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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진화 - 유정훈의 유쾌한 세상이야기

변종필

 

   

작가 유정훈의 그림에서 받은 첫 느낌은 ‘유쾌함’이다. 이 유쾌함은 상상력으로 가득한 만화적 형상들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의 그림은 어떤 이론의 줄기에 매달리기보다 감각적, 본능적 자유의지에 기댄 생동감 있는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디테일한 표현 대신 자유분방한 색감과 두꺼운 흑백 선의 리듬감이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한다. 사물을 의인화시켜 세태를 풍자하고, 상징과 비유로 엮어낸 세상의 희로애락이 퍼즐처럼 펼쳐져 흥미롭다. 삶의 현실에 더 가까이 밀착해 그려낸 세상 이야기가 팝콘이 터지듯 화면 곳곳에서 시각적 즐거움을 발산한다.

 

학창시절,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규범이나 형식보다는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작가 유정훈. 그는 어떠한 형식에 자신을 가두는 사회적 구조를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완벽함보다는 어딘지 허술하고, 빈틈없이 채우기보다는 모자란 듯한 부족함을 오히려 편하게 생각했다. 그의 작업실 곳곳에 이러한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내재된 것을 발견한 순간 변함없는 그의 인간미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번 전시는 유정훈의 5번째 개인전이다. 그동안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천착해왔던 그에게 이 전시는 각별하다. 현재 작품의 독자성을 찾게 된 시작점이었던 2007년 4회 개인전 이후 3년 만의 전시라는 점에 우선 주목하게 된다.

이번 개인전의 가장 큰 변화는 독자적 자율성을 획득한 화면구성이다. 그는 4회 전시에서 실험적으로 선보였던 일련의 작품을 계기로 회화의 고유성과 자신의 직감을 본능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화면구성을 이끌어냈다. 이는 고정화되고 통념화된 평면회화의 일탈을 추구하던 그의 표현의지가 창출한 독자적 화면구성이다.

화면의 자율성을 위해 그가 고집하는 또 하나는 틀을 짜놓은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벽면에 부착한 천에 자유롭게 드로잉해 처음부터 작품 크기나, 캔버스 틀에 얽매이지 않고 화면에 자율성을 부여한다. 완성 작품이 일반적인 캔버스 크기에서 벗어나 있거나, 그라피티적 회화처럼 보이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때 그의 그림은 숙련되지 않은 표현과 절제되지 않은 화면구성으로 지나치게 복잡하고 장식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에서 벗어나 한층 숙련되고 세련된 화면구성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명증하게 투사하고 있는 점이 이번 전시에서 드러난 가시적 성과이다.

 

유정훈의 그림은 독특한 흑백의 결합선이 일상의 단조로움을 희화적(cartoonish) 이미지로 만들어낸 퍼즐이다. 눈동자, 얼굴, 꽃과 나무, 구름, 자동차, 자전거, 고양이, 개, 건물, 네모, 숫자, 문자 등등 물질세계의 모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들을 확대하거나 변형된 상징적 기호로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 톱니처럼 생긴 흑백의 선이 마치 세상 만물을 잇는 고리처럼 엮여 있다. 흰색 안에 검은색, 검은색 안에 흰색으로 이루어진 선은 작가의 고백처럼 포지티브(positive)과 네거티브(negative)의 상징이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어떤 현상을 정상적․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그것을 비정상적․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이중성을 의미한다. 이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만화 같은 세상을 상상하는 소년의 순수함과 삶의 힘겨움에 좌절하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현대인의 욕망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것과 같다.

희극적(喜劇的)이면서 비극적(悲劇的)요소를 담은 그의 작품은 현실에 내재된 갈등과 대립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대변한다. 이는 흑백논리로 가득한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듯 표현된 선과 색의 자유로움에서, 작품마다 유난히 부각시킨 크고 작은 눈동자를 통해서 드러나는 작가적 시선이다. 쉼 없이 등장하는 자연, 인간, 동물, 식물 등 기호화되고 패턴화된 이미지는 세상을 지탱하는 모든 것의 상호관계에 대한 본질적 물음이다. <세상이 사람이>, <무너진 너>, <조금 이상한 거리>, <밀리언머니 맨> 등의 작품명에서 드러나 듯 그의 작품은 명예와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 끝없는 경쟁 속에서 몸부림치는 현대인, 진실이 왜곡되고 거짓에 현혹되는 인간의 이중성 등 세상에서 사라지고 부딪히는 삶의 가치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여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불가분의 관계로써 그 존재적 가치를 획득하고 있음을 그림으로 답하고 있다.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일상에서 교류하는 것들의 작은 인연과 상호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내적 감정, 사회적인 관계들, 이성적인 관심, 자본주의의 물성화, 인간소외 등등의 감정적인 부분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표현적으로는 감정적 드로잉, 이성적 정리 등을 통해 내외적인 회화적 요소들을 끌어내려 노력한다.”-작가노트

 

프루스트는 과거가 시간 속에 사라져도 기억 저편에 잠재된 흔적을 통해 잊혀진 모습을 의식 밖으로 되살릴 수 있으며, 이것을 환기시키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했다.

유정훈의 그림 역시 자신의 경험과 추억의 편린 속에 잠재된 세상의 흔적들을 무의지적 기억, 의지적 기억의 결합으로 표출해낸 행위이다.

결론적으로 유정훈의 이번 전시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반복 생산되는 인간의 속성과 욕망을 특유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진화된 새로운 소통언어로 환기시키고 있다.

세상만사를 환상적 퍼즐로 엮어가는 그의 노마드적 삶의 방식이 여전히 유쾌함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무너진너>

 

 

 <세상이 사람이>

 

 

 <밀리언머니맨>

 <조금 이상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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