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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톡톡> 예술과 비예술②-현대미술에서 사용된 표현재료의 무제한성

변종필

<아트톡톡> 예술과 비예술②-현대미술에서 사용된 표현재료의 무제한성

 

 

예술과 비예술①과 마찬가지로 예시된 그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과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지난 호와 다른 점은 1번부터 5번까지 예시 작품이 모두 세계미술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원숭이나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 작가들만의 작품이다.

시각적으로 짐작한 분들도 있겠지만, 이번 예시작품에도 다른 작품과 비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는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내용적 의미를 떠나 제작재료에서 나타나는 차이이다. 미술사를 돌이켜보면 고대로부터 조각이나 회화에 사용된 재료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조소에서는 대리석, 청동, 석고, 흙이 주재료였고, 회화에서는 목탄, 펜, 템페라, 안료, 튜브물감 등이 주재료였다. 무엇보다 종교적 측면에서 혐오감을 주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재료는 사용하지 않았고, 보존성이 뛰어난 재료를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더는 혐오감, 윤리성, 도덕성, 보존성에 대해 규제받지 않는다. 작가의지에 따른 결과에 주목할 뿐 작품에 사용한 재료는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역할과 때로는 작품의 내용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술의 특성이 현대에 이르러 한층 폭넓어 지면서 새로움을 향한 작가들의 열망과 투쟁적 활동이 기발한 재료를 사용하여 고정관념을 깨는 것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예시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1번과 2번 작품은 일반적인 미술재료가 아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료로 만든 것이다. 1번은 영국출신의 괴짜 작가 마크 퀸의 <셀프(Self)>라는 작품으로 재료는 ‘인간의 피’다. 마크 퀸은 ‘인간의 피는 과연 얼마나 재생산되는가?’ 라는 호기심 때문에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5개월 동안 자신의 몸에서 빼낸 피 4500그램으로 만들었다. 1991년 첫 작품을 만든 뒤 동일한 작품을 5년 간격으로 총 4점을 제작하였다. 그 중 하나를 우리나라 아라리오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재료의 특성상 보관할 때 피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냉동상태(-9℃)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이다.1)

2번은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전위예술가인 피에로 만조니가 1916년에 알비솔라 마리나의 페셰토 갤러리에 전시한 <예술가의 똥>이란 작품이다. ‘예술가의 똥. 정량 30g. 원상태보존. 1961년 5월에 생산 포장됨’이란 내용의 라벨을 4개 국어(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써서 붙이고 납땜으로 밀폐시킨 작품이다.2) 이 작품은 의미부여를 중시하는 사회를 향해 “의미 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의미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글을 읽는 독자 중 현대미술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언급한 작품들은 정말이지 너무 억지스럽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예술작품의 재료가 피와 배설물이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쉽게 공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 생각해보자. 피에로 만조니의 말대로 따지고 보면 세상 만물은 의미 없이 생겨난 것은 없다. 인간이 필요로 만들었든 저절로 생겨났든 하찮은 물건이라도 각각 나름의 의미는 있다. 인간의 배설물, 그것도 자신의 배설물은 몸 밖으로 배출되기까지 자신의 몸에 들어있던 것이다. 따라서 똥은 배설하기 조금 전까지 나의 몸속 일부라 할 수 있다. 피에르 만조니는 그것을 밀폐된 공간에 담아서 영구보존함으로써 한순간 자신의 몸속 일부였던 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는 만조니의 작품을 하나의 ‘생산’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쨌든 제시한 다섯 작품 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작품은 4번 정물화 3번 인물화이다. 다음으로 5번을 선택한 응답자가 많았다. 4번은 사실주의를 강조했던 쿠르베의 그림으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3번은 피카소의 1905년 작품인 <파이프를 든 소년>3)이다. 이 작품은 소더비 경매에서 1억420만달러(한화 1,215억 원)에 낙찰되어 그전까지 1위였던 반 고흐의 작품'<의사 가셰의 초상>이 세운 경매가(8,250만 달러)를 따돌리며 세계미술계를 놀라게 하며 피카소의 명성을 재확인시킨 작품이다.4) <파이프를 든 소년>은 피카소의 인생에서 2년 동안 지속됐던 '장미기간'을 대표하며, 특히 다작으로 유명한 피카소 작품 중 한 시기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5번은 피카소와 더불어 모던아트 시대를 열었던 마티스의 <춤>이란 작품이다.(지난 호 참조) 이상 세 작품은 시각적으로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거나 매스컴을 통해서 세계적인 화젯거리를 남긴 작품이라는 인지도만큼 선택 층이 넓었다.

반면, 1번과 2번을 선택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여기에 대한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번과 2번 작품에 관한 사전 정보가 없는 만큼 친근감보다는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작았다. 그나마 1번은 뛰어난 표현력은 없지만 일단 사람의 두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2번보다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작가나 재료는 알지 못해도, 단순한 초상조각으로 인식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2번은 작가가 만든 것도, 그린 것도 아닌 오브제에 제목만 붙여 놓아 깡통 이상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 실제로 이 작품에 관해서는 ‘그것도 예술작품인가요? 혹시 깡통을 그린 그림인가요?’ 식의 질문은 있었지만, 이 작품에 호감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예술가의 똥>이 전시되었을 때 당시 에디션이 매겨진 90개의 캔은 30g의 내용물 만큼 금값으로 환산판매 되었으며, 1990년대 소더비 경매에서 67,000달러에 팔렸다는 점이다.5) 한마디로 ‘똥’이 ‘금’으로 변한 셈이다. <예술가의 똥>을 예술작품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이 작품을 제작한 작가나, 배설물을 금값과 동일시하여 구매한 컬렉터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듯하다.

살펴본 마크 퀸과 피에로 만조니의 작품을 놓고 보면 현대미술의 예술과 비예술 기준은 무엇인지 의문이 증폭되고, 갈수록 모호해진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대미술은 예술을 제한하는 명확한 근거나 객관적 판단 기준이 없어 인간에 의해 시도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는 유별난 재료를 사용한 현대미술의 대표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판 2>는 영국의 흑인 작가 크리스 오필리가 1996년에 제작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성모마리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유 또한 작품의 내용과 사용한 재료 때문이다. 크리스 오필리가 핵심적으로 사용하는 작품 재료는 놀랍게도 코끼리의 배설물, 즉 똥이다. 그의 작품은 종교적 주제를 코끼리 똥으로 표현해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사실 그가 사용하는 코끼리 똥은 건조된 것으로 아프리카인에게는 집을 짓거나 불을 지필 때 필요한 삶의 에너지원이자 풍요의 상징이다. 따라서 작가의 시각에서 보면 코끼리 똥은 불결하기보다는 인간에게 편리함과 안전함을 주는 고마운 매체이다. 단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나 편견이 이웃 문화를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인에게 이 작품은 그 어떤 재료보다 소중한 것으로 표현한 작품일 수 있다. 크리스 오필리의 작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더라도 작품에 사용한 재료가 코끼리 배설물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대미술에서 표현재료의 무한성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다. 이 밖에 남자의 정액과 타액을 재료로 삼은 그린 조지&길버트, 지저분한 침실을 그대로 미술관으로 옮겨와 작품화한 트레이시 에민도 내용보다 표현재료에서 유별남을 보여준다. 특히 박제된 상어, 송아지, 염소 등을 포름알데히드에 담아 작품화하거나 살아있는 파리와 썩어가는 동물 시체를 그대로 작품재료로 사용한 영국 yBa의 데미안 허스트 작품은 재료의 유별남에서 가장 대표적이다. 그와 그의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작품들은, 동물 학대로 돈을 번 혐오스러운 작가, 뻔뻔한 작품이라는 식의 혹독한 비판도 받았지만, 2005년 세계미술계의 파워 1위에 뽑혀 당당히 현대미술의 거장 반열에 올랐고, 현대미술계는 여전히 그를 회자하고 있다. 크리스 오필리, 트레이시 에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역시 마크 퀸이나 피에로 만조니의 작품처럼 독특한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미술에서 재료는 예술과 비예술을 나누는 절대기준이 되지 않는다. 현대미술에서는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가보다는 재료를 사용한 이유 또는 재료가 작품에 끼친 영향 등에 따라 미적 가치판단이 달라진다. 실제로 미술은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내용이나 형식을 갖추고 있을 때 그만큼 파괴력을 얻는다. 현존하는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현대 미술가들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혹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재료를 활용해 너무도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예술작품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현대미술가는 우리가 예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아니면 스스로 삶에 결코 중요하지 않았던 것에서 만나게 되는 이질감, 즉 새로움이라는 현대미술의 특징을 누구보다 빠르게 인식하며 창작행위에 차용하고 있다. 예술과 비예술 사이에서 맴돌던 키치적 미술품마저 표현재료와는 무관하게 예술작품 속으로 당당히 편입시켰다. 이런 점들에서 현대미술은 미술가들의 비틀린 상상력에서 뛰쳐나온 기발한 재료들로 인해 더욱 풍요로운 창조세계를 전해 준다는 긍정적 시각을 가져볼 만하다. 피에로 만조니가 강조했던 “의미 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의미 있다.”는 말처럼 어차피 고유한 재료를 고집하거나 기발한 재료를 찾거나 실질적 미적 판단은 작품의 내재적 의미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절대기준처럼 중시하던 눈높이에서 벗어난 현대미술은 어느 유명한 광고 문구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도판생략>

1) 1996년에 만든 두 번째 <셀프(Self)>는 청소부의 실수로 냉동장치 전원이 뽑혀져 망실된 사례가 있다.

2) 실제 캔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만조니의 조수였던 아고스티노 보날루미는 캔 속의 내용물은 30g의 석고덩어리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지은 지음 『감각의 미술관』이봄, 2012. pp.215-216 참조.

3) <파이프를 든 소년>은 명화 수집가로 유명한 고(故) 존 헤이 휘트니 전 미국 대영대사 부부가 개인 소장했었던 작품으로 경매에서 5명의 입찰자가 마지막까지 뜨거운 입찰경쟁을 벌인 결과 경매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낙찰되었다.

4)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액은 2010년 10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1억 650만 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1,190억 원)에 낙찰된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이며, 아시아 미술품 중에서는 2010년 11월 소더비 런던에서 4천 3백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973억 원)에 낙찰된 중국 청대 제작된 〈길경유여(吉慶有余)〉라는 도자기이다. 우리나라 미술품 중에서는 17세기 제작된 〈백자철화운용문항아리(白磁鐵畵雲龍文壺)〉가 1996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41만 7,500달러(당시 환율로 약 64억 원)에 낙찰되어 최고가를 기록하였다.

5) 61년 금값은 온스당 35달러 20센트였다는 점에서 작품가격이 비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가 2003년 5만2000달러를 주고 4번 넘버가 매겨진 캔을 사들였고, 2007년에는 18번 캔이 밀라노 소더비 경매에서 12만4000유로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이듬해 밀라노와 런던에서 57번 캔과 83번 캔이 8만4750유로와 9만7250파운드에 거래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놀라운 기록이다.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세계일보. 201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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