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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규 '기하학적 形의 조합과 분열, 그 존재 질서와 균형'

변종필

기하학적 形의 조합과 분열, 그 존재 질서와 균형

 

 

변종필(미술평론가, 문학박사)

 

이본규의 작품은 이성적이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로 대리석 조각을 깎아 블록처럼 한층 한층 쌓고 이어 붙인 기하학적이면서 정교한 모형을 갖고 있다. 과시적이라기보다는 단순하고 치밀하다. 이는 자신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전체보다는 부분을 보는 능력이 앞선 좌뇌형 인간이라고 고백한 작가의 성향과 연관 있어 보인다. 그의 작품은 학창시절 대상의 재현보다는 기하학적 형(形)이 상상력과 이지력 속에 조합하며 생각지 못한 형상성을 획득하는 과정에 매료된 이후 지속해온 결과물이다. 2008년 이후 4년 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 역시 같은 맥락의 작품들이다.

 

 

근작의 기원은 앞선 작품들과의 인연이나 정황과 연결되어 있기에 그의 전작 <필연과 우연>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인간세상의 관계항이 그렇듯 필연과 우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일어날 수 있는 연(緣)이다. 그러나 필연과 우연을 화제로 작품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이본규의 <필연과 우연>시리즈는 삶의 모순에서 찾은 자기항변에 가깝다. 돌을 깨는 행위는 필연적이지만, 정작 결과는 우연한 산물일 때가 잦다. 그 우연마저 필연이 아닐까 고민하는 순간 시작된 모순 속에서 작가의 갈등과 고민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고, 그에 대한 자기 항변적 ‘돌 깨기와 돌 붙이기’를 반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필연과 우연>시리즈는 내밀한 정신적 완성을 위한 전초전이다. 반면, 이번 전시의 핵심인 <Forma>시리즈는 시작부터 조형적 완성에 훨씬 밀착한 느낌이다. 

<Forma>시리즈는 2008년 개인전 이후 지속해온 주제로 음각과 양각의 기하학적 존재형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Forma-25,26,30,31,34,35> 작품이 과거의 내면적 존재와 정신적 존재를 단순한 형태의 음각 구로 표현했다면, <Forma-S1>에서<Forma-S7>작품은 양각 구의 형태로 전환한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이 같은 변화는 2008년 이후 음각 구와 양각 구의 ‘기하학적 조각의 결합을 통한 공간 해석’에 천착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의 기하학적 형태는 자연의 각 개체가 가진 근본적 형태이자 작품의 본성을 의미한다. 이때의 본성은 ‘양(+)과 음(-)’이라는 상대적 조합의 상징이다. ‘양(+)과 음(-)’은 세상을 이루는 기본원리로서 사물이 그 자체로 독립적이지 않고, 다른 사물과 서로 의존적인 관계항에 의해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외형상 구 모양의 단위체가 마치 세포의 자기증식처럼 분열하며 무한의 공간 속으로 확장하는 느낌이 든다. 동시에 균등하게 8등분 한 이음새의 선(線)은 구와 구를 연결하는 선이자 내외적으로 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한다. 구축적 표현이 강했던 전작들과 비교할 때 확장성과 리듬감이 가미된 표현도 특징이다. 전반에 걸쳐 미감은 조형의 완전성 쪽으로 기울어졌지만, <필연과 우연>보다 한층 배가된 긴장감에서 오히려 내밀한 정신적 축적이 엿보인다. 이는 구와 구사이가 극도의 긴장 있는 형으로 연결되거나 쌓여있는 구조에서 감지된다. 작업과정 중 <시간과 공간>시리즈에 쏟은 고민 역시 <Forma>시리즈에 반영되어 진일보한 결과를 낳았다.

 

 

미(美)란 본디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질서, 균형, 명료성은 작품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요소이다. 이본규가 질서와 균형을 의식하며 긴밀한 조합으로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여기서 완전성은 형태의 완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들의 기하학적 형태는 미완이며 당장에라도 분열하여 산개(散開)할 것 같다. 그리고 음양의 장력에 의해 새로운 기하를 추구할 것 같다. 자연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듯 시작과 끝이 없는 자연 순환처럼 그의 조각은 완전한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 지속해서 분열 증식하는 그의 조각형태를 한마디로 ‘시작이면서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이다. 같은 크기의 음각 구나 양각 구를 더하고 빼는 반복행위에서 사물의 존재적 질서와 균형이 시작되고 유지된다.

 

현대조각은 최첨단의 매체나 원색의 강렬함을 무기로 시각적 시선을 끄는 작품과 재료의 다양성이 특징이다. 작품제작에 참여하는 작가의 역할이 줄어든 반면, 상대적으로 작품제작을 하는 어시스턴트의 역할이 확대된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이러한 현대조각의 흐름과 달리 이본규는 여전히 전통적 재료와 과거의 창작과정을 고집하고 있다. 그의 조각은 제작 과정상 기본적으로 대단한 지구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제작과정만 놓고 보면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고사성어가 딱 제격이다. 대리석을 같은 형태로 자르고, 갈고, 뚫고, 연마를 반복한다. 그렇게 완성된 하나하나의 조각을 감각적 혹은 의지적으로 상호 연결한 이후 전체적으로 연마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하나의 독립 작품으로 완성된다. 이처럼 이본규의 작품은 제작 과정상 기술적 정교함과 고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작품의 외형상 전체적으로 크기가 제한적이고, 표현상 공예적 요소가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작품과정에서의 세밀함은 돌의 선택에서도 감지된다. 레베카(Reveca), 스타투아리오(Statuario), 오닉스(Onix)로 불리는 대리석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중에서 특히 레베카는 여성적이라 불릴 만큼 차가움보다는 따스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재료다. 이러한 레베카의 물성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가장 잘 맞아 선택한다는 말에 기대어 작품을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만하다.

 

 

 

 

결론적으로 <필연과 우연>―<시간과 공간>―<Forma>시리즈로 연결된 이본규의 작업은 ‘내가 주제로 삼고 있는 것들은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의 열쇠들이다’는 작가의 말처럼 조각가로 존재 이유를 찾고 작품의 존재적 가치를 확립해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하학적 조합과 분열에서 찾아낸 공존의 질서와 균형이 지금 이본규 작품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미적 가치이다.

 

이본규를 대하면 조용한 어투와 말을 아끼는 모습에서 작가 특유의 진지한 언행과 묵직한 성찰을 만나게 된다. 바라건대, 앞으로도 그의 작업이 형식적 유희를 넘어 내용과 형식에서 명료한 독자성으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끝없이 확장하길 기대한다. 스케일에서도 공간을 지배하거나 압도하는 힘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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