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백남준 등 유명작가 전시는 물론 수준 높은 작품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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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뮤지엄은 강화도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다. 김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작은 국도로 들어가는 길을 지나 산길로 조금 들어가니 곧 숲에 둘러싸인 해든뮤지엄이 보인다. 대형 거울로 된 건물은 마치 거대한 설치작품 같다. 외적으로만 보면 미술품이 전시되는 공간이라고 예측하기 어려웠다. 야외 공원에는 벤치와 함께 설치한 김경민 조각가의 작품, 김정희 조각가의 인체 입상 조각, 그리고 이고르 미토라이 작품이 있다. 양쪽 거대한 벽 사이의 계단을 내려간 뒤 문을 열자 전시장이 나타났다. 개관 10주년 기념 ‘환상의 나래를 펴다 - 샤갈 재조명전’이 한창이었다. 전시 작품을 관람한 뒤 박 관장과 마주 앉았다.
동양미학 공부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심미안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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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敬畏)의 경우는 주로 유가가 지향하는 엄숙하고 정제된 삶을 담아내는 경우에 표출된다. 예를 들면 서예에서는 해서, 회화에서는 터럭 하나 틀리지 않게 그리는 어진(御眞)과 숭고함을 보여주는 대관산수, 건물과 공간적 측면에서는 종묘나 경복궁의 근정전과 같이 국가적 의식이나 제사 혹은 정치를 행하는 공간, 기물에서는 백색을 띠면서 단아하고 반듯한 형상의 백자 등이 경외로움의 미학을 담고 있다. 형태로서는 주로 직선적이며 각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쇄락은 다양한 인간의 삶과 정신의 경지를 표현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그것들의 주된 소재는 친자연적인 삶이 대부분이다. 낮잠, 차마심, 독서, 소요, 아집, 음주, 탁족, 거문고 켜기, 서화 창작, 자연 정경의 변화를 즐기는 것 등이 그것이다. 건물과 공간적 측면에서는 요산요수(樂山樂水)할 수 있는 곳이 주로 선택됐다. 이같이 유학자들이 추구한 쇄락적 삶은 관료적인 삶을 지양하고 자연과 벗하고자 하는 은일적 삶이 담겨 있다.”
논문 내용처럼 해든뮤지엄은 경외와 쇄락의 미학이 골고루 펼쳐져 있다. 먼저 해든이라는 명칭부터 그렇다. 박 관장이 서예를 배울 당시 얻은 호가 해든으로, ‘해가 깃든 곳’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해든뮤지엄도 자연의 빛을 고스란히 머금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지어졌다. 해든뮤지엄 설계자는 배대용 건축가다. 박 관장은 ‘자연에 동화되는 건축물, 자연을 품을 뮤지엄이 나오길 바란다’는 뜻만 요청했다. 경사가 진 면이 많아 각도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자연과 햇볕이 하나가 되는 해든뮤지엄이 완성됐다.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수여하는 ‘2013년 올해의 건축 베스트7’ 상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인상적인 건축 재료가 떠올랐다. 거울로 된 건물 외벽이다. 야외에 설치된 이고르 미토라이의 ‘Torso di ikaro’를 건물이 반사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고르 미토라이는 폴란드에서 문화공로훈장상을 받은, 생전에도 유명한 조각가다. 그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완벽한 인간상을 신화적 요소와 결합해 다소 파괴적이며 불완전한 형상으로 강렬한 주목성을 띈다. 이 조각은 박 관장이 함부르크에서 컬렉션한 작품이다. 우연히 몰타에서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는데 인상적인 스토리와 남성적인 힘이 느껴졌다고 한다. 작품 내용은 하늘을 날고자 했던 다이달로스(Daedalus)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Icarus)에 관한 신화 이야기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가 감옥에서 탈출할 때 날개를 달아주면서 태양에 가깝게 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아들이 아버지 말을 어긴 끝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과한 욕심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 관장은 이런 내용의 조각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고, 그 결과 자연을 품을 수 있는 거울에 비치도록 했다.
서울에서 쉽게 관람할 수 없는 샤갈의 작품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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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인 전시기획과 컬렉션,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온 강화도의 터. 해든뮤지엄은 보다 많은 사람과 문화예술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결합해 사적인 컬렉션을 공공의 공간에서 다수의 사람이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해든뮤지엄은 2013년 개관특별전 ‘현대미술의 거장전’에 이어 2014년 ‘시대와 감성-한국 미술의 내일을 열다’, ‘샤갈-신비로운 색채의 마술사 2019 기획전Ⅱ’, ‘팝아트전’, ‘김경민 조각전’ 등 꾸준히 전시를 열고 있다. 2019년 팝아트전에 출품된 작가들은 제프 쿤스, 요시토모 나라, 줄리안 오피, 로버트 인디애나,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이리히텐슈타인, 로버트 인디애나, 데이비드 호크니, 톰 웨셀만, 발레리오 아다미 등 총 51명이었다. 20세기 이후 대중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현대미술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대형 전시였다. 뮤지엄 전시장 입구에서 로버트 인디애나의 평면 대작과 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LOVE’조각도 건물에 설치돼 있다.
현재 전시 중인 개관 10주년 기념 ‘환상의 나래를 펴다 - 샤갈 재조명전’은 서울에서도 쉽게 관람할 수 없는 샤갈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제까지 해든뮤지엄의 전시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준비했다. ‘에콜 드 파리’, 파리에 거주하던 이방인 예술가들을 일컫던 말이다. 몽환적 색채와 자유로운 화면 구성으로 표현했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 그의 작품에서는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의 정신뿐만 아니라 러시아 예술 전통과 유대 신비주의의 깊이까지 찾아볼 수 있다.” 전시는 페인팅, 드로잉, 석판화, 에칭, 일러스트 북 등 원화 4점과 오리지널 판화 54점, 희귀본 삽화집 2권으로 구성돼 있다.
문화예술 교육의 복합 공간 기능도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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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장은 샤갈 작품이 무엇보다 환상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샤갈은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는데, 가르니에 극장 천장화를 그리며 이를 극복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작품 곳곳에 녹여냈다. 전시된 오리지널 4점 중 1969년 [La mariée au cheval mauve original]은 마르크 샤갈과 바바 샤갈의 유산에서 직접 나온 귀한 작품이다. 이를 포함해 신부가 소재인 작품들에는 풍경이 자주 등장하는데, 고향에 대한 샤갈의 추억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샤갈은 행복과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자주 그렸으며 이 작품 또한 결혼에 대한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다.
해든뮤지엄은 전시 외에 교육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준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증축된 교육관에는 방음시설과 스크린, 프로젝터가 구비된 144석의 강당이 있어 대규모 강연, 공연, 창작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강당은 슬라이딩 도어로 2개의 강의실로 분리해 사용할 수도 있다. 교육관의 강당과 전시관 내의 세미나실(92석, 프로젝터, 스크린, 음향시설)까지 사용하면 수용할 수 있는 총인원은 250명이 넘는다. 기업 연수와 청소년 단체, 성인 단체 워크숍 진행이 가능하며 요청에 따라 특강이 제공되기도 한다. 박 관장은 해든뮤지엄을 문화예술 교육의 복합 공간으로서의 기능은 물론 자연 속에 아름다운 공간을 창출해낸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한국일보에서 주최하고 미래창조과학부에서 후원하는 ‘2014년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관장은 현재 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역 문화 향유·발전과 개인의 미술품을 공공화하는 사립미술관을 위해 국가사업,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립미술관은 개인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많아서 지원사업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미술관 간 편차가 많아서(규모·시설 등) 국가 지원을 통해서 어느 정도 배분, 기회 균등 등 국가 지원 및 지자체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미술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컬렉터로서 갤러리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관을 경영하고 있는 박 관장은 아무리 봐도 70대처럼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청춘의 모습이었다.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은 동양 미학 박사를 70살에 받은 저력, 양질의 컬렉션을 문화 소외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뚝심, 경외와 쇄락을 넘나들며 탄탄한 동양 미학을 실천하는 전문가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