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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의 '인간과 자연의 공생, 그 에코토피아 세계'

변종필

 

인간과 자연의 공생, 에코토피아 세계를 꿈꾸다

 

홍콩 문(Moon) 갤러리에서 열린 허진(1962)공생(共生)전은 묵시’, ‘다중인간’, ‘익명인간’, ‘유목동물등의 시리즈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와 형상화에 주목하며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성을 탐구해온 연장선에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올해 초 성곡미술관 전시를 비롯해 수년간 집중해왔던유목동물+인간-문명시리즈를 선별하여 작가의지를 집약시킨 전시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허진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작품세계의 본질은 단순히 자연과 인간의 생태적 순환을 미적 조합으로 완성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의 작품은 현대사회가 첨단화된 문명사회로 변화될수록 상대적으로 인간의 존재적 가치가 상실돼가는 현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는 인간에 의해 자연 순환이 무너지고, 엄격한 규범과 법칙이라는 위선 속에 인간소외, 부조리, 인간성 상실, 불합리가 팽배해진 현대사회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인간과 동물의 공동체적 삶을 경시한 현대사회의 풍토에 대해서 허진은 일찍이 철학적 사유를 담은 여러 시각적 이미지로 표출해왔다. 유전자 조작 및 가공, 전자 재조합기술, 생명복제, 세포융합 등의 유전공학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이 자연 생태계의 오묘한 균형을 교란시키거나 혹은 파괴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강조한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산양과 호랑이, 말과 코뿔소의 이종교배를 통해 순종을 잡종(hybrid)화시킨 그의 유전적 변이동물은 생태 파괴와 더불어 인간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상징한다. 자연법칙을 무시한 인간의 욕심은 결국 생태적 재앙은 물론 인간 세계의 질서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는 곧 인간 존재 가치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런 불편한 진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기 어렵다. 대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이 이제는 잃어버린 신화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하게 한다.

허진의 이번 전시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 생태학과 관련지을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심장은 스프링이고, 신경은 철선이며, 관절에 해당하는 것은 톱니바퀴이다.’라고 하면서 인간을 인공생명이 있는 기계처럼 인식한 철학자 홉스의 시각과 맥락적 일치를 보인다. 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과 인간, 그리고 기술 진보로 만들어진 인간생활 속의 오브제가 결국은 운동, 변화, 발전 등을 거쳐 소멸하고 생성(생산)된다는 순환 구조의 유사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해석은 인간, 동물, 오브제의 이미지를 상호 유기적 관계로 오버랩시킨 그의 조형의지에 근거한 것이다.

인류의 기원에서 인간과 동물은 생물학적 종의 구성원이라는 분류뿐만 아니라 생존본능이나 환경적 변화에 따른 적자생존에서도 유사성을 지녔다. 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육체이고, 동물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다. 반면, 인간과 기계는 그 구조적 유사함을 지녔지만, 동물과 같은 생물학적 유사성은 없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문명 사이의 실질적 주체는 인간이지만, 정작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존재적 가치는 소외와 무관심 속에 상실되어 가고 있다. 허진의 작품 속 다종다양한 동물들과 오브제는 이러한 인간 세상의 모습을 대변한다.

사자, 호랑이, 얼룩말, 기린, 코끼리, 타조 등 생존을 위한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을 따르는 자연세계나 콤파스, 캠코더, 전화기, 수도시설 등의 오브제를 통해 인간을 현대조직사회에 필요한 부품이거나 생활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국가와 국가, 남과 여,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등 편리공생(commensalism)적 관계로 형성된 현대사회의 생존구조는 결국 인간중심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인간과 자연의 생명체계가 균형적으로 유지되고, 자유롭게 공생할 수 있는 에코토피아(Ecotopia)적 세계를 꿈꾸는 뚜렷한 작가의지가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의 조합으로 구성한 독자적 화면구성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역동하고 있다.

 

 

 

 

<미술세계 전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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