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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영숙의 아트테크 | 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 (13)]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

정영숙

[정영숙의 아트테크 | 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 (13)]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 

“동양화 전문 화랑 운영에 긍지… 미술품 기증 문화 널리 전파하고파”


동산 박주환 선생이 표구사로 시작… 1970년대에 전성기 구가
신진 작가 발굴과 전시 기획 통해 근현대 한국화단의 기틀 마련


▎동산방화랑의 대표인 박우홍 감정 전문가(왼쪽)는 한국화 전문가다. 박 대표와 미술관을 둘러보는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 사진:갤러리세인
달과 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간에 산책한다. 풀과 나무가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함이다. 모든 생명이 깨어나는 시간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열매와 철 지난 갈대와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산책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예술도 이와 비슷하다. 사계절을 담은 산수화 병풍과 둥글고 하얀 달항아리는 예술을 넘어 인간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

‘동산방화랑’으로 향한 이유도 이 같은 선물을 받기 위함이다. 동산방화랑 대표인 박우홍 감정 전문가는 한국화 전문가다. 박 대표는 군 복무를 마친 1976년부터 부친인 동산(東山) 박주환(1929~2020) 선생이 운영하던 동산방화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박 대표는 1989년 독립해 서울 강남에 ‘갤러리맥’이라는 화랑을 4년간 운영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갤러리맥 운영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러던 중 다리를 다쳐 두 달 동안 목발 신세를 지게 됐다. 이 기간 박 대표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고민의 결과는 부친이 평생 일궈온 동산방화랑으로의 복귀였다. 동산방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신이 작품을 보는 안목이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도 주된 이유였다고 했다.

동산방화랑은 197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전람회 때보다 평상시에 주문 받는 작품이 더 많을 정도였다. 1976년 이후 아파트 입주가 활발해지면서 미술 작품의 수요도 덩달아 뛰었다. 덕분에 쟁쟁한 작가는 물론,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사랑받기 시작했다. 당시 40대 인기 작가로는 이종상, 송수남, 이영천 등이 있다. 오용길 작가도 당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박 대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어갈 무렵 인터뷰를 중단해야 했다. 박 대표의 본업인 감정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1차 미팅을 마쳤다. 다행히 다음 날 2차 미팅을 진행할 수 있었다. 2차 미팅은 1차보다 더욱 신비로웠다.

“동산방화랑 역사는 한국화의 역사”


▎기증자 박주환 선생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는 2층 회랑 공간이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전 전경. /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동산방화랑은 1961년 종로구 인사동에서 표구사로 시작했다. 표구를 전문으로 하던 동산방화랑은 작업실 절반을 전시장으로 꾸몄다. 1966년 첫 전시를 성공리에 개최한 이후 1970년에는 전시장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1층에는 전시장을, 2~4층에는 작업실을 마련했다. 당시 3층에 남정 박노수 작가, 4층에는 권순형 작가가 입주했다. 박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1974년 12월 화랑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전문 화랑을 표방했어요. 그전에도 아버님 심부름 차 종종 화랑에 들렀기에 자연스레 ‘그림이 많은 분위기’ 속에서 살았지요. 제 누님도 동양화 전공자입니다. 누님은 수도여자대학교(현 세종대학교)에 수석 입학했고, 대학 4학년 때 국전에 입선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에 아버님이 세검정으로 이사를 하셨어요. 해당 건물의 2층에 누님의 방과 작업실이 위치했습니다. 저로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감상하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었습니다. 경영학도인 저는 장남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아버님의 일을 도왔습니다. 무엇보다 아버님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해 화랑 일에 입문했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아주 좋아하셨지요.”

대를 이어 갤러리를 운영하는 ‘2세’가 ‘1세’와 뜻을 같이하기는 쉽지 않다. 세대 차이는 물론 취향 차이도 클 것이다. 다행히 박 대표는 부친과 비슷한 취향을 지녔다. 박 대표는 부친의 최측근 컬렉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40여 년 전의 일을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님은 김종희 한화 회장과 가까웠습니다. 김 회장의 작품 컬렉션 대행도 많이 하셨지요. 김 회장의 사모님께서 ‘아단문화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대기업 경영자들은 작품 감식안이 뛰어난 화상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이 대표적이다.

후학 양성에 앞장선 동산 선생


▎동산방화랑에는 박주환 선생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담겨 있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전 전경. /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박 대표의 부친인 동산 박주환 선생은 지난 2020년 타계했다. 당시 (사)한국화랑협회 정책이사를 맡고 있었던 필자는 화랑의 대표 어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당시 유홍준 평론가의 즉흥 조사가 뇌리에 남아 있다. 유홍준 선생이 미술 전문지 기자를 할 당시 박주환 선생께서 대학원 입학을 권유하셨고, 2년 치 장학금까지 선뜻 내주셨다고 했다.

동산방화랑은 설립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진작가 발굴과 전시 기획을 바탕으로 근현대 한국화단의 기틀을 마련해 왔다. 박 대표는 특히 동산방화랑이 동양화 전문 화랑이라는 데 더 큰 긍지를 갖고 있다. 그 자신이 오로지 미술계에서 부친의 명맥을 지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동산 박주환 선생의 소장품이 전시되고 있다. “아버님 소장품으로 전시가 개최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기부 문화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동산방화랑에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봤다. 박 대표의 인상적인 해설을 몇 대목 들어보자.

“오원 장승업의 나무·풀·꽃·새 그림의 단독 족자형 그림입니다. 새들의 표정과 벌레를 잡으려는 순간 포착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청전 이상범의 [하경]은 여름의 짙은 녹음이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용의 발을 세 개로 표현한 백자 청화 매병은 선친께서 애장하셨던 작품입니다. 세자들의 공간, 즉 궁에서 사용한 이력이 있는 작품으로, 제가 용띠라서 더 즐겨 보고 있습니다.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의 임진왜란 직후 작품 두 폭은 연기가 표기돼 있습니다. 그래서 ‘석양정’이라는 정자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습니다. 1500년대 후반에는 회화에 금을 사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탄은은 왕족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작품 한 점 한 점을 귀하게 여기는 박 대표의 ‘진심’이 오롯이 전해졌다.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이 존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소장품을 기꺼이 내놓는 기증문화가 있다. 기증자가 없었다면 뉴욕의 모마, 런던의 테이트 모던,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뒤셀도르프의 인젤 홈브로히(Insel Hombroich) 등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액을 투자해 평생 모은 미술품은 소장자의 ‘분신’이나 다름 없다. 이런 미술품을 공공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기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이 점에서 기억에 남는 전시 기획전이 있다. 바로 지난해 열린 ‘이건희 컬렉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될 당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당시 미술관은 아이돌 공연장처럼 들썩였다.

미술품 기증이 귀한 전시로 이어져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2021~2022년에 걸쳐 동산 박주환 선생이 기증한 작품 209점 중 대표작을 선별해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을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동산 박주환 컬렉션’ 전시품들은 모두 박우홍 대표가 기증했다.

기증자 박주환 선생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는 표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2층 회랑 공간이었다. 특히 공간을 채우고 있는 빈 액자 틀이 인상적이었다. 윤소림 학예사가 강조한 공간인데, 일반 관람객에게 표구의 변천과 장인 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고 천경자 작가의 작품에 맞춘 액자 틀은 이후 동산이라는 고유명사로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종이, 비단의 색상과 액자 방식 등이 유일무이하게 동산방에서만 진행됐기 때문이다.

동산방화랑 연혁이 2층 회랑에 표기돼 있었다. 지난 1974년 개관 당시부터 2022년까지 기증품을 기준으로 작성됐다. 박 대표는 이 중 주요 기획전으로 1976년 [동양화 중견작가 12인 초대전], 1978년 [3인 행전], 1980년 [현실관 발언 동인전], 1981년 [조선시대 일명회화전]등을 꼽았다.

동산방화랑에서는 현재도 주요 개인전과 기획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작품을 수집한 박주환 선생도 훌륭하지만 유족의 마음을 모아 개인 소장품을 기증하기로 결심한 박우홍 대표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기증품이 전시로 이어지는 것은 예비 기증자들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선례를 남기는 일이다. 이틀간 진행한 박 대표와의 인터뷰는 대단히 특별했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




원본출처 :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9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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