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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톡톡>‘영웅과 유명인의 간격’

변종필

  

위대한 화가의 기준? - ‘영웅과 유명인의 간격’

 

세계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수많은 작가 중 위대한 화가로 불릴 수 있는 미술가는 누구인가? 또 그 기준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은 오랜 시간 반복됐지만 여전히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란 쉽지 않다. 많은 미술 자료나 연구 성과를 통해 세계미술사에는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올라간 화가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삶과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관점이나 환경에 따라 상이(相異)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한마디로, 화가에 대한 평가는 기준의 모호성, 시각의 유동성 때문에 언제나 변화가능하다.

 


<그림 1>

 

<그림 1>은 위대한 화가라면 지닐 만한 요소, 혹은 위대한 화가를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을 만한 대표적 항목들을 추려 도식화한 것이다. 그림의 9가지 항목 중에서 위대한 미술가를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수업이나 강연 등에서 반복적으로 해왔던 질문에 대한 그동안의 답변을 종합할 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항목은 창의성이다. 미술작품은 창조적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창의성의 선택은 당연한 결과로 인식된다. 모방과 복제가 난무하는 현대미술에서 창의성의 기준이 모호해졌지만, 창의성이 예술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미술사적 평가나 미술사에 끼친 영향을 최우선으로 꼽는 응답자도 많은데, 이 경우는 미술분야 전공자들의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아무래도 전공자들로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한층 구체적인 이해와 그에 따른 평가가 포함된 결과로 해석된다.

반면, 일반인들은 인기도나 작품가격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화가들의 인지도나 미술시장이 확대되면서 미술작품을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인식의 대중적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이외 제시한 다른 항목을 꼽는 응답자들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항목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정확히 인지해야 할 바는, 제시한 항목 중 그 어느 것도 위대한 화가를 꼽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작품크기와 작품 수만으로 위대한 화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단적인 예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와 김홍도의 풍속화첩을 크기로 단순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미술사를 통해볼 때 평생 제작한 작품 수만 놓고 본다면 루벤스나 피카소를 넘어설 작가는 거의 없다. 그러나, 루벤스와 피카소가 남긴 방대한 작품 수를 20여 점의 작품만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혹은 하나의 작품만으로도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르셀 뒤샹이 남긴 작품 수와 비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화가가 남긴 작품 수가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요인은 될 수 있으나 위대한 화가의 절대기준으로는 삼을 수 없다. 인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적 인기가 높다고 무조건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없다. 대중적 인기가 많을지라도 미술사적 가치나 끼친 영향이 부족하다면, 유명인으로 명성은 얻을 수 있어도 미술사에 남을만한 위대한 화가의 대열에는 속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가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술품 가격 역시 언급한 다른 항목처럼 위대한 화가를 판별하는 절대기준은 아니다. 다만, 미술품 가격이 자본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화가의 지위와 지명도를 가늠하는 가장 실질적인 판단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한마디로 소비사회에서 작품가격은 위대한 화가를 판단하는 최우선 기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비싼 그림이 좋은 그림이다”, “팔리지 않은 그림은 작품이 아니다”는 말이 통용될 만큼 현대사회에서 미술품 가격은 작가를 평가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동시에 이러한 가격 지표들은 미술사적․문화적․사회적 가공을 거듭하며 재생산되고 있기에 무시할 수 없는 근거와 영향력까지 확보해나가고 있다. 작품에 내재한 예술성보다 시장논리에 따라 미술작품이 재화가치로 환산되는 것은 씁쓸하지만, 작품의 가치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교환 원리에 좌우되는 생리가 지속되는 한 이 같은 현상을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라고 했던 곰브리치의 말은 미술이 미술가의 삶과 예술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즉, 미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술작품에 앞서 미술가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미술가의 작품을 평가할 때 해당 작가의 삶과 예술이 여전히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이유이다. 세계미술사에 기록된 위대한 화가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만의 표현력과 스타일, 아이디어를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한 창조적 사람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위대한 화가는 그들만이 지닌 창조적 영감과 능력을 통해 시대정신이나 역사관 등을 그림에 담아 타자의 의식이나 세계관에 영향을 끼친 영웅적 면모를 갖춘 사람들이다.

영웅은 위대한 인물 또는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다. 다니엘 부어스틴(Daniel J. Boorstin)은 『이미지와 환상』(Image, 1962)에서 ‘우리는 유명인을 만들 수 있지만, 영웅은 만들 수 없다. 영웅은 스스로 영웅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영웅과 유명인을 혼동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날이 가면 갈수록 유명인과 영웅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대함에서 얻어야 할 명성을 이름만 유명해서 얻는 명성으로 격하시키고 있다.’며 유명인과 영웅의 차이점을 명료하게 지적했다. 실제 과거와 비교하여 시대적 유행의 주기가 짧고, 대중매체를 활용한 마케팅전략이 보편화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유명인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영웅적 면모를 지닌 예술가나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이러한 현실은, 부어스틴의 표현처럼 현대미술계에 진짜 영웅은 사라지고, 영웅을 행세하는 유명인만 난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한다. 예술의 특성이 오로지 미적 감성과 미적 가치판단을 찾고 일깨우는 것에만 있지 않은 이상 예술작품은 역사적 진실을 찾고, 정의로운 사회, 인간존중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예술로서의 창의성 및 정체성과 함께 역사와 시대 상황을 작품에 녹여냄으로써 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제시하는 한편,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인류에 대한 반성과 희망을 창출한 작품들을 만나는 것은 잃어버린 미감을 되찾은 듯 감동을 준다.

예를 들어 1830년 7월 28일, 왕정복고에 반대하여 봉기한 파리 시민이 3일간의 시가전 끝에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고 루이 필립을 국왕으로 맞는 7월 혁명을 주제로 한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ix,1798~1863, 프랑스)의 <자유를 이끄는 여인>, 프랑스 군대에 의해 스페인의 무고한 시민 5천 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보고 인간의 잔인함을 통렬하게 고발한 프란시스 고야(Francis Goya, 1746~1828, 프랑스)의 <1808년 5월 3일>, 스페인 내란 중 파시스트 독재자와 나치에 의해 2천 명 이상의 시민이 학살된 비극의 역사를 고발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스페인)의 <게르니카>는 그림이 감상의 대상을 넘어 인간의 가치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 실례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유명한 비평가로 활동하며 미술, 건축,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폭넓은 글을 썼던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의 삶과 예술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윌리암 터너(William Turner,1775~1851, 영국)가 그린 <노예선>. ‘민중에게서 쥐어짠 금 보따리를 집어삼키는 왕’을 묘사하여 황제 루이 필립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던 풍자화의 대가 오노레 도미에 (Honore Daumier,1808~1879, 프랑스)가 노동자계층의 피폐한 현실을 정직한 시선으로 표현한 <삼등열차>. <메두사 호의 뗏목>이라는 단 하나의 작품만으로 당대 정부의 무능력과 소수 인간의 욕심이 부른 처참한 비극을 고발한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 1791~1824, 프랑스)의 그림들은 하나의 미술작품이 얼마든지 인간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학살당한 멕시코 농민을 종교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멕시코), 회화가 아닌 사진매체를 통해 이민자와 무주택자들의 힘겨운 삶의 현장을 담아낸 도로시어 랭 (Dorothea Lange, 1895∼1965,미국), 이 밖에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 독일),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독일) 등 개별성이 뚜렷한 창작활동으로 영웅적 면모를 갖추거나 쌓아가며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포함될 만한 역량을 지닌 작가들이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글에서 언급한 사회 고발적 작품을 그린 화가들만이 위대한 화가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동시대 및 이후의 화가들에게 미술사적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 작품을 통해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고발하고 삶의 존재적 가치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여전히 반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이야 말로 우리가 미술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진정한 영웅의 모습은 아닐는지.

오늘날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생존무대가 시대적 트렌드만을 쫓는 작품들로 채워져 가는 현실에서 인류가 삶의 존재적 가치를 회복하는데 자극을 줄 수 있는 영웅적 면모를 지닌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은 ‘영웅과 유명인의 간격’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이종숭 옮김 《서양미술사》 p.15. 예경

다니엘부어스틴 지음, 정태철 옮김『이미지와 환상』사계절, 2010. pp.79-80. 참조 및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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