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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물성(物性)의 한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11人의 날선 감각

변종필

물성(物性)의 한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11人의 날선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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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의 틈을 넘다’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 물성의 한계와 경계를 극복한다는 의미이다. 물성탐구는 일차적으로 작가와 물질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운명적이든 우연적이든 물질이 선택되는 순간부터 작가와 새로운 관계 항이 맺어진다. 회화사만 보더라도 프레스코, 유화, 아크릴, 수채화라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이해는 작품의 질적 완성도를 이끌어내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미술작품에서 물성은 물질의 원성을 파괴하지 않은 상태로 그 자체를 드러내는 예도 있지만, 최근에는 물질 자체의 즉각적 인지보다 제작과정이나 기법에 신기와 놀람의 반전을 의도한 작품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정한 재료에 한정되었던 근대미술에서 어떠한 재료도 작품화될 수 있다는 현대미술의 특징이 보편화되면서 독특한 재료발견은 ‘새롭다’는 인식과 더불어 작가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요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낯선 재료는 타자의 관심을 끌어들이는데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어떠한 재료를 선택하느냐가 성공과 미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인상마저 준다. 이와 연관하여 「절차탁마 : 물성의 틈을 넘다」 전은 작품에서 물성이 차지하는 가치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번 기획전에 참여한 11인은 알루미늄, 비누, 식물, 오석, 핫멜트글루, 사진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품을 제작하기보다는 오브제의 선택적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의 작가와는 분명한 거리를 지녔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옥돌이나 뿔을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며 끌로 쪼고 숫돌에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본시 학문과 덕행의 수련을 비유한 말이다. 이 말은 예술분야에서도 같은 문맥으로 통한다. 실제로 위대한 작품일수록 절차탁마의 과정에서 창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이 전시는 단순히 사물의 재현이나 유희적 놀이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깨우치는 과정으로 정신과 행동의 게으름 없이 기예를 수련하는데 정진하는 작가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딱히 기능적 함수를 찾기 어려운 예술작품에서 그나마 작품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찾는다면 그것은 작가정신과 열정일 것이다. 그 정신과 열정은 고스란히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절차탁마’전은 전시기획 의미와 참여 작가의 함수관계를 떠나서라도 물성이 지닌 한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11인의 날선 감각들이 형성해온 사유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것만으로 풍부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포토제닉 드로잉’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다양한 식물 사진을 통해서 자신만의 식물도감을 완성해가는 구성수. ‘비누’를 통해 조각의 재료적 경계와 문화․역사적 문맥을 새롭게 번역해가는 신미경. ‘핫멜트글루(hot melt glue)’라는 독특한 드로잉으로 낯섦과 어둠을 표현하며 내적 자아 세계를 깊이 있게 진화시켜가는 심승욱. 인간의 간절함을 돌에 새기듯 오석에 자연을 시각적 인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새롭게 응시할 수 있는 시점으로 이동시켜 보여주는 정광식. 굵고 거친 선의 중첩과 반복, 다양한 재료(커피 찌기, 모래, 물감, 먹)의 혼합을 통해 자연(숲)의 존재적 깊이를 화면으로 이동시키는 변연미. 그림의 외형적 드러남보다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 중 그림 밖에서 관계한 모든 것을 함유해 회화의 본질이 단순히 시각적 드러남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김홍주. 그라인더나 니들을 활용해 붓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회화의 맛과 깊이를 탐구하는 박영근과 한영욱. 회화의 본질을 터치와 색채라는 요소에 두고 섬세하면서도 꿈틀대는 듯한 붓질로 세상 풍경을 담아내는 함명수. 글씨의 무수한 반복을 통해 말과 이미지의 관계를 해체하고, 원작에 대한 고정관념을 흩트려 새로운 반전을 즐기는 유승호. 직물의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것처럼 필름을 손으로 직접 엮는 방식(텍스투스)과 작업과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는 형식으로 사진 표현의 정형화를 무너뜨리고 있는 박승훈까지 작품을 통해 작가의 감수성과 밀접하게 호흡하고 있는 각각의 매체들이 작품에서 어떤 가치와 의미로 치환되고,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술이 어떤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보이도록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논리보다는 수사학적 힘이 크게 작용하는 때가 많다. 즉, 작가가 명확한 논리를 지녔다고 해도,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서는 타인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공감을 줄 수 있는 수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절차탁마의 진정한 의미와 더불어 ‘먹’ 한 가지가 펼쳐내는 수만 가지의 변화는 결국 묵성(墨性)의 본질을 깨닫는 자의 몫임을 상기할 때 진정 이 시대의 작가들이 물성을 대하는 정신과 자세는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절차탁마, 물성의 틈을 넘다> 2012.2.3-2.22

<퍼블릭아트 전시리뷰>

  

좌:신미경_Translation_Ghost Series(Jade)_가변크기_비누, 바니쉬_2010 /우: 박영근_말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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