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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12)]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

정영숙

[정영숙의 아트테크 | 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12)]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 

“미술품은 모두의 것… 3000여 작품 사회 환원할 것”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갤러리 운영
‘서울예술재단’ 이사장 맡아 신진 작가 발굴하고 후원도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는 3000여 점의 미술작품을 사회에 전부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 사진:갤러리세인
작가의 혼이 담긴 미술품을 제대로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미술품 수집도 일반적인 취미와는 거리가 있다. ‘미술품’이나 ‘컬렉터’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얘기다. ‘미술 컬렉터’는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필자가 만난 컬렉터들은 하나같이 “컬렉션(수집)으로 삶이 윤택해졌다”며 작품 수집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미술은 종교, 명상과 더불어 우리에게 정신적인 행복을 준다. 우리 인간은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음악, 건축, 미술, 춤, 영화 등을 통해 정신 세계를 풍요롭게 채워간다. 미술품 컬렉션을 통해 기업 경영을 한층 ‘풍유롭게’ 하는 이들, 나아가 미술품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컬렉터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24년 새해 소개하는 첫 컬렉터는 ㈜표갤러리의 표미선 대표다. 표 대표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표 대표는 2023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지난 1973년 제정된 문화훈장은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한다.

표 대표는 1981년 여의도 미술관을 개관했다. 여의도 미술관을 1986년 표화랑(PYO Gallery)으로 명명한 이후 42년간 화랑을 운영하면서 미술시장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지난 2002년에는 KIAF(한국 국제아트페어)를 발족·설립해 KIAF 운영위원장을 맡아 세계적인 아트페어로 위상 강화를 이뤄냈다.

글로벌 인재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앞장


▎장시간 이어지는 인터뷰에도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또렷했다. 표 대표와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가 미술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 / 사진:갤러리세인
표 대표의 이력은 화려하다. 지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제15~16대 (사)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이후 광주비엔날레, 강남문화재단 등 문화단체에 몸담았다. 퇴임 이후 청년 작가와 미술품 고객을 연결하는 플랫폼인 (재)서울예술재단을 설립해 문턱이 높은 미술계에서 청년 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 화랑협회감정위원회에서 감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타버스 흐름에 동참해 지난 2021년 7월부터 NFT 판매 플랫폼인 카카오의 ‘클립드롭스’와 협업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NFT 디지털 예술 작품을 제작·후원하고 있다. CJ 올리브네트웍스와 MOU를 채결해 AI 도슨팅 서비스도 개시했다. MZ세대 컬렉터 사이에서 떠오르는 인기·신진 작가들과도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표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촌에 위치한 표갤러리 입구에 들어섰다. 한옥이 주를 이룬 주위 건물들과 달리 현대 건축물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의 건물 맨 위층에 대표실이 있었다. 대표실에 들어서자 이우환, 김흥수 등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밖으로는 인왕산이 보였다. 표 대표를 기다리는 동안 차를 마시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눈에 담았다.

자연경관에 취할 무렵 표 대표가 대표실에 들어섰다. 그는 명함 4개를 건넸다. 서울예술재단 이사장, ㈜표갤러리 대표,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 감정위원, 이랜드그룹 자문위원이 적혀 있었다. 문득 표 대표의 이 같은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표 대표는 자신의 미술에 대한 사랑은 이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라고 답했다. 아버지가 예전부터 즐겨 감상하던 동양화가 오늘날 표 대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아버지의 예술에 대한 애정이 표 대표에게 미술에 대한 열정을 심어줬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오래 전 대구 삼성석유 대표를 지낸 고 표영숙 씨다.

그림에 애정을 갖게 된 표 대표는 근대미술 대표작가 중 한 명인 고 권옥연 작가를 만나면서 ‘갤러리 운영’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권 작가의 거듭된 권유로 화랑 운영에 발을 디딘 이후, 여의도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후 신사동과 용산으로 이사했다. 중국 베이징에 분점도 개설했다. 표 대표는 베이징 분점에서 당시 중국 4대 천왕이라 불리던 쩡판즈, 위에민준, 장샤오강, 팡리쥔 등 작가들과 활발한 문화 교류를 이어갔다고 했다.

미술 이외 분야에도 왕성한 호기심


▎서울 서촌에 위치한 표갤러리의 유리창 밖으로 인왕산이 보인다. 현대식 건축양식이 특징인 표갤러리 외관. / 사진:갤러리세인
표 대표의 컬렉션은 크게 원로작가들의 작품과 젊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둘로 나뉜다. 지난 1980~1990년대에는 김창렬, 이우환, 백남준, 곽덕준 작가의 작품을 컬렉션했다. 이용덕 작가를 주축으로 차민영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컬렉션했다. 현재는 ‘빛의 작가’로 불리는 황선태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순수함이 묻은 빛과 경건함이 담긴 분위기의 만남이었다.

갤러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표 대표가 일정이 있다며 함께 강남으로 이동하자고 했다. 표 대표의 컬렉션 중 일부가 강남 하나은행 PP센터에 진열돼 있다고 했다. 표 대표는 차 안에서도 미술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70세의 나이임에도 흐트러짐 없이 예술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표 대표에 실로 감탄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다. “하나아트뱅크와 표갤러리는 표컬렉션 특별기획전 ‘Behind the Scene’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표미선 대표가 평생에 걸쳐 모은 주옥 같은 소장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장품전이다. 결과 만큼 과정이 중요한 시대, 거장이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기까지의 과정을 대한민국 대표 갤러리스트가 발견한 마스터 피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표미선 대표의 강점은 작품이 가진 숨은 가치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이다. 표 대표가 발견·발굴해 낸 작가들의 이름만 들어도 입이 딱 벌어진다. 오늘날 명성을 날리는 정창섭, 김창열, 하종현, 김구림, 윤명로, 이강소의 작품을 지난 1980년대부터 전시했다. 이 중 김창열 작가와 표갤러리의 인연은 특별하다. 표갤러리는 지난 2005년부터는 한국을 넘어 베이징과 상하이, 대만 소재 국립 미술관(중국 국가박물관 초대전, 국립대만미술관 전시)에서 김창열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조나단 브롭스키의 24m 대형 야외조각 작품을 베이징 올림픽 공원에 설치했다. 배우 하정우와의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다. 미술계 일각에서 하정우의 등단에 반대하자 표 대표는 특유의 뚝심으로 하정우의 등단을 밀어붙였다. 하정우의 잠재성을 본 것이다. 표 대표는 현재도 젊은 작가 양성에 힘쓰고 있다. 표 대표가 없었다면, 지금의 위대한 거장들 중 일부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강남 전시관에서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인터뷰 내내 표 대표는 ‘순수 컬렉터’의 본모습을 잃지 않았다. 각 작품에 담긴 스토리를 말할 때 표 대표의 눈은 빛났다. 작품과 작가와의 관계, 작품이 주는 기쁨이 표 대표의 눈에 담겨 있었다. 컬렉터로서의 자긍심이 상당했다. 장시간 이어지는 인터뷰에도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또렷했다. 표 대표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직접 소개했다. 진정한 열정이 느껴졌다. 긴 시간 축적된 작가와의 인연, 컬렉션의 가치,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품도 소중히 여기는 표 대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표 대표는 또한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미술 이외의 다른 분야에도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표 대표는 그 이유로 “언젠가 미술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표 대표는 갤러리 운영 외에 ‘서울예술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예술재단은 문화예술 창작자와 수요자들이 만나는 공간으로, ‘문화예술 시장의 플랫폼’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진 작가를 후원하고 대중들의 예술품 향유를 지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예술재단은 해마다 포트폴리오 박람회를 통해 잠재력 있는 신진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모집한다. 미술계의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과 직접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며, 심사를 통해 선정된 작가에게는 상금과 더불어 국내외 전시 기회를 부여한다.

“작가 후원하고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최선”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가 간직하는 작품 중에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도 여럿 있다. 이우환 작가의 대표작인 ‘바람과 함께’가 전시된 모습. / 사진:갤러리세인
인터뷰 도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녀들에게 예술의 세계에 들어올 것을 특별히 권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실 30~40년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들 중 다수가 ‘2세 경영’을 필수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표 대표는 달랐다. 자신의 컬렉션 3000여 점이 개인이 아닌 다수에게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표 대표가 자신의 컬렉션을 증여가 아닌,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표 대표와 만나며 생각나는 인물이 있었다. ‘드니즈느네’다. 컬렉터와 갤러리스트를 겸하며 주목받는 드니즈느네는 지난 1900년대 초반 추상미술 작가들과 교류하며 위대한 인물로 거듭났다. 표 대표에게서는 문학인이자 젊은 작가 후원에 앞장선 거장 ‘거트루드 스타인’의 모습도 엿보였다. 표 대표가 예술을 사랑하고 작가를 발굴하는 데 두려움 없이 투자할 수 있는 저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것은 아마 미술 저변 확대를 위해 매진해온 컬렉터, 갤러리스트 그리고 행정가로서의 경험일 것이다. 물론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도 큰 역할을 했다. 표 대표는 “앞으로도 작가를 후원하고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미술 사랑, 예술 사랑이 한국 미술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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