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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톡톡>미술가를 평가하는 저울이 있다면?

변종필

「로제 드 필의 ‘예술을 재는 저울’을 통해서 본 예술성의 의미」

 

만약, 세계 미술사를 장식한 수많은 화가의 예술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저울이 있다면 어떨까?

 

 

 현대미술은 다원주의라는 개념조차 무색할 정도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작품들로 넘쳐나지만, 19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표적 화가들의 표현 양식이나 기법들이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특정 양식이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다. 예컨대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시대로 불리는 것은 각각의 특성에 어울리는 이름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미술사는 한편으로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나 뜻밖의 인물에 의해 커다란 변동을 겪는 반전(反轉)의 역사이기도 하다.

 17세기 프랑스는 유럽을 휩쓴 바로크 양식 대신 여전히 아카데미가 주도하는 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했다. 프랑스 고전주의의 신봉자  샤를 르 브랭(Charles Le Brun, 1619-1690)이 이끄는 예술 아카데미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처럼 엄격한 형식과 교훈적 서사가 뚜렷한 그림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취급하였고, 당시 화가들은 르 브랭의 주장을 거부할 수 없는 절대원칙처럼 지켜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인물의 등장과 함께 이 원칙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당사자가 당대 최고의 미술가나 권위 있는 비평가가 아닌 아마추어 비평가라는 점이다. 그의 이름은 로제 드 필(Roger de Pile, 1635-1709). 오늘날에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전통을 흔들며 예술 사상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지만, 당시 그의 등장은 당대 미술계를 주도하던 인물들을 불편하게 했다. 아마추어 비평가로 활동하던 로제 드 필은 철저한 형태중심의 소묘를 중시하는 아카데미 화풍에 반기를 들며, 색채를 회화의 진정한 고유성으로 내세웠다. 그의 주장은 회화의 위대성을 ‘형태냐 색채냐’로 양분하는 논쟁으로 확산되었지만, 궁극적으로 회화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무엇보다 미술사학이 특정한 전문가의 시각에서 벗어나 대중이라는 폭넓은 시각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공헌했다는 점에서 로제 드 필이 당시 아카데미 화풍에 맞서 주장한 이야기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로제 드 필의 비평행위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1708년에 시각 예술 일반에 대한 평가 기준을 찾고자 출간한『그림들의 대차 대조표La balance des peintures』라는 저작이다. 이른바 ‘예술을 재는 저울’로 통하는 이 책에서 그는 당대까지 미술사를 주름잡던 화가들을 구성, 드로잉, 색채, 표현의 4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평가했다. 각 항목에 20점을 부여하여 80점을 만점으로 정하고 화가들에게 점수를 매겼다. 세계미술사에 가장 위대한 화가들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서열화했다. 한 사람의 아마추어 비평가에 의해 일순간 위대한 화가들이 성적순으로 나열된 셈이다. <표1>에 기록된 점수가 로제 드 필이 작성한 대차 대조표이다.

 

화가

구성

소묘

색채

표현

총점

레오나르도 다빈치

15

16

4

14

49

미켈란젤로

8

17

4

8

37

라파엘로

17

18

12

18

65

티치아노

12

15

18

6

51

루벤스

18

13

17

17

65

렘브란트

15

6

17

12

50

르 브랭

16

16

8

16

56

 

 그는 당시 프랑스화풍을 이끄는 푸생은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o,1483-1520)라는 르네상스 3대 거장부터 티치아노(Tiziano,1490-1576), 카라바조(Caravaggio,1571-1610), 루벤스(Rubence, 1577-1644),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는 물론 자신과 끝까지 대립했던 르 브랭까지 끌어들여 점수화시키고,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그가 매긴 점수 중 눈에 띄는 것은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 예술가의 점수가 고작 37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정도 점수면 낙제에 가깝다. 살아생전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미켈란젤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미켈란젤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대신해서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여덟 살 아래의 라파엘로에게 무려 28점이나 뒤쳐졌으니 미켈란젤로에게 로제 드 필의 평가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점수는 또 있다.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천재적 예술가로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49점 밖에 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명성에 비하면 역시 초라한 점수다. 여기 표에는 빠졌지만 이탈리아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는 최하에 가까운 28점을 받았다. 반면, 라파엘로와 루벤스에게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의 화가들 중 최고점을 주었다.

 

그렇다면 로제 드 필은 대체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점수를 매겼을까? 자국을 대표하는 푸생화풍과는 전혀 다른 화풍을 추구한 루벤스의 작품을 가장 높게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로제드 필의 평가를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여겨 그의 평가를 무시할 수도 있지만, 내심 그가 평가한 항목들을 보면 나름의 설득력 있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먼저, 그의 평가 기준은 색채와 형태에 있었음이 중요하다. 예컨대 미켈란젤로는 구성, 색채, 표현의 점수가 평균이하이다. 그러나 소묘점수 만큼은 최고점에 가까운 17점이다. 라파엘로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점수다. 이 부분이 다른 화가들과 비교할 때 미켈란젤로의 탁월한 재능을 대변하는 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다. 그가 회화(천지창조)를 그리게 된 것은 미켈란젤로를 시기했던 브란만테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결국 그의 위대성은 조각에 있었다. 따라서 로제 드 필이 평가한 항목을 회화에 국한시켜볼 때 미켈란젤로가 받은 구성, 색채, 표현의 낮은 점수를 이해할만하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의 인물표현이 회화적 요소보다 조각적 특징이 반영된 작품임을 아는 순간 더욱 이해가 된다. 물론 미켈란젤로의 점수가 까다로운 프레스코 기법의 거대한 벽화(천장화)라는 특성이 고려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로제 드 필이 다른 화가들에 견주어 미켈란젤로의 색채 사용이 원색 대비로 일관하여 조화보다는 인물의 강조에 중점을 두었다고 본 것은 정확한 판단이다. 결국 미켈란젤로에게 색은 조화로움보다는 형태를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남긴 많은 조각품에서 보이는 완벽한 조각술은 예술가로서의 뛰어난 능력이 조각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충분히 일깨워준다. <천지창조> 역시 조각적 요소가 두드러진 묘사와 거대한 스케일이 지닌 장대함이 쏟아내는 압도감만으로도 그를 위대한 화가로 일컫는데 부족함은 없으니 로제 드 필의 점수만으로 미켈란젤로를 굳이 위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리가 주목할 사람은 모든 평가항목에서 뛰어난 점수를 받은 라파엘로이다. 그의 점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장점을 최대한 완벽히 따르고 단점은 최소화 시킨 결과이다. 실제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의 회화와 미켈란젤로의 회화가 지닌 장점을 활용해 자신만의 독자적 화풍을 완성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로제 드 필의 점수도 이 부분을 인정한 평가로 볼 수 있다.

로제 드 필의 색채와 형태에 대한 평가기준은 다음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르 브랭이 티치아노를 향해 색채의 성취를 위해서 회화의 진리를 저버린 화가라고 비판했지만, 로제 드 필은 티치아노를 가장 뛰어난 색채화가로 평가했다. 티치아노의 색채는 물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색을 매일 바라볼 수 있었던 베네치아라는 지리적 환경이 준 선물이지만, 이것을 놓치지 않고 표현한 화가가 티치아노이다. 그리고 로제 드 필이 그의 뛰어난 색채감각을 알아보았다.

 여기까지 로제 드 필이 대차대조표를 통해 위대한 화가들의 예술성을 저울질 한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로제 드 필 평가의 실제 핵심은 루벤스와 푸생의 비교에서 찾아야 한다. 로제 드 필의 저서가 엄격한 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하는 화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결과적으로 루벤스의 화풍이 푸생화풍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푸생을 아카데미 화풍의 표본으로 삼고 있었던 당대 프랑스 화단에 갑자기 등장한 루벤스 옹호자에 의해서 그들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이 점에서 보면 르 브랭이 중심이 되어 로제 드필의 평가를 무의미한 것으로 평가절하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당시의 컬렉터들은 권위있는 아카데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로제 드 필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푸생의 작품 대신 루벤스의 작품을 구입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현상은 아마추어 비평가로 시작했지만 평생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키워온 로제 드 필의 감식안에 컬렉터들이 신뢰를 보인 결과로 볼 수 있다.

 

 프랑스 미술이 유럽미술을 이끌었던 하나의 원동력은 국가 주도의 아카데미와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만들어낸 살롱문화의 융합이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로제 드 필의 역할은 예술이 대중의 마음과 관심 속에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지 하나의 표본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00여 년 전 한 사람의 아마추어 비평가가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을 바꾼 사건은 두고두고 되짚어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 사건을 되돌아볼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만약, 로제 드 필의 ‘예술을 재는 저울’을 지금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가들에게 적용하면어떨까? 현대미술가의 대차대조표가 만들어진다면,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대중들의 답답함이 명쾌하게 해결될지 궁금하다.

 < 전시가이드 10월호>

 

<도판>1.레오나르도 다 빈친<성(聖)안나와 성(聖)모자>1510 / 2.미켈란젤로<최후의 심판(부분)>1536-41/ 3.라파엘로<대공의 성모>1504 / 4.티치아노<다이아나와 악티이온(부분)>1556-59 / 5.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612/ 6.푸생<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가 있는 풍경 (부분)>1648

<참고문헌>

우도 쿨터만 지음, 김수현 옮김『미술사의 역사』문예출판사, 2002.

진중권『서양미술사』휴머니스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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