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아트톡톡>미술 역사상 최대의 반전: 이것은 ‘변기’가 아니다.

변종필

 

 

 사진 속 물건은 한 때 우리 생활문화의 필수품으로 웬만한 집안에는 하나둘씩 가지고 있던 요강이다.

그런데 이 요강을 〈우물〉이라는 제목으로 명명하여 미술작품처럼 뉴욕의 유명갤러리에 전시한다면 어떨까? 이 물건의 용도를 모르는 외국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어쩌면 그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황금빛의 물건을 보고, 동선이 아름답다거나 사물이 왜곡되며 반사되는 모습을 보며 색다른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설사 훌륭한 미적가치 대상으로 평가하지 않더라도 이 물건의 용도를 알기 전까지 전시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유명갤러리에 이 요강을 전시하면 어떨까? 짐작컨대 관람객을 모독했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학적으로 예술과 비예술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라는 사회적 담론마저 이끌어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가설이 95년 전, 뉴욕의 한 전시관에서 이미 일어났다. 이제는 너무 친숙할 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미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샘(Fountain)〉〈도판 1〉이 1917년 뉴욕의 한 전시를 통해 변기에서 작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독립미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 가 주최한 이 전시회는 무심사제도로 6달러의 연회비만 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전시이다. 그러나 〈샘〉이 화랑에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전시 주최측은 갑자기 등장한 이 작품에 당황해 하면서 연회비를 떠나 예술작품의 경계를 무너뜨린 물건을 도저히 전시장에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결국 전시를 거부했다. 이 일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미술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상황과 관련하여 뒤샹이 죽기 2년 전에 프랑스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인 피에르 카반느(P.Cabanne)와 나눈 대담 중 일부를 보면〈샘〉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카반느 : 소변기에 무트(R. Mutt)라고 서명하여 첫 독립전에 출품했다가 거부당했습니다.

뒤샹: 단순히 그냥 치워졌다. 나는 심사위원이었는데 그들은 내게 물어 본 일이 없었다. 그 이유는 주최측이 내가 그것을 출품한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작품〈샘〉은 전시 기간 동안 칸막이 뒤에 놓여졌고, 나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전시회가 끝나고 〈샘〉을 칸막이 뒤에서 찾아내었다.

 

전시 주최측의 처지에서 볼 때 상식적으로 화장실에 있어야 할 물건이 턱 하니 전시장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지 상상이 된다. 급기야 주최측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샘〉의 전시 거부를 밝혔다. 먼저, 변기는 외설적인 것(변기의 편편한 부분을 바닥으로 하여 도출된 부분이 발기(勃起)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으로 비도적이며, 저속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작가의 노력 없이 단순히 표절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러한 이유는 그때까지 예술이 지닌 일반적 특성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결정에 대한 뒤샹의 대응이었다. 사실 이 작품은 뒤샹이 출품한 것이지만 작품에 이름은 R-Mutt라는 가명(제조사)의 이름을 적어 출품했다. 그리고 마치 결과를 예견이라도 한 듯 작품이 전시를 거부당하자마자 머트라는 가공의 작가를 대변하며 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편지를 쓰고, 아래의 내용을 핵심으로 한 반박 글을 『The Blind Man』이라는 잡지 제1호(창간호)에 게재했다.

 

‘리처드 머트씨 작품 〈샘〉은 단순한 하나의 설비로써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배관공들을 위한 상점의 진열장에서 매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머트씨가 〈샘〉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저 존재하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선택하여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제목과 새로운 견해 아래서 실용적인 의미는 사라졌다. 그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것이다.’

 

앞서 주최 측이 〈샘〉의 전시를 거부했던 두 가지 이유가 상식적 수준에서 타당했다면, 〈샘〉이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이라는 것과 예술작품은 작가가 직접 만들어야한 한다는 것은 인간의 고정관념, 즉 선입견에 따른 편견이라는 뒤샹의 반박 글 역시 논리적 측면에서 타당해 보인다. 이는 요강을〈우물〉이라는 제목으로 명명하여 뉴욕 갤러리에 전시했을 때 외국인의 반응을 예측한 가설이 뒤샹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뒤샹의 〈샘〉을 1917년 우리나라의 미술관에서 전시했다고 가정할 때 서양변기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물건의 외형만 보고 외설적이거나 비도덕적이라고 몰아세울 수 없는 것과 같다. 결국, 뒤샹의 〈샘〉이 지닌 핵심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이 미술작품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미술작품은 반드시 작가가 직접 제작해야 되는가에 대한 뒤샹의 반박논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변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작가가 직접 만든다 해도 뒤샹이 선택한〈샘〉보다 더 리얼리티를 지닐 수는 없다. 또 일상에서 발견한 어떤 사물을 선택하여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감상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수석수집을 예로 들어보자. 일정한 마니아층을 지니고 있는 수석수집은 대부분 자연적으로 형성된 형상을 보고 연상되는 이미지에 매료되어 하나의 작품처럼 취급한다. 사실상 수석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에 놓여있던 것을 누군가가 선택하여 감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수석의 경우를 보면 뒤샹의 말처럼 예술가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느냐는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누가 그것을 발견해서 선택했느냐가 핵심이다. 결국, 뒤샹의 〈샘〉은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작품을 직접 제작하지 않고, 어떤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선택하여 제시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작품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개념을 창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많은 미술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미술제도권은 뒤샹의〈샘〉을 일상용품의 변기에서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인정하였다. 미술사에서 굴욕적인 해프닝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작품이 현대미술의 가장 핵심적인 아이콘이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샘〉은 탈 화폭의 미술(회화중심)시대를 열었고, 회화와 조각의 장르 구분을 무의미하게 했으며,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을 파괴했다. 나아가 미술사에서는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설치미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한마디로 뒤샹의 〈샘〉은 인간 사유의 세계를 시각화하여 사회적 관습에 대한 새로운 코드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사진과 영화의 등장이 인간의 지각체계를 바꾸고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만큼의 파괴력을 지녔다. 실제로 〈샘〉은 2004년 영국의 미술가 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피카소, 마티스, 앤디워홀의 작품을 제치고 20세기 100년 동안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오늘날 〈샘〉은 현대미술에서 모나리자만큼 유명해졌고, 많은 작가에 의해서 모방적(차용, 패러디, 패시티쉬) 대상이 되어 또 다른 작품들의 개념을 뒷받침하는 근원이 되었다. 예컨대 오랜 기간 '이후(after)'라는 텍스트를 통해 원작자의 독창성을 부정하고, 그(남성중심)들의 절대적 권위를 해체하는 작업을 해온 작가로 유명한 세르 레빈(Sherrie Levine, 1947~) 역시 뒤샹의 작품을 모방한 대표자로 들 수 있다.〈도판 2〉 세리 레빈의 '이후'는 남성문화의 죽음대신 새로운 개념의 문화창출을 의미하지만, 이 역시 창작주체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예술을 부정했던 뒤샹(또는 다다이스트)식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또 하나 기억해야할 중요한 것은 〈샘〉이라는 제목이다. 뒤샹이 〈샘〉에 부여한 알레고리는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의미와 기호로서 단순한 남성용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명명한 순간 파생되었다. 뒤샹의 〈샘〉은 로댕이 두 사람이 마주잡은 손을 조각한 후 붙인〈대성당〉(1908), 마그리트가 파이프를 그려놓고 정작 파이프가 아니라고 적어놓은 〈이미지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9)를 비롯해 데미안 허스트가 포름알데히드가 가득한 유리진열장에 상어를 매달고 붙인 제목〈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서 불가능한 육체적 죽음〉(1991)에 이르기까지 재현대상과 제목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잇는 역할하며 현대미술을 기호학(기표와 기의)적으로 해석한 미학까지 연결시켰다. 변기를〈샘〉으로 명명함으로써 변기를 미술로 바꾼 것은, 미술가들이 2만 5천 년 전의 인물상을 박물관에 전시한 뒤 ‘비너스’라 명명하고, 그것에 미술이라는 세례명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뒤샹이 붙인 〈샘〉이란 제목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도 있다. 2006년 초, 파리 현대미술관인 퐁피두 센터에서 〈샘〉이 전시되고 있을 때 일흔여섯의 한 노인이 휘두른 망치에 부서지는 봉변을 당했다. 망치를 휘두른 노인은 급히 달려온 경찰에 의해서 끌려가면서 ‘내가 한 행동은 20세기 초 다다이스트들의 퍼포먼스와 같은 예술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이 노인은 조사결과 이미 뒤샹의 〈샘〉에 오줌을 누어 작품을 모욕한 전과가 있었다. 이 노인의 행동은 〈샘〉이 기존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것인데, 그 의도를 무시하고 복제된 변기들을 비싼 값에 거래하는 미술계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현대미술에 나타난 수많은 작품이 제도권 내에서 미술작품으로 인정되어 상품화되는 것이 반드시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미술의 역사는 습관처럼 반복되는 전통과 형식을 거부하고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20세기 미술의 정신적 이단아, 혹은 레디메이드의 대명사로 불리는 마르셀 뒤샹의〈샘〉은 1917년 미술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며 등장한 그 순간부터 일종의 기호로 변신하고, ‘모든 오브제는 일종의 은유’라고 했던 아서 단토의 말처럼 갖가지 ‘의미’를 획득하며 미술사상 가장 놀라운 반전이 되었다.

 

 

〈참고문헌〉

정장진 지음『오프 더 레코드 현대미술』동녘. 2009.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연구.1997.피에르카반느 지음. 정병관 옮김.『마르셀 뒤샹』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2.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