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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톡톡>‘바니타스’에 담긴 삶의 철학

변종필

변종필의 아트 톡톡 - 인생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수 있다

 

2007년, 세계미술시장의 블루칩이었던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965~)의 작품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는 인간의두개골, 8,601개의 다이아몬드, 2,156g의 백금, 200억 이상의 제작비, 판매가격 5,000만 파운드(약 947억 원) 등으로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화젯거리다.

필자는 감상자의 작품 읽기도 궁금하고 강의의 집중도를 높일 겸 미술 강의 시간이면 응당 이 작품을 보여주며 ‘작품을 본 느낌이 어떤가요?’, 작가는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요?’ 라는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때마다 들려오는 말은 ‘섬뜩하다’, ‘무섭다’,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진다.’, ‘물질 만능에 대한 경종’ 등의 인상부터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왜 저토록 많이 해골에 사용했는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주를 이룬다. 한편으로는 ‘화려하다’, ‘멋있다’, ‘아름답다’, ‘역시 다이아몬드는 어디에 있어도 빛난다.’ 등의 호의적 반응도 적지 않다. 사실 이 작품은 1720~1810년 사이에 생존했던 30대 중반 유럽인의 실제 해골을 티타늄으로 주형 제작한 후 다이아몬드로 장식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작품에 대한 특별한 제작 동기나 의미를 얻어내기 어렵다. 오히려 발표된 이후 사람의 관심 속에 하나둘씩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의 기호로써 해골이 주는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넘어 ‘인생은 절대 허무하지 않고, 얼마든지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는 의미로 바라보게 된다.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작품만큼 다양한 메타포(metaphor)를 만날 수 있다. 그 중 바니타스(vanitas)는 고전미술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가 즐겨 쓴 메타포이다. 바니타스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를 의미하는 라틴어 Vanitas vanitatum'에서 유래한 용어로 16세기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주제이다. 주로 시든 꽃, 낡은 책, 돈, 촛불, 모래시계, 비눗방울, 해골 등의 비유적 사물을 통해 대변되어왔다. 특히 해골은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의 상기와 인생무상을 상징하는 기호로 여겨졌다.〈그림 2〉처럼 해골을 소재로 그려진 작품들을 예로 보자.

 네덜란드 얀 호샤르트의 1517년 작품 해골이 있는 정물〉은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쉽게 경멸할 수 있다.”라고 라틴어로 적힌 성 히에로니무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곧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실제 이 그림은 초상화의 뒷면에 그려진 것으로 앞면에 그려진 초상화의 모델에게 죽음의 불가피성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화가였던 하르멘 스텐웨이크가 1640년에 그린 정물: 인생의 헛됨에 대한 알레고리〉 역시 제목이 말해주듯 해골 주변에 값비싼 물건을 대비시켜 세속적 욕망과 물질적 충족의 허망함을 지시한다. 반 고흐의 작품담배를 문 해골〉은 자신의 고단한 일상, 불완전하고 절망적인 삶에서 느낀 인생의 덧없음과 관련 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전 생애를 통해 작품세계의 핵심적 주제였던 죽음을 다양한 바니타스적 소재로 표현했다.Skull〉은 그 시리즈 중 하나다. 이처럼 미술사에서는 해골을 시각화하여 바니타스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외에 수수께끼 같은 화법으로 바니타스를 표현한 작품도 있다. 영국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된 16세기 독일 초상화의 대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프랑스 대사들〉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대사들〉은 영국의 국왕 헨리 8세의 이혼문제와 국내외 정치․종교적 정세가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대 지성을 대표하는 외교관 장 드 댕트빌(당시 29세)과 성자 조르주 드 셀브(당시 25세)가 영국에 파견 와서 궁정화가였던 홀바인에게 주문해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당시 과학과 종교를 상징하는 각종 물체가 화면 중앙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구의, 사분의, 다면해시계, 트르카툼 등 천문학이나 과학을 상징하는 사물과 류트, 피리, 성가집, 삼각자 등 종교적 사물을 화면의 상하에 배치했다. 이 같은 구성은 가톨릭과 신교도와의 갈등, 신대륙발견과 과학적 힘으로 무너지는 불확실한 지식 세계의 위기를 암시한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를 체감한 작가는 다가올 세상의 갈등과 혼돈을 구원하고 싶었을까. 왼쪽 위 구석에 답답하게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살짝 내민 은제 십자가가 그림에 표현된 어떤 물체보다 절실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이 그림에서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은 헨리 8세의 이혼문제도, 종교와 과학의 갈등도 아니다. 화면 정면에 비정상적 원근법과 기이한 형태로 길게 늘어진 이미지야말로 이 작품의 잠재적 메시지가 담긴 부분이다. 모호한 이 형상의 실체는 해골이다. 특정한 위치에서 볼 때만 그 실체를 인식할 수 있는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 왜상(歪像))기법으로 죽음의 기호인 해골을 그렸다. 그렇다면 작가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소재를 왜 수수께끼 같은 기법으로 표현했을까? 그것도 인간의 두개골을…. 이것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댕트빌의 신조를 반영한 것이지만, 해골을 변형 투영으로 그린 것은 죽음이 갖는 삶의 경계에 관한 복합적 의미를 성찰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즉, 해골을 통한 가시적 의미(죽음)와 심층적 의미(삶)를 되돌아보게 하는 철학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가치와 무게가 다를 뿐이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만이 행복한 삶처럼 그려지는 현대사회에서 진실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인생은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화려하고 찬란할 수 있다. 비록 부와 명예는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진실함이 내적으로 충만한 인생은 분명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홀바인의〈프랑스 대사들〉처럼 인생을 스스로 자각하는 자만이 참다운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인생의 가치는 현재 누리고 있는 부와 사회적 지위보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의 태도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림1>데미언 허스트For the Love of God〉2007 / <그림2 >얀 호샤르트 <해골이 있는 정물> 1517년,하르멘 스텐웨이크 < 정물: 인생의 헛됨에 대한 알레고리> 1640년경,반 고흐<담배를 문 해골> 1885년, 앤디 워홀 <Skull> 1976 / <그림3> 한스 홀바인 <프랑스 대사들>1533년,나무패널에 유화,207×209cm, 영국 런던 국립미술관 <전시가이드 8월호>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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