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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현 조각가의 ‘원시성과 해학이 담긴 민화적 미감’

변종필

원시성과 해학이 담긴 민화적 미감’

 

조각가 오채현(1962~)은 30여 년 동안 돌조각만을 고집하며 일관된 작업 스타일을 유지해온 작가이다. 그는 ‘호랑이’, ‘불상’, ‘성(聖)과 성(性)’이라는 일련의 시리즈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원초적 형상을 탐색해 왔다. 특히 ‘호랑이 시리즈’는 해학성이라는 민화의 대표적 특성을 조각으로 표현하여 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형상의 생명력과 인간의 감성을 입체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오채현의 작업실을 찾으면 여기저기 무심하게 흩어져있는 많은 미완의 조각상을 만나는 순간 이 같은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크고 작은 호랑이상부터 다양한 표정의 부처상, 사물형상과 인물상까지 그가 다루는 조각상들이 오채현의 심상과 작업과정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밑그림만 새겨진 것에서부터 완성단계의 작품까지 작가의 심성이 돌 위에 지나간 흔적을 따라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사실 오채현의 조각은 외형적 인상이나 내용적 접근에서 보면 종교적 이미지와 샤머니즘적 분위기가 강하다. 불교적 색채가 짙은 <Buddha>시리즈가 대표적이다. <Buddha>시리즈는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의 모습을 자각하는 것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작가의지의 표상이다. 그러나 <Buddha>시리즈조차 권위나 위엄 등을 걷어낸 소탈하고 친서민적 모습으로 표현하여 감상자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는 작품의 면면에서 민화적 특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백제의 온화한 미소에서 때로는 옆집 아저씨의 수더분한 미소나 아버지의 자상한 미소처럼 느껴지는 얼굴표정은 그의 조각이 지닌 빼어난 개별성이다. 때 묻지 않은 동심과 같은 순수함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 형상을 찾고자 한 결과이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인의 모습이나 개와 새, 자동차와 비행기와 같은 동물과 사물을 민화적 단순함을 살려 정감 있게 표현한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오채현 작품의 민화적 특성은 ‘호랑이시리즈’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호랑이는 단군신화로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 사신도, 조선 시대 맹호도, 그리고 민화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온 대표적 동물이다. 오랜 역사만큼 호랑이와 관련한 민간설화와 그에 따른 상징성은 여러 시각에서 다루어져 왔지만, 맹수의 상징인 호랑이의 무서움을 바보스러운 표정으로, 두려움이 아닌 친근함을 지닌 대중적 미감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민화의 힘이다. 민화는 호랑이의 맹수성을 거세하고 풍자와 해학성을 부여하여 호랑이의 이미지를 친화적 이미지로 전환시켰다. 주지하다시피 민화는 형식이나 규범에 얽매이기보다 일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소재들을 다채롭고 자유분방한 형식에 담아 표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궁중채색화가 지닌 특별한 제작규범이나 엄격한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으로 어디서든지 손쉽게 표현했던 것이 민화이다. 오채현은 이런 민화의 특성에서 우리의 보편적 미감을 찾았고, 그 대상으로 삼은 것이 호랑이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남다른 존재이지만, 호랑이띠인 오채현에게는 숙명적 인연으로 다가온 존재이다. 호랑이상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길 만큼 호랑이는 오채현의 조각세계를 이끌어가는 모티브이다.

 

오채현의 호랑이상이 지닌 매력은 표정과 동세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표현한 호랑이상의 표정과 동세는 민화 속 호랑이보다 친근하고 해학적이다. 마치 옛날 옛적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듣던 설화처럼 정겹다. 개구쟁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웅크리고 앞을 응시하는 호랑이, 꼬리를 한껏 치켜세우고 당당하게 앉아 세상을 비웃듯 웃고 있는 호랑이, 두 마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엉켜 뒹굴고 있는 호랑이 등 표정과 동세가 하나같이 감상자에게 행복과 기쁨을 줄 만큼 사랑스럽다. 이처럼 오채현은 조각을 통해 민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촉각적 표정과 동세, 화강석 특유의 질감을 살려 평면에 갇혀있던 호랑이를 3차원의 공간 속으로 해방시켰다. 그의 호랑이상이 회화적 배경이 필요한 민화와 다르게 놓이는 장소에 따라 색다는 분위기를 주는 것도 입체적 표현이 주는 실재감 때문이다.

 



 오채현의 작가정신은 돌의 선택과 제작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돌을 싫어한다. 마치 민낯을 대하듯 자연에서 뒹굴면서 생긴 형태와 질감 그대로를 좋아한다. 때로는 판석에 가한 충격으로 생겨난 돌의 생김새를 보고 가장 어울리는 형상을 모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연석이 품고 있는 원시성을 찾아 숨어있는 형상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자연석이 잉태하고 있는 생명을 조심스레 깨우듯 자신의 조각행위를 마음과 정신을 정화(淨化)하는 수행처럼 여긴다.

오채현이 작품재료로 고집하는 돌은 경주화강석이다. 경주에서 성장하며 누구보다 경주화강석의 특성을 체득하며 조각재료로써 장점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경주화강석이 지닌 인간의 살결 같은 은근한 색감에 매료된 이후 경주화강석은 오채현이 추구하는 자연과 인간의 근본적 형상을 가장 친숙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사실 경주는 오채현에게 단순히 재료적 측면만이 아닌 조각가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태생적으로 관련이 있다. 천년고도의 역사적 숨결과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에서 수많은 석공과 장인의 손길을 느끼며 성장한 만큼 자연스럽게 전통조각의 심미성에 심취됐을 것이다.

‘호랑이’, ‘불상’ 시리즈를 중심으로 살펴본 오채현의 조각은 완성 작품 하나하나에 국한된 소재와 내용으로 한정된 작품이다. 반면 새로운 형식과 구성으로 조합한 <Birds>시리즈와 <삼라만상>은 오채현이 탐색해온 조형적 미감을 총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Birds>시리즈와 <삼라만상>은 회화적 요소와 조각적 요소가 만난 새로운 형식의 설치작품이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개념을 하나의 작품, 하나의 공간 속에 집약시켰다. 새, 연꽃, 자동차, 비행기, 술병, 와인잔, 부처, 남자, 여자, 개, 호랑이 등 전통에서 현대까지 작품의 축을 이루었던 다양한 소재들을 간결한 선 맛을 살린 저부조로 표현하여 거대한 벽면에 동시에 설치했다. 이러한 시도는 설치벽면과 조각의 배치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을 입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소재들이 반복되더라도 구성변화에 따라 작품의 주제나 내용을 한층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고, 반복을 통한 메시지 전달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자칫 반복적 형상들에서 오는 지루함이나 작가 스스로 빠질 수 있는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비슷한 소재들이라도 배치와 구성에 따라 전혀 새로운 맛을 전달하는 민화의 장점을 조각에 도입하여 회화와 조각의 특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오채현은<Birds>시리즈와 <삼라만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원시성이 시공간을 넘어 현대적 공간에서 만나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것처럼 누구나 함께 즐기고 누렸던 민화적 특성을 설치조각으로 구성했다. 오채현은 ‘회화적 조각, 조각적 회화’로 재해석한 <Birds>시리즈와 <삼라만상>과 같은 새로운 형식과 표현기법을 통해 민화적 특성이 새로운 현대적 미감으로 소통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화려하고 감각적인 재료, 편리한 제작방식을 선호하는 현대조각의 흐름에서 보면 오채현의 작품은 답답할 만큼 고전적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지금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며 오랜 시간 습관처럼 되풀이해온 작업과정이 있었기에 화강석의 차가움을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정감 있는 형상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다고 여긴다.

조각은 시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 만큼 외딴곳 타인의 간섭이나 불평을 벗어난 장소에서 돌과 일대일로 씨름하는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오채현은 철저히 고립된 공간에서 작업하면서 조각가라면 누구나 겪었을 인간적 고뇌나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조각에는 오히려 외로움보다는 행복, 좌절보다는 희망, 아픔보다는 기쁨이 새겨있다. 살 내음 나는 인간미, 털털한 인상, 넉넉한 웃음을 돌에 옮긴다. 이 점에서 보면 오채현의 조각세계에 담긴 조형성은 힘든 조각과정의 축적 속에 탄생한 역설의 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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