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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구의 ‘나무의 숨’

변종필

이병구의 ‘나무의 숨’

 

 

 

 조각가 이병구(47)가 만든 가구는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의 같음을 벗겨 내고 관점의 다름을 추구한 ‘제작방식과 관점의 전복’이라는 특별함을 지녔다. 고가의 원목 대신 인테리어 공사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미송, 자작, 낙엽송, 코어 합판 등 일반합판을 한 장 한 장 붙이고, 압착공구로 틀어짐을 막고, 건조하는 더딘 속도를 거치는 제작방식을 고집한다. 합판을 서로 접착제로 잇대어 만드는 행위는 본질적 ‘자연다움’을 잃어버린 채, 질료로만 남아있는 목재에 자연성을 부여하려는 일종의 의식과 같다. 자연성은 목수로 살면서 자신을 둘러싼 경험과 시간을 마름질하고, 자연 속에 펼쳐진 미에 대한 사색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재발견한 ‘자연다움’이다. 이는 사실상 조각가로 살았던 삶을 일깨운 자기 회귀적 성찰이다.

그가 일관되게 고집하는 제작방식은 관점의 다름이 만들어낸 독특한 미감의 창출로 이어진다. 일상에서 부딪힌 보통 사람과 만남이 때때로 인생의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하듯 합판이라는 흔한 재료가 어울려 인간과 인간을 잇는 특별한 가구로 탈바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장의 합판이 만들어낸 스트라이프 무늬와 나이테 같은 동심원은 보편적 관점에서 벗어난 부분이 하나 둘 만나 이루어낸 미적 효과이다. 그의 가구에서 색다른 경쾌함과 생동감을 느끼는 요인으로 자칫 투박하고 무거울 수 있는 인상을 지워내고 나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자연미를 극대화 시켰다.

 

주지하다피시 가구는 인간의 정착생활상 편의를 위해 제작되었던 생활의 도구지만, 때때로 신분과시나 취미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때 가구는 생활필수품에서 삶의 품격을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지역과 주택양식, 사람의 기호에 크게 영향 받아 그에 순응한 형태와 태도를 갖춘다. 가구의 운명이다. 이병구의 가구는 삶의 품격을 판단하는 기준보다는 사람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귀족적이거나 사치스러움과 거리가 멀다. 인간적이고 친근하다. 나무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을 중시한다. 이러한 느낌은 그가 작품을 제작하면서 되찾은 창작의 기쁨이기도 하다. 얇은 합판을 일정한 두께만큼 접합하고, 조이는 반복행위에 수반되는 기다림은 가구를 만드는 동안 가장 지루한 시간이지만, 이 기다림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주는 행복감이 그를 작업대에 머물게 하는 원동력이다.

“가구를 만들면서 맛보았던 행복감을 나의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보잘것없는 합판이 가구가 되어 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다”라는 작가의 고백에서 많은 시간과 지난한 공력이 필요한 과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와 그만의 가구에 담긴 인간미를 통해 살아나는 ‘나무의 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이병구의 가구는 조각가로서의 날카로운 감각을 내세웠던 지난 작품세계의 철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인간 생활 속에 변용된 자연의 덩어리, 특히 질료 덩어리를 탐구하던 시절의 연장이다. 건축자재로 쓰이던 목재를 활용해 ‘생명의 부활과 자연으로의 환원’을 유도했던 작품이나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의 근원으로 사각을 고집하며 ‘최소한(minimal) 형 속의 단순한 질서’를 추구했던 작품들과 맞닿아 있다. 단순성, 명료성, 반복성, 사물성, 순수성이라는 미니멀리즘적 특성을 추구했던 시기의 요소들이 이번 가구작품들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각과 원으로 구성한 단순한 형태, 목재 이외는 사용하지 않은 재료의 단일성, 화려한 색이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표현의 순수성에서 확인된다.

 

 예술가는 살아가는 동안 창작이 주는 목마름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이 점에서 이병구의 전시는 목수의 삶에서 조각가로의 면모를 다시 회복한 전환점이다. 조각가로 걸어온 20년의 행보를 멈추고 15년을 목수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삶의 형식과 태도가 압축된 가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동시에 그를 더는 조각가와 목수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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