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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범의 '존재와 욕망에 대한 슬픈 자기고백'

변종필

존재와 욕망에 대한 슬픈 자기고백

 

뱅그르르(A whirlpool)_160×160cm_장지에채색_2012

 

 

손승범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자기 고백을 서커스와 마술이라는 특정한 소재를 통해 그려낸다. 그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재 성찰과 잠재의식에 침잠되어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혼돈과 갈등에 대한 물음이다. 이번 전시는 2010년 이래 지속해온 서커스와 마술이라는 소재와 주제를 어떠한 시각과 의미로 표출하고 있는지 살펴볼만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서커스는 일반적으로 아크로바트, 저글러, 덤블러, 동물조련사, 광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숙련된 자들로 조직화된 집단에 의해 이뤄진다. 마술과 서커스의 힘은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끊임없이 창출함으로써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있다. 따라서 곡예사와 마술사는 같은 레퍼토리의 공연이나 비슷한 마술로 관객이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낯설고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손승범은 서커스의 내외적 구조를 현대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인간은 사회라는 구조의 불안한 요람에서 성장을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관은 이상과 다른 현실의 모순들과 충돌하여 발생하는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결국 인간성 상실, 소외, 현실도피, 고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이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는 실질적 요소로 작품의 내용적 틀을 이루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서커스라는 특정한 공간과 곡예사, 마술사, 광대 등이 펼치는 다양한 묘기와 역할을 통해 현대사회를 통찰한다. 그는 현대사회를 수많은 직업에 각기 다른 재능과 기술을 지닌 조직화된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이 가득한 서커스의 무대로 옮겨와 희화화시켰다. 예를 들어 마술사가 펼치는 광경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관객들을 향해 당당히 자신의 행위가 실제라고 믿게 하는 것처럼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현상을 마술의 특성에 비유한다. 한편으로 현란한 몸놀림으로 신체적 활동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곡예사의 모습을 통해서는 각박한 현실과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고달픈 삶을 대변한다.

 

서커스와 마술은 공연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어두움․ 황폐함을 동시에 상징함에 있어서 현실사회를 대변하는 하나의 場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연기하며 때로는 실수를 연발하는 어리숙하고 우스꽝스런 광대와 마술사의 모습은 다름 아닌 현대인들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작가노트

 

 

무대위에서(On the stage)_132×322cm_장지에채색_2012

  

손승범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신의 존재 의미와 내면 성찰의 주체로서 등장시킨 ‘나’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는 모든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이다. ‘나’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통해 ‘나’를 발견한다. 작품 속의 ‘나’는 사회와 인간, 사회와 나의 관계를 바라보는 주체이며, 불안정한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돌아보는 분신이다. 즉 현대사회가 지닌 불합리한 현상들과 비논리적 행위들이 가득한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그 속에 직접 뛰어들어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체험으로서 작가의지의 실체이다.

그는 작품 속에 마술사, 곡예사, 피에로 등의 다양한 역할로 등장한다. 흰 분칠에 양쪽으로 쳐진 커다란 눈, 얼굴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유난히 작은 입을 지닌 모습이 어딘지 부조화하고 어리숙해 보인다. 완벽한 기술로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엉성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아마추어 같다. 자신감이나 당당함보다는 부족함과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은 스스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에 조종당한다고 느끼는 작가의 불완전한 심리가 반영된 모습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현재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모습으로 표현된 부분이다. 이는 현재의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미래의 모습과 오버랩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어린 왕자가 자신의 소행성으로 떠나지 못한 채 인간사회에 머물며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어느 순간 그토록 이상하게 생각했던 어른들처럼 늙어버린 느낌 같은 애처로움이 든다.

 

                                                         비행(Flying) 163x262cm 장지에채색 2011

 

손승범의 작품은 재미있는 연극적 구성에 부드러운 유머가 화면 곳곳에 스며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슬픈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인간성이 상실된 현실에서 더는 희망적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비애감을 느낀 작가적 감정에서 연유된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사회에서 곡예사처럼 끊임없이 노력하여 기예를 익히고, 마술사처럼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실재처럼 만들어내도, 주술사가 되어 미래를 점쳐보아도, 자신의 미래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로 현실에서 느끼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자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자각이 어떻게든 인간사회라는 무대에서 스스로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 일종의 강박증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있다. 결국, 곡예사-마술사-피에로의 모습과 원숭이-비둘기-카드로 반복되는 구성은 바로 자신의 삶과 ‘정체성’의 상징적 표현이자 작품세계를 이루는 등가물이다. 이 등가물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과 사물로 반복함으로써 ‘나’라는 동일성에서 내가 아닌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이다. 이는 2010년의 <광대> <꼭두각시> <쇼> <혼돈> <천사와 악마>와 2011년의 <비행> <버퍼링> <실수> <어설픈 서커스> <원하지 않았던> <피에로의 비애>, 2012년의 <주술사> <뱅그르르> 등의 작품에서 등가물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동일성과 차이의 관계를 찾고자 하는 의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채가 동시대 작가들 사이에서 유행병처럼 확산되는 것과는 달리 대중적 입맛보다 자기중심적 시각과 색채를 고집하는 손승범의 작업 형식과 과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수묵(水墨) 본질의 맛을 잃지 않으며, 동시에 강렬함이 지나치지 않은 범위에서 색채를 조율하는 완급이 연륜에 비해서 뛰어나다. 뚜렷한 외곽선을 거부한 채 흔들리고, 번지듯 표현하는 붓 놀음이 화면 깊숙이 침투하면서 내용적 깊이를 더해준다.   

 

 

덫(A snare)_145×112cm_장지에채색_2011

  

결론적으로 손승범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사변적 개념들을 한층 정제된 미로 정립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섬세한 성찰은 궁극적으로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자아를 인식하고 재탐구하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현실을 이해하고 자아를 성찰하는 태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의 한 형태로 치환하기는 쉽지 않다. 이 점에서 손승범은 인간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서커스와 마술이라는 또 다른 상상의 힘이 작용하는 무대에서 자신의 내재적 욕망을 설득력 있는 미적 상상력으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작품을 잘 알기 위해서는, 우선 충분히 그 작품을 즐겨야 한다. 다른 예술 작품이 모두 그러하듯, 미술 작품 역시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즐김의 대상이다. 그 즐김은, 이 쓰임새의 세계에 있는 억압하지 않는 부정성의 한 표현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술은 문학과 달리 현장성이 필요하므로 시집이나 소설을 읽으며 감상하는 방법과는 분명 다르다. 이 점에서 손승범의 전시는 즐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듯하다. 진솔한 시각으로 자신의 내면과 사회의 구조를 서커스와 마술이라는 무대를 통해 그려낸 세계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클라리네스트(A poor clarinetist)_89.5×145.5cm_장지에채색_2011

 

 

어설픈서커스(A poor circus) 200x300cm 장지에채색 2011

 

 

피에로의비애(Grief of Pierrot) 117x91cm 장지에채색 2011

 

 

혼돈(Chaos) 146x113cm 장지에채색 2010

 

 

쇼(Show) 163x262cm) 장지에채색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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