만 프랑이라는 거액을 지급하고 사들인 것으로 라투르의 작품 중 가장 이색적인 그림으로 꼽힌다. 이 그림은 1980년 한때, 등장인물의 의복과 보석, 서명 등이 라투르의 정교함을 따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위작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내용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주변 인물들을 주요 테마로 그린 라투르의 대표작품들에 견주어 대단히 예외적인 그림이었던 것이 의혹과 불신을 키웠고, 더구나 라투르 작품의 상징적 기호라 할 수 있는 촛불에 의한 빛의 조율이 없는 것이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사실 조르주 드 라투르는 후대에 ‘촛불화가’라는 애칭을 얻을 만큼 독특한 화면 구성으로 유명하다. 어두운 화면을 슬며시 밝히듯 빛을 발산하는 촛불을 중심으로 드러난 인물들의 생생한 표현은 그의 그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징이다.


<그림 > Georges de la Tour <목수 성 요셉> 1645, Oil on canvas, 
137 x 101cm. Musée du Louvre, Paris


예컨대 <그림 2>처럼 유일한 빛의 근원인 촛불을 통해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종교성보다 훨씬 영적이며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촛불 하나로 그림의 전체적 분위기를 조율했던 독특한 연출구성과 명암법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지닌 도박사>에서는 없다는 점은 분명히 커다란 차이점이다. 어쨌든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지닌 도박사>는 정교한 과학적 분석으로 작품에 사용된 물감이 17세기 것임을 증명되면서 라투르의 진품임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라투르의 작품에 이어 <그림3>의 두 작품도 카드를 소재한 그림이다. 좌측그림은 이탈리아 바로크시대를 이끌었던 유명화가 카라바지오의 그림이다.


  
 <그림 > 좌:CARAVAGGIO ,The Cardsharps, c. 1596, Oil on canvas, 92 x 129 cm, Kimbell Art Museum, Fort Worth 우:VALENTIN DE BOULOGNE, Card-sharpers, 1620s, Oil on canvas, 95 x 137 cm, Gemäldegalerie, Dresden

 

카라바지오의 <카드놀이 사기꾼>작품도 라투르의 그림처럼 부유한 젊은이를 두 사람의 사기꾼이 공모하여 속이는 장면이다. 젊은이의 카드를 훔쳐보고 손가락으로 카드 숫자를 표시해주는 공모자의 수신호를 받고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사기꾼 사이에 은밀한 긴장감이 흐른다. 사기꾼들의 목표가 화면 왼쪽 아래의 테이블 끝에 쌓여있는 동전 더미를 가로채는 것에 있음이 쉽게 드러난다. 특별히 이 그림에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은 사기꾼의 긴장감 있는 표정과 달리 자신의 카드만 응시하고 있는 젊은이의 태도이다.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얼굴에는 평온함마저 감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이의 순진함과 그를 둘러싼 사기공모자들 사이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카라바지오는 유럽회화발전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 화가로 평가받는데, 다른 화가와 비교해 인물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 특별하다. 이는 배경을 과감하게 약화시키고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을 살리는 효과가 있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는 명암법 때문이다. 테네브리즘은 실체만을 조명하는 기교, 이탈리아 어인 '테네브로소tenebroso(어두운 방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어둠과 빛의 극적 대조를 뜻한다. 미술사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 등에 사용한 스푸마토(sfumato)기법과 양대산맥을 이룬다.  

사실 카라바지오는 화가로서 재능을 제외하고 보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대단히 불완전한 사람이다. 다혈질에다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매사에 사람들과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살인과 도망자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늘 쫓기는 불안한 삶을 보내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삶 자체가 도박처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불행한 일생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지오의 창의적 화풍만큼은 17세기 전 유럽 화단을 휩쓸 정도로 파급력이 강했다. 심지어 그를 추종하는 일련의 화가들은 화풍뿐 아니라 그의 무질서한 삶의 방식마저 흉내 낼 정도였으니. 당시 카라바지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만하다.

카드라는 소재의 공통점은 물론 형식과 내용적 측면에서 라투르와 카라바지오의 작품과 비교할만한 또 하나의 그림이 <카드-사기꾼들><그림 3>(우측)이다. 이 그림은 1620년대에 그려진 프랑스 화가 발렌틴의 작품으로 소재는 역시 동일하다. 발렌틴은 로마에서 활동하였으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초기 작품에 대해서는 아직 미확인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 작품만 놓고 보면 강한 명암대비나 인물 중심의 화면 구성에서 카라바지오의 화풍이 묻어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카라바지오의 그림에 견주어 어두워진 화면분위기이다. 상대방을 속이는 비도덕적 행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더욱 강한 대비를 선택했다. 젊은이의 등 뒤에서 손가락으로 카드 숫자를 알려주는 공모자의 눈빛과 손짓이 카드를 바꿔치기하려는 도박사의 표정이나 동작과 연결되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뿜어낸다.

발렌틴의 그림은 라투르나 카라바지오의 작품과 달리 어둡고 무겁다. 카라바지오 그림의 산뜻하고 경쾌한 줄무늬 옷의 표현이나 부드러움은 감촉이 전달되는 표현과 달리 발렌틴의 작품은 거칠고 우울하다. 앞선 두 작품이 표정과 동작, 옷차림 등에 비중을 두었다면, 발렌틴은 카드를 화면 중앙에 배치하여 도박의 현장성과 긴박함을 극대화하였다. 도박의 위험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하였다.

카라바지오에서 시작된 ‘카드’ 소재가 발렌틴의 작품에서는 한층 섬뜩한 분위기로 도박의 어두운 측면이 두드러지며 부조리한 인간의 욕망이 표출됐다면, 조르주 드 라투르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연극적 화면으로 표현했다. 특히 여성을 도박현장의 핵심 인물로 배치하고,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코믹함과 냉소적인 분위기를 적절하게 융합하여 관람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등 카라바지오와 발렌틴의 작품에는 부족한 풍자적 요소와 재미를 더했다. 여기에 화려하고 장식적인 모자와 의상으로 또 다른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했다.

명작과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을 그렸나?’ 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있다. 동시에 그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삶을 얼마나 진실하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점에서 살펴본 세 작품은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화가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색채와 분위기, 그리고 인물의 감정표현과 묘사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었다. 특히 세 그림은 도박의 습성과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 부분에서 같은 메시지를 담았다. 단순히 도박의 허무함을 고발하는 것에서만 머물지 않고, 400년의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그릇된 욕심과 어리석은 행동이 인간의 본성임을 일깨워준다. 이는 실제로 매일 같이 정치․사회면을 뜨겁게 달구는 세상사가 도박의 속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충분히 공감을 일으킨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속고 속이는 세상과 그림 속 도박사의 모습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은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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