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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의 ‘휴머니즘적 진실’을 향한 고독한 행보

변종필

-화가 서용선「역사와 신화」를 찾아서

 

미술은 역사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술의 절대가치는 역사 속에 묻힌 진실을 인증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적 기록은 미술이 지닌 많은 역할 중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재현된 그림은 현재라는 시점의 개입과 동시에 또 다른 역사적 기록의 시작이 된다. 특히, 화가에게 선택된 ‘의미심장한 역사적 순간’은 현재적 재현성의 획득과 동시에 역사적 기록성을 갖는다. 이는 미술적 표현이 단순히 과거 사실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닌 작가의 주관적 개입에 의해서 언젠가 역사와 재회하는 타임캡슐처럼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색과 형은 무엇인가? '물음에 화가 서용선은 말한다. ‘色은 色이고, 形은 形이다’라고. 그의 답변에는 화가들의 끊임없는 화두인 색과 형에 대한 생각이 집약되어 있다. 이는 그의 작품에서 숨김없이 발견된다. 서용선의 작품에서 형과 색은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관계이다. 때로는 형이 주는 완곡함이 색을 억제하고, 어떤 때에는 원색의 강함이 형의 도출을 막아준다. 그러면서 끝내 서로를 거부하지 않는 포용력을 지녔다. 이것은 작가의 철저한 균형감각이 만든 형과 색의 결합이다.

1970년대, 추상 미술의 반동으로 1980년대 초중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신표현주의는 서용선화가가 받아들인 양식이다. 대상의 사실적 묘사를 거부하거나, 형과 색에 일정한 거리를 둔 원시주의적 표현법칙을 내세운 신표현주의적 특징이 그의 생각과 만났고, 그만의 선과 색이 되었다.

 

서용선 작품에 응축된 정감의 실체는 인류의 신화적 기원과 역사적 금기였던 애사(哀史)의 탐구에 있다. 인류의 기원을 서양이 아닌 동양의 신화와 전설에서 출발하는 그의 시선은 우리 민족의 근원을 찾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꺼내든 주제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과 시각을 가끔은 불편하게 만들고, 때로는 통렬한 쾌감을 안겨준다. 붓끝에서 현시된 단종애사는 시공간을 넘어 과거 역사적 갈등 속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의 삶과 닿아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역사의 상처를 치유없이 방치한 지난 세월의 깊이만큼 무거움과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자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역사에 무딘 사람을 대신해 날카로운 관찰자의 눈으로 하나 둘씩 엮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강한 어조를 지닌 웅변가처럼 힘있다.

 

서용선 작품은 삶의 여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최대한 삶과 밀착되어 있다. 작업의미를 깨닫기 위해 보냈던 고뇌와 방황마저 작업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작업세계에 붙들어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화가로, 예술가로서 작업의 당위성을 찾지 못하던 시기, 슬픈 역사의 한 자락에서 만난 역사적 애사가 어느 순간 그의 화두이자 역사가 되버렸다. 그 뒤 단종애사를 자신의 삶속으로 연결시킨 서용선은 단종의 생애를 붓으로 기록하는 최초의 화가가 되었다. 작품의 영감을 찾아 직접 발품을 파는 그의 수고스러움은 마음으로부터 전해지는 역사의 숨소리를 직접 확인하고픈 진실한 행보였다. 2001년 부터 시작한 철암 그리기(폐광지역 문화활동)는 열정과 관심을 넘어 이제는 스스로 운명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폐광지역 문화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때때로 커다란 초상화로 되살아나 자신들의 고단한 삶이 결코 허무하고 무의한 삶이 아니었음을 강한 눈빛으로 말한다.

 

서용선은 잊혀진 역사를 그리는 기록적 행위자로 붓 끝에 표출된 역사로 새로운 의식과 시각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는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다만, 최근의 변화라면 한층 가까워진 시간의 간격이다. 태고의 신화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오늘이라는 이 시대의 현상들로 이어졌다.  

그는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끝나지 않은 신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기록하듯 그의 붓질이 더욱 속도를 낸다. ‘탁록의 전쟁’, ‘예의 이야기’, ‘여항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숙대입구’... 등 현대 일상의 이야기까지 가까워졌다. 갈기듯, 내리치듯, 거침없이 쏟아진 붓질이 그대로 살아있다. 강렬한 색채와 형태, 다듬지 않은 거친 붓자국은 한번 붙들린 시선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서용선의 회화가 시공을 초월하여 시대적 정신성으로 읽혀지는 것은 단순히 잃어버린 역사를 인증해가는 비장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는 열정적 파노라마로 엮어낸 그의 작품속에 우리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으며, 동시에 그가 찾아낸 휴머니즘적 진실이 주는 숭고함의 울림이 그만큼 깊고 넓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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