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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미술관의 기능과 역할

변종필

국공립미술관의 기능과 역할

변종필 미술평론가

 

 

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오는 11월 개관한다. 2009년 1월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 용지에 건립계획을 발표하고 2010년 7월에 공사를 시작한 지 4년 10개월 만의 성과다. 오랜 시간 국공립미술관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기대가 증폭됐던 만큼 서울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크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최근 많은 대중적 관심 속에 블록버스터전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전을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국공립미술관이 지나치게 블록버스터 전시에 의존하며, 이를 대신할만한 자체 기획전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우려의 시각과 함께 국공립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새로운 방향과 미래를 보여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나, 가장 가보고 싶은 미술관으로 인지도를 쌓은 서울시립미술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미술관이다. 따라서 미술관의 역할과 운영방식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국공립미술관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가 논문, 칼럼, 좌담 등 다양한 형식과 매체를 통해 관련 문제들을 제기해왔다. 지난 10년간 발표된 글들을 보면 ‘박물관․미술관의 용어정립’, ‘관장임명과 임기’, ‘학예사의 임기와 역할’, ‘전시기획과 전시기능’,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 등의 논제들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이러한 논제들을 되짚어보면 동어반복적으로 문제 제기만 되풀이되었을 뿐 미술현장에서 구체적인 대안이나 실천으로 이어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술관이 미술박물관의 약칭임에도 박물관․미술관을 달리 생각하는 우리의 언어적 습관과 고집, 여전히 전시행사에 의존한 안일한 운영, 번번한 컬렉션 없이 건물로만 존속하는 미술관, 정체성 부재의 지역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이 안고 있는 문제는 여전히 반복진행형이다.

 

 

2.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논점의 중심에는 언제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한국미술에 조금이나마 관심과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30여 년 동안 정부가 실행한 근시안적 정책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과 정체성 확립에 얼마나 걸림돌이 되었는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누구나 공감하듯 첫출발부터 어긋났다. 국민적 예술향유의 증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미술관의 위치’, ‘대중교통수단의 용이성’, ‘주변 환경 및 편리시설’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설령 동물원, 서울랜드 등과의 시너지를 고려한 선택이 있었다 해도, 이러한 기대는 미술관 자체의 매력보다 단순히 동물원과 놀이공원에 의존한 판단의 오류였다. 사실상 30년이 흐른 지금도 특별한 전시나, 관련 전공자를 제외하면, 대중이 즐겨 찾기에는 여전히 관람객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미술관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과천국립미술관의 제반 문제는 지역적 위치와 무관한, 정작 본질적 문제에 관한 성찰의 부재에 있다고 봐야 한다. 태생적으로 우리의 미술관은 유럽의 미술관들과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루브르미술관은 프랑스대혁명의 결과물로 근대국가체제 성립의 주체인 시민을 위한 부르봉 왕가의 컬렉션을 개방하여 공유한 것으로 시작됐다. 미술관의 역사적 정체성이 뚜렷하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일찍이 이인범 교수(상명대)가 지적했듯이 정부수립 이후 첫 국공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립 목적이 ‘국전’을 효율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였다.(이인범,『뉴스메이커』, 2008)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미술관 고유의 기능과 역할이 아니라 전시개최 중심이라는 기능적 목적으로 출발한 것이다. 결국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설립부터 왜 우리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이 필요한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미술관인지 명확하고 뚜렷한 정체성을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뒤로한 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치 공약처럼 내뱉다시피 한 근시안적 비전과 안일한 처방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를 더욱 고착화시켜왔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지역의 공공미술관의 정체성까지 획일화된 형식으로 만든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상 각 지역 공립미술관이 각각의 개성보다는 현대미술관의 분관(아류)과 같다. 전국 어느 공립미술관을 가도 유명 작가작품의 소장이 마치 미술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각 지역의 특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그만큼 국공립미술관의 정체성, 즉 한국미술의 정체성이 없다는 말과 같다. 지역 공립미술관의 특성화는 앞으로 국공립미술관의 발전적 변화를 위해서 반드시 숙고해야할 부분이다.

지역특성화를 위해 필요한 여러 방안 중 때로는 유물소장중심의 미술관에서 탈피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립미술관의 2011~2013년 소장품 구입 예산이 약 29억~22사이였고, 대전시립미술관의 경우는 수장품 구입비가 10년 가까이 3억으로 동결된 상황이다. 지역 공립미술관들이 매년 소장품 구입 예산의 증액을 기대하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예산에 기댄 컬렉션 방법에서 벗어나 공공성과 전문성을 높여 미술관을 매력적으로 탈바꿈시켜 소장자가 자발적으로 소장품을 기증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국공립미술관이 100%정부(지차체)지원으로 운영되어 자율성을 갖기 힘든 체재자체의 변화와 자립도를높이기 위한 체질개선이라면 충분히 시도할 만하다. 그러나 공립미술관이 기증의 활성화를 위해 변화하는 것은 좋은 제안임에 틀림없지만, 기본적으로 정부가 미술품 소장에 대한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기반에서 과연 우리의 국민적 정서로 볼 때 자발적 기부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이 점에서 오히려, 특정작가 중심의 소장품에서 벗어나 많은 화가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으로 전시중심, 레지던시 등 창작활동지원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미래를 위해 선행할만한 투자일 수 있다. 해외의 경우 영국 북부 게이츠헤드의 틴 강변에 곡물창고가 기념비적인 미술관으로 변신한 발틱현대미술관(Baltic Center for Contemporary Art)과 소장품을 지니고 있지 않은 미술관인 일본의 국립신미술관(2007)등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 세계의 작가들에게 전시공간과 스튜디오 및 창작을 위한 각종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미술을 생산하는 ‘예술 공장’을 지향하고 있는 발틱미술관과 일본미술관 최대면적이지만 동아리, 그룹전 등 대관 위주, 작가의 창작활동지원을 위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미술관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에 인천아트플랫폼이 아카이브, 레지던시, 창작활동지원 등 작품중심을 지향하겠다는 시도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다가온다. 이는 서울관 개관이후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참고할 내용이다.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료를 수집 관리하는 중요도 만큼 새롭게 변화하는 세계적 흐름에서 우리의 국공립미술관이 지향해야할 선구적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떠한 작품을 어떠한 형식과 내용으로 채워나갈 것인지, 어떤 운영방안과 기획으로 한국 공공미술관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아갈 것인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현재 추진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도 근본적 문제해결 없이 박물관 운영주체만 바꾸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6년 미술관의 자율적인 조직 운영을 강화한다는 명목 아래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급기야 미술관을 일종의 공기업형태인 법인화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법인화 추진은 아직 찬반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사실상 지향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공공미술관의 활성화라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핵심은 과연 법인화가 현 문제점을 개선하고 근본적 체질개선을 위한 최선책인가는 다각도에서 접근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법인형태의 성공사례로 들고 있는 주요 선진국과 한국의 현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부금제도만 보더라도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 미술관은 법인형태를 통해 기부금과 수익사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자립도를 키워 갈 수 있는 것은 그만한 밑바탕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재벌기업이 일인체재로 미술관을 운영하지 않으며, 각종 독립기획이나 대안공간의 운영에 기업 메세나가 시행되고, 기업이나 가문의 힘으로 세워진 미술관일지라도 사적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인식 등 모든 부분에서 우리의 풍토가 다르다. 여기에 선진 미술관들은 세계인을 매혹할만한 명작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세계인을 주목시킬 만한 소장품이 없다.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작품이 부족하다는 것도 선진 미술관과 근본적 차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태생적으로 우리의 미술관과 다른 외국사례를 명확한 검증 없이 받아들일 경우 외형적 모방이 가져온 실패의 그늘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한 만큼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은 철저배제해야 한다. 법인화에 막연한 기대를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민간협력이 미래 문화기관의 흐름인 추세는 분명하다. 따라서 혁신적으로 재정자립도를 개선하고,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한 해외미술관에 대하여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심도 있는 연구 분석이 이루어진 토대에서 실질적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3.

국공립미술관의 운영주체나 정체성 정립과 더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행정의 변화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법인화가 실행된다면 행정조직의 변화가 불가피하겠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30여 년 이상 문제를 확대해온 중요한 요인이 조직운영의 불합리에 있었다는 점에서 현 시스템의 변화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술관제도는 그 운영을 책임질 전문가집단의 고려 없이는 결코 기대하기 어렵다’(이인범,『뉴스메이커』, 2008)는 지적은 국공립미술관의 현 문제를 가장 명쾌하게 진단한 주장이다. 사실상 미술관은 책임 있는 전문가의 자율성이 얼마만큼 보장되느냐에서부터 판가름난다. 자율성과 창의성은 미술관이 지녀야 할 가장 큰 지향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자율성과 창의성이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예컨대 관장의 임기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교체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실적 위주, 인맥중심을 뛰어넘지 못하고, 미술관 경영과 무관한 비전문인을 관장으로 임명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비미술인과 작가들의 국공립미술관장직 취임이 국제경쟁력을 현저히 저해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더욱이 미술관장직이 퇴직 교수들을 위한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윤진섭, 『미술평단』, 2010) 그의 주장처럼 미술관 관장은 현장에 어두운 이론가나 비전문가가 임명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동시에 관장직을 책임감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지원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관장 임기가 짧은 현 체재에서는 기획에서 실행까지 최소 2~3년의 세월이 필요한 대형전시는 시도조차 힘들다. 기획전시를 위한 충분한 시간과 신뢰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새롭게 임명되는 관장들은 단기간 내에 성과를 올리기에 급급한 전시운영에 빠지기 쉽다.

기업 CEO는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일할 때 그만큼 효과를 기대하듯이 미술관 관장은 미술문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넓고 깊을수록 운영에 이바지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를 인정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유독 예술에 관해서 만큼은 전문성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해왔다. 예술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특성에 대한 몰이해이다. 이는 미술전공자들마저 취업에 따라 줄 세우기로 대학을 평가했던 제도나, 미술 과목을 대학입시에 불필요한 과목처럼 여기는 교육정책만 보더라도 우리 정부가 미술분야나 미술인의 전문성에 대한 어떠한 편견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미술에 대한 정부의 태도나 국민적 관심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외형적 형태만 바꾼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미술행정의 변동 원인이 정치 상황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수록 더욱 어렵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고, 정책에 따라 사람이 바뀌는 비효율적 현상의 반복에서 국공립미술관의 발전상은 세울 수 없는 허상이다.

여기에는 전문가와 전문성의 판단 기준 또한 고려할 점이 많다. 단지 미술을 전공했다거나, 세계미술에 대한 관심과 세계화를 추진하는 것만으로 국공립미술관을 이끌 수는 없다. 미술관 전문가로서 한국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는 기본이다. 한국 미술시장,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술계가 안고 있는 총체적 현안을 명확히 알고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고도의 관리조정능력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문화정책기관과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협상력이나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관장의 임기와 행정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미술관 운영에서 장기적 발전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이런 문제는 하위직급으로 내려갈수록 더 심각하다. 학예사의 임기와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끊임없이 되풀이되어온 온 부분이다. 행정공무원 수보다 현저하게 부족한 인력배치, 불완전한 계약기간, 비효율적 조직구성 등으로 행정 구조상 학예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미술관에서 전시다운 전시기획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이다. ‘학예사는 박물관미술관의 꽃’이라는 말이 한낱 희망적 수식어에 지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12년 우리나라 759개 직업에 종사하는 2만 6천여 명을 대상으로 직업 만족도를 조사한 리서치에서 학예사가 미래유망 직종으로 상위에 링크된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 주는 막막함 때문이다.

우리나라 등록미술관은 2013년 문화재총람기준으로 154개관이다. 2007년 115개관(국립 1개, 공립 24개, 사립 87개, 대학 3개)에서 39개관(국립 1개, 공립 38개, 사립 110개, 대학 5개)이 증가했다. 내부적으로 보면 공립미술관이 14개관이 증가했다. 그러나 전문인력수는 변함이 없다. 38개의 공립미술관을 기준으로 1관당 평균 학예사는 3.03명이다. 이는 1관당 12.29명의 직원수 대비 4분의 1 수준이다. 1개뿐인 국립현대미술관만 놓고 보면 직원수 211명 대비 학예인력수는 19명으로 10분의 1 수준이다. 주목할 부분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100명이던 직원수가 100% 증가(2012년 문화재총람기준)한 반면, 학예인력은 변화 폭이 없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직원 수는 증가했지만 학예인력의 충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술계의 많은 전문가가 학예사 인력이 전국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를 해왔지만, 현실적 변화는 미비하다. 학예사의 불균형은 단순히 수적 열세가 아니라 학예사 담당업무와 직결되어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에 있다. 이런 답답한 현실구조는 정부의 비효율적 행정조직과 절차와 무관하지 않다. 효율적이지 못한 행정조직이나 절차는 미술관의 발전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이명박 정부시절에는 문화예술국 아래에 박물관정책과와 예술정책과가 있었는데, 이번 박근혜 정부에서는 박물관은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 미술관은 예술국 소속으로 개편되었다. 새로 개편된 행정조직을 보면 박물관에 비해서 미술관의 정책적 지원과 관련업무가 구체적이고 전문화되지 않았다. <표1>(문화체육관광부. 2013) 에 정리한 예술정책과 주요 업무를 보면 박물관과 견주어 미술관은 문화예술이라는 큰 틀에 속하는 하나의 분야일 뿐 실질적인 미술관 운영발전과 관련한 직접적인 항목을 발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밑줄친 내용만 보더라도 박물관 정책과에서는 ‘국립박물관의 설립 협의에 관한 사항’, ‘공립·사립박물관의 육성·지원’, ‘학예사 양성 등 전문인력의 육성’,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운영 지원 및 관리’, ‘공립·사립 박물관의 육성·지원’ 등 국공립박물관의 발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제1차관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

예술국

박물관 정책과

예술정책과

주요업무(부분)

주요업무(부분)

․박물관 정책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조정 및 추진

․박물관 관련 법령 및 제도의 정비

․박물관 진흥을 위한 조사·연구

국립박물관의 설립 협의에 관한 사항

공립·사립 박물관의 육성·지원

학예사 양성 등 전문인력의 육성

․박물관 관련 단체의 지원

․박물관 관련 남북 및 국제 교류·협력사업 계획 수립 및 추진

․해외박물관 한국실 관련 업무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운영 지원 및 관리

․예술정책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ㆍ조정 및 시행

․문화예술인의 복지 증진에 관한 사항

․문학 및 회화ㆍ조각ㆍ사진 등 조형예술분야의 창작 활동 및 관련 단체의 지원

․문화예술 마케팅 활성화 및 예술 산업화에 관한 사항

․문학ㆍ조형예술분야의 국제 교류 및 해외 진출에 관한 사항

문화예술 창작 및 기획ㆍ경영 등 분야별 전문인력 양성에 관한 사항

․대한민국예술원ㆍ한국예술종합학교ㆍ국립현대미술관ㆍ한국예술인복지재단ㆍ예술경영지원센터ㆍ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및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 관련된 업무

그러나 미술관은 주요업무에서 미술관만을 위한 정책이나 업무보다는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미술분야도 3명의 담당자에 따라 ‘회화ㆍ조각ㆍ사진 등 조형예술분야의 창작 활동 및 관련 단체의 지원’, ‘미술분야 활성화 및 해외시장 진출 지원’, ‘시각예술 법인관리’, ‘미술관 및 미술인력 지원’, ‘비엔날레 지원’, ‘미술정책’, ‘미술관법인화’, ‘건축물미술작품 관련’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력구성은 박물관의 주요업무별 담당자가 각각 배치되어 있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결국 박물관은 박물관정책과가 독립적 형태를 띠고 있어서 박물관에 관련한 전반적인 업무를 추진한다면, 미술관은 예술국에 소속된 몇몇 담당자가 맡은 형식이다. 한마디로 현 조직구성으로만 보면 박물관의 행정조직에 비해서 미술관의 조직은 전문성이 강화되지 않은 형태이다.

사실 이러한 조직구성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따로 구분해서 바라보는 오랜 언어적 습관과 잘못된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즉 박물관이나 미술관 스스로 박물관․미술관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명시된 주요업무 내용들이 효율적 운영에 따라 현실화되면 다행이지만, 현실적으로 이원화된 행정조직과 업무내용을 보면 박물관․미술관에 관한 상호 근본적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한 실질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만약, 현실적으로 박물관․미술관의 통합적 조직구성이 어렵다면, 박물관정책과처럼 예술국 소속의 미술관정책과라는 전문화된 조직구성이 마련되어야 한다. 미술관 행정의 자율성확보와 장기 발전계획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조직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국공립미술관의 조직구성 역시 바뀌어야 한다. 미술관내 행정절차는 세분화될수록 실행은 더 복잡하고 더딜 수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미술관의 구조는 상하구분의 수직적 세분화의 강화가 아닌 각 전문분야 간 수평적 구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미술관은 명령체계의 군대나 생산중심의 공장과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하계훈 미술평론가의 견해처럼 미술관은 상하관계의 중심인 경성조직보다는 수평적 협력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연성조직으로 구성되어야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계훈, 『미술평론』 2006)

미술관은 예술이 지닌 특성상 각 분야의 상호 유기적 관계야말로 큰 시너지효과를 가져오는 구조이다. 박물관의 조직구성에 대해 1973년 미국박물관협회(AAM: The America Association of Museums)가 전문성에 따라 분류한 것을 따르고 인정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평적 구조의 실행을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행정절차상 가장 이상적인 것은 당연히 수평적 구조이지만, 이는 유기적 관계가 담보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조직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조직에서의 유기적 관계가 성공적 결과물을 도출하려면, 수평적 관계의 각 부서 수장들의 능력과 전문성이 모두 뛰어나거나 유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기적 관계의 성공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각 분야의 유기적 관계는 각 분야의 전문성이 보장되고 그 전문적 능력이 상호 융합적으로 작용할 때 진정한 행정의 자율성과 미술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의 효과적인 행정조직 구성과 함께 미술계 또한 전문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실천적 방안마련에 자성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술 대학이나 미술계에서는 전문 인력에 대한 육성을 온전하게 하고 있는지? 예술행정 관련학과 출신들에 대한 미술계의 인식과 미술계에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위치는 어떤지? ‘행정의 자율성’을 위해 미술인들 스스로 ‘순수’에 대한 특권의식을 버려야 할 부분은 없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학예사 스스로 ‘국가 공무원’임을 자처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편, 직책을 권위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버려할 특권의식이다. 예컨대 관련 분야 유명인들에게는 저자세이지만 무명인들에게는 강한 권위성을 나타내는 것은 불합리한 행정절차에서 배운 또 하나의 저급한 모방권위에 불과하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이든 권위보다는 겸손, 자만심보다는 자부심이 실력과 노력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4.

전시는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 중 핵심이다. 문제는 어떤 작품을 어떠한 기획의도와 예술 교육적 차원에서 전시하는가에 있다. 현재 미술가 중 많은 사람이 국공립미술관 운영상 문제점으로 제기하는 것이 블록버스터 전시이다. 이제는 하나의 연례행사처럼 국내에서 치러지고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보는 시각에 따라 견해차가 크다. 지나치게 엘리트주의(elitism)적 감상공간에 머물렀던 미술관이 대중적(public) 감상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미술문화의 소통확대를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과 국공립미술관이 상업주의에 편승하여 대여전시장으로 전락하고, 민간자본과 언론사에 의해 국공립미술관으로서 기획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시각이 팽팽하다. 블록버스터 전시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의 핵심은 지나친 상업주의와 불분명한 수준의 해외 작가까지 지나친 과장으로 명작화 하는 현실과 상대적으로 국내작가들을 향한 관심과 연구에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미흡하다는 것이 주된 논조이다. 그렇다면 진정 블록버스터 전시는 부정적 것인가? 한번 냉정히 짚어봐야 한다.

1972년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열린 ‘투탕카멘의 보물’에서 시작한 블록버스터 전시가 현재까지 주요 국가에서 매년 기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블록버스터가 그 이름처럼 폭발력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 정확히 말하면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색채의 마술사-샤갈’전에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고 난 이후부터이다. 단일전시로 역대 최대성과를 올린 샤갈전의 대성공으로 국공립미술관은 수익과 미술관 인지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는 식의 긍정적 평가 하에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전시 개최에 앞장섰다. 그리고 2005~2011년까지 총 28건의 블록버스터 전시가 국공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사실, 국내의 블록버스터 개최빈도를 해외와 견줘보면 지나친 것은 아니다. 2005~2011년 같은 기간 미국은 337건(1위), 프랑스는 80건(2위), 영국은 64건(3위) 순이다. 총 전시 관람객 20만 명 이상을 기록한 808건의 해외 블록버스터 전시의 장소와 공간을 분석한 결과 세계 5개 대륙과 23개 국가, 76개 도시, 170개의 전시공간에서 블록버스터 전시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세계동향으로 보면 블록버스터 전시는 앞으로도 유럽대륙의 국가를 중심으로 지속해서 개최될 전망이다. 풍부하고 다양한 작품을 보유한 나라들로는 당연한 방향과 계획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춰보면 사정이 다르다. 최근 블록버스터 전시의 국내외 현황 비교연구논문(고필규, 「블록버스터 전시의 국내외 현황 비교 연구」 2013)에 따른 전시빈도 수를 보면 서울시립미술관이 9건으로 가장 높고, 예술의 전당 8건, 국립중앙박물관 6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3건,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 1건으로 나타났다. 전시 기간은 평균적으로 ‘91~120’, ‘121~150’ 일간 개최되는 경우가 많다. ‘61~90’, ‘91~120’ 일간 개최된 전시가 많은 해외 블록버스터 경우와 비교된다. 결과적으로 매년 국공립미술관에서 1건 이상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평균 4개월 이상 열어온 셈이다. 문제는 수치상으로 드러났듯이 지나친 서울편중현상(경기지역은 국립과천과학관 1건)이다. 해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순회전’이 국내에서는 서울 한곳에서 기간만 늘려 ‘단일전’의 형태로 열려 그만큼 상업성에 기댄 측면이 드러난다. 전시기간은 일 년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길다. 지역편중현상과 전시기간 장기화의 두 가지 문제는 전적으로 상업적 이윤을 위한 기획사나 투자기업의 측면에 의존한 선택이다. 전시기획부터 미술관은 배제된 채 기획사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나타난 결과이다. 최소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충족되어야 수십억의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으니 기획사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다. 미술관은 한번 전시로 2~4억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기획 의도나 전시작품의 예술성에 관한 이견조율에는 그만큼 소홀하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최된 블록버스터는 몇몇 전시를 제외하면 유명화가의 이름과 한두 작품에 기댄 과대광고로 포장한 전시가 많았다. ‘최고’, ‘최대’, ‘유일한’ 등 수식어를 남발하며 홍보에만 전력한 전시일수록 볼거리가 적었다. 한마디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표현이 제격인 전시가 많았다.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는 고사하고, 명확한 전시기획의도마저 읽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마치 주요 영양소는 빠진 채 부풀려진 빵처럼 형식과 광고, 관람객 동원에만 초점을 둔 마케팅에 순수한 국내 관람객이 속은 꼴이며, 이를 국공립미술관이 돕는 형식이었다. 관람객의 측면에서 보면 세계에 흩어진 유명작가와 명작을 한 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충분히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작품의 질이 그만큼 충족되었을 때이다.

현재까지의 국내 블록버스터 전시를 해외 블록버스터 전시와 비교해 보면 전시수준과 세계적 흐름, 장르, 기획형태와 전시형태 등 콘텐츠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지나치게 그룹전과 특정 작가에 편중된 것이나 현대미술의 동향과는 무관한 과거 미술에만 머물러있는 시각이 문제이다. 공공성과 대중성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개최되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어느덧 공공성과 전문성은 뒷전이고 대중성과 상업성만 중요시하는 전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국공립미술관으로서 전시기획력 상실은 물론 작품수집, 보존, 연구라는 미술관 고유의 역할마저 망각하고 있다. 기왕에 외부 자본으로 블록버스터를 전시를 개최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계약상에서 내용과 형식에 대한 조율 정도는 행사할 만한 조항이나 검증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현재 이러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데도 블록버스터의 전시수준이 떨어진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전문가적 판단과 기획력이 없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결국, 블록버스터 전시가 세계적 동향이자 대중의 미술감상 향유에 이바지하는 순기능에 동의한다 해도 지나치게 해외전시에 집중되는 것을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속해서 강조했듯이 세계미술의 흐름과 어떠한 차이와 있고 우리의 미술이 지닌 미적 가치와 정체성을 고민하고 발견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니라면 블록버스터 전시는 언제든지 고려해야할 대상이다.

 

 

5.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과학관-박물관-미술관-도서관' 통합 운영안을 검토하며, 관리기관간 협의체를 구성할 것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기획이 실행되어 과학, 예술, 역사 등이 융합된 전국 문화시설 협력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각 기관의 근본적인 발전방향과 전문 인력 양성 없이 이상적인 조합만을 그리며 추진하는 것은 정체성 없는 문화시설을 만드는 꼴이 될 수 있다.

문화정책은 '누구를 위해서(for whom)', '무엇을(for what)', 어떻게(how)' 할 것인가에서 출발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떤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조사와 전문가의 견해를 바탕으로 실행한 사업이라도 기대와 다르게 실패할 수 있다. 문제는 실패의 원인과 그에 대한 면밀한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립과 추진과정, 블록버스터의 기획과 진행, 예산안 결정과 집행, 공공미술관 관장임명 등등 국공립미술관과 관련한 일을 진행과정에서 가능한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자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부정적일 때 그 과정에 참여한 혹은 관계한 누구도 자기 성찰과 반성에는 인색한 게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떤 일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일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에 앞서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잘못을 줄이는 해결책이 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미술인의 진정한 자부심은 작가든 학예사든 비평가든 이론가든 누구라도 자신의 생산물이 타인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움직이게 할 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외의 것들은 미술 행위를 제대로 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궁극적으로 국공립미술관은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세계미술문화의 흐름과 소통하는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 국공립미술관의 정체성 정립과 행정의 자율성, 전문성 강화는 국공립미술관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해 전개해 나가야 할 핵심사항이다. 급변하는 세계문화 속에서 21세기 한국 미술관을 리드할 전문가를 양성하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인적인프라 구축은 한국국공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가장 든든한 바탕이 될 것이다.

 

<미술평단201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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