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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훈의 ‘모던보이’

변종필

「존재 지향적 삶을 꿈꾸는 현대인의 Ironic self-Identity」

 

작가 강강훈(1979~)의 인물에 대한 높은 인지력은 모델마다 지닌 개별성을 놓치지 않는 그의 섬세한 붓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싶은 대상을 시각화할 수 없을 때 직면하게 되는 표현의 한계성을 경험해본 화가라면 생각하고, 보고 느낀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화가로서 얼마나 뛰어난 장점임을 알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작가 강강훈의 작품은 ‘정말 그림이야? 사진 같다.’라는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보는 이를 숨 막히게 할 만큼 정교하고, 밀도 있는 필력을 자랑한다. 인물들의 얼굴빛, 미세한 솜털, 머리카락 한 올, 땀구멍 하나도 놓치지 않은 듯한 지독한 사실성은 일반적 재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뚜렷한 개별성을 확보하는 미적 대상으로 가치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강강훈만의 형식으로 그려낸 초상화가 어떠한 의식과 의미가 있는 공감의 영역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지 따라가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강강훈의 초상화가 지닌 첫 번째 흥미로움은 역시 극사실적 표현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미국의 포토리얼리즘, 하이퍼리얼리즘과 직결된다. 사진을 토대로 작업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진은 그에게 의미심장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시간이자 작업의 시작점이다. 그의 초상화는 사진을 모태로 하지만 사진보다 더 사실성을 지닌다는 특징이 있다.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인물사진들은 모델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기 위해 포토샵이나 트리밍으로 감추고 싶은 부분을 숨기고, 가능한 한 멋있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표현한다. 흑백과 컬러, 조명과 밝기, 노출과 감도 등 기본적 기능에서 이미 사진은 사실을 드러내기 내기보다는 사실처럼 만들어 내고 있다. 강강훈의 초상화는 이러한 현대 사진의 기능적 특징을 활용하지만 오직 인물의 사실적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점에서 다르다.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숨기기보다는 찾아낸다.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들춰내는 집요함으로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인다.

그의 초상화가 지닌 진정한 리얼리티는 작품제작과정에서 한층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인물 그리는 전 과정을 100%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현대미술에서 종종 활용되는 빔프로젝터나 대형실사출력 같은 활용은 철저히 배제한다. A3 크기로 출력한 사진을 수학적 비율계산으로 캔버스에 옮겨 기준선을 잡고, 한국화의 스케치법(파스텔이나 먹지로 스케치한 것을 다시 캔버스에 눌러 옮기는 방법)으로 긴 시간 공들여 작업한다. 이때의 노동력은 그가 내세우는 작업과정의 필수조건이다. 사진촬영에 기울이는 노동력과 열정도 마찬가지다. 모델 한 사람을 기준으로 최소 500여 컷을 찍고, 그 중 선택한 한 장의 사진을 그림의 바탕으로 삼는다. 선택한 사진은 이후 작품완성까지 어떠한 변형 없이 사진 이미지대로 그려진다. 여기에는 촬영 당시의 분위기와 모델이 주었던 이미지가 바로 진정한 리얼리티의 순간이며, 그것을 가감 없이 옮기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초상화)의 본질이라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연출과 함께 지극히 현실의 세계 안에 갇혀 있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제법 냉철한 리얼리즘이다. 나에게 있어 리얼리즘은 지금을 말해주는 시간적 개념이며, 현재 내가 있는 곳을 말해주는 공간에 대한 현실감각이다.”라고 밝힌 글에서 리얼리즘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감지할 수 있다.

그는 표현대상과의 최소한의 공감도 없는 작업은 꺼린다. 그래서 평소 인물에 대한 표정연구와 자유연상, 모델들과 짧은 시간 나누었던 공감대를 작업과정 내내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최소 1개월 동안 비슷한 감정선을 유지하기 위한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마치 배우가 작품 속의 인물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과 같다. 이런 노력은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표정연출과 묘사에서 절정에 이른다. 살아 있는 생명 중 인간만큼 감정체험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더불어 얼굴만큼 인간의 감정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신체부위도 없다. 얼굴의 작은 표정변화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상태와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얼굴표정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진실한 표시이다.

강강훈의 초상화는 바로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림 속 인물표정은 모델의 자의적 통제에서 나온 것이지만, 감정이 응축된 표정 속에는 내면의 잠재된 감정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러한 생명력은 작가의 세밀한 관찰과 표현의 사실성 없이는 어렵다. 그의 초상화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얼굴표정을 지으면그것이 표정으로 나타나고, 보는 사람에게 상응하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말 그대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행복을 느끼고, 웃는 표정을 지으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공감이다. 이는 창작자, 모델, 감상자의 사이에 작용할 수 있는 안면피드백의 가설을 그림으로 증명한 셈이다. 모델의 표정변화에 따른 감정의 증폭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초상화가 지닌 확실한 개별성이다.

 

강강훈의 초상화가 지닌 두 번째 매력은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에 있다. 그의 손끝에서 살아난 인물들이 말하는 세상은 하나의 모습, 한가지의 이야기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로 시작하는 유행가의 한 소절처럼 현대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지녀야할 모습이 너무도 많다. 이 때문에 현대인의 정체성은 내파(內波)되고, 개개인은 내면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자아 찾기를 반복한다. 강강훈의 초상화는 경쟁의 시대, 모순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현대인의 Ironic self-Identity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가 담아내는 현대인의 Ironic self-Identity는 작품의 상징적 주제인 ‘모던보이’와도 무관하지 않다. 작가에게 모던보이란 현대인의 불완전한 자아를 의미한다. 외형은 성인이지만 내면에는 유년기를 통해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싶은 욕망이 현대인에게 공통으로 잠재해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성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우리는 어쩌면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라는 그의 고백이 뒷받침한다. 그의 작품에서 남성은 엄격하고 젠틀한 이미지, 화려하고 멋있는 이미지를 벗어 던졌다. 주목받는 대중 스타를 풍자적, 해학적으로 연출하여 친근한 이미지로 표현하거나 때로는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는 대중 스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를 넘어 남성에게 부여되었던 사회적 역할의 탈이미지를 상징한다. 예컨대, 넥타이는 우리 사회에서 남성을 상징하는 사회적 틀이다. 그런데 화이트칼라를 대신한 민소매 옷과 넥타이의 상반된 요소를 충돌시킨 표현은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한 현대인의 아이러니한 일면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는 남성성의 전형이 파괴되며 사회적 터부를 뛰어넘어 새로운 이미지의 캐릭터가 트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남성의 정체성, 자아의 정체성은 더는 하나의 획일화된 이미지로 고정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이렇듯 강강훈은 남성과 여러 상징적 아이콘들을 통해 현대인에게 부여된 고정 이미지와 사회적 요구 사이의 아이러니한 현상을 다양한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어떤 사람의 외모가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의 또 다른 모습이듯 그의 모던보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한편, 그의 작품 속 연출 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에 시공간을 초월한 오브제나 이미지를 결합해 현실에서 그 시각적 효과나 의미를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혼합현실(Mixed Reality) 또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적 표현이다. 완전한 가상의 현실이 아닌 존재하는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를 더하는 구성이 그렇다. 유소년기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하고 드넓은 바다를 상상하며 연출한 2007년의 <Modern Boy_The sea of a daydream>, 잔인성과 순수성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이중성을 냉정히 바라본 2009년<Lost Icon-Black Rudolph>연작과 <Modern Boy_other's bones>, 2010년의 <Modern Boy_a mixture of general and motorcycle rider> 에 이르는 유사한 구성에서 드러난다. 혼합현실은 그의 작품이 초현실주의에서 비켜서 현실에 더 맞닿아 있는 실질적 근거로 작용한다. 이는 전 작업과정에서 보여준 개연성 있는 연출과 작품에 내재한 현대인의 Ironic self-Identity 모습이 인간의 삶과 현실을 진실하게 응시한 결과로써 그만의 신뢰도를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강훈의 작품에서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자화상이다.

그는 자화상을 즐겨 그린다. 그보다는 자화상을 작업과정의 핵심으로 여긴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좋은 작가는 항상 자신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처럼 강강훈의 철저한 자기탐구는 그의 초상화에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외침이다. 대학 시절부터 자신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존재적 가치를 탐구해온 습관을 변함없이 지속하는 것은 자화상이야말로 본인 작업의 근간이자 중추라고 생각하는 뚜렷한 작가관의 실천이다.

 

“나의 자화상은 습작인 동시에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맴돌던 연출이 구체화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주는 ‘감성의 연습물’이다. 모든 작업에는 습작이 있고, 빼 놓을 수 없는 과정이 나름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더욱 자연스럽게 성숙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스스로를 상대로 한 실험을 끝없이 거듭할 것이다. -강강훈-

 

강강훈은 자신을 인간 본성의 표현 도구이자 실험대상으로 삼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다중성을 색다른 태도와 독특한 연출로 이미지화하고, 그때마다 흥미있는 표정으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때로는 풍자나 빈정거림으로, 때로는 고뇌와 쓸쓸함 등으로 인간의 정서와 다면성을 담아낸다. 이처럼 그의 자화상은 단순히 개인적 관심을 넘어 인물의 내외적 표현성을 극대화하는 미학적 대상으로서 인물화의 표현가능성을 넓히는 토대로써 각별함을 지닌다.

 

 지금까지 언급한 강강훈의 미적 대상은 어쩌면 인물화를 표현대상으로 삼고 있는 모든 화가의 주된 관심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한국 극사실 회화가 소재나 내용적 측면에서 작가의 주관적 감성이 강하고,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며 여기에 주로 이미지배반, 페르소나, 패러독스, 연극적 연출, 이중성, 양면성 등의 미학적 담론을 공통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에 핍진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전략적 방법을 동원하여 사실주의 객관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들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극사실 회화가 갖는 진정성은 ‘손의 위대함’을 재발견하고 회화의 근원적인 힘을 재인식시키는 역할에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강강훈의 빼어난 필력은 동시대의 젊은 작가 중 누구 못지않게 회화의 진정성을 발전시킬 예술적 역량과 잠재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인간 본성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역할을 극사실 회화에서 찾아내고 진실한 한국적 리얼리티를 새로운 시각에서 정립해나갈 수 있는 작가로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강훈이 그려낼 현대인의 Ironic self-Identity는 우리 시대의 정신과 이상을 어떠한 사실성과 정직함으로 표현할 것인지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결론적으로 강강훈의 작품은 “인간은 열정적으로 현실에 더 가까운 존재 속에 자신을 쏟아 붓는 개혁가이자 탐험가”라고 했던 어는 철학자의 말처럼 철저히 현실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또 현실 속의 인간을 작품으로 끌어들여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단계에 있다. 그 의 작품 속 많은 인물과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동시에 인간 본성과 존재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현재 강강훈의 초상화가 지닌 미적 대상으로서 의미와 가치일 것이다.

 

-미술평단 1백호 발간기념 『30인의 작가 30개의 시선』수록-

 

<작가 약력>

1979년 경남 진주 출생.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동 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졸업. 2005 기획전‘적하다’(숲 갤러리), 헤이리 The Step 현장 벽화 프로젝트, 2008 서울 오픈 아트 페어(SOAF), Asia Top Gallery Hotel Art Fair 08(박여숙화랑, 도쿄), ARTSingapore2008(싱가폴), ‘삶의 표정’展(갤러리 우덕), KIAF(박여숙화랑, 코엑스), 2009 베를린 화랑협회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 ‘또 하나의 일상, 극사실회화의 어제와 오늘’展(성남아트센터미술관), Sh contempoary(상하이), 개인전(박여숙화랑) 등.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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