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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무장하는 중국 상하이 / 슈퍼 컬렉터들의 작품을 만나다

정영숙




▎선라인그룹 회장 류이첸·왕웨이 부부의 열정이 녹아있는 거대한 롱미술관 내부. 롱미술관은 한·중·일 최고의 작품을 컬렉션하고 있다.

연초에 상하이에서 ‘미술 컬렉션의 즐거움’을 주제로 특강을 하게 됐다. 한국인 사업가가 운영하는 갤러리였고,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한인 교포들과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참석해 갤러리를 꽉 채웠다. 대부분은 한인 타운에서 사업을 하는 분들이었고, 상하이문화원 직원, 갤러리 컬렉터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여러 친목 모임의 구성원들이었다. 경제 성장으로 미술에 관심을 갖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평범한 중산층과 일반인들까지 휴일 오후에 미술 특강을 듣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최근 중국 정부의 부패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로 규제가 강화돼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자 중국 내 현대미술의 영역을 컬렉션하는 기업과 개인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미술 시장에서 루샹(儒商)들로 통하는데, 주로 ‘보관형 재물’에 투자하는 계층이다.

중국미술 시장을 세계화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중국 정부는 태양열·생명공학·화학산업을 지원하듯 미술품 시장 역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국가는 두 거대 옥션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베이징과 상하이에 예술지구를 설치하고 지방에도 많은 박물관을 짓고 있다. 대부분 국가 소유인 은행·전력·보험 회사들도 중국 예술작품들을 구입한다. 그 밑바닥에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중이 깔려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서비스 사회로 변화하려면 노동자와 농부들이 유쾌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미술품도 다른 상품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상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라고 베른하르트 찬트 <슈피겔> 기자는 언급했었다. 슈피겔 기자의 전망처럼 중국이 앞으로도 세계 미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중국 부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미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강의가 끝난 뒤 고층건물이 즐비한 메가로폴리스인 상하이의 명소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서울 청담동 한류스타 거리와 한·중 명품거리협회 MOU를 체결한 상하이 화이하이루 거리, 널리 알려진 황푸강과 건너편의 월스트리트가, 주상하이 한국문화원 주변을 중심으로 밀집한 쇼핑타운과 미술관, 역사적인 명소를 다녀보고 상하이의 발전상을 체험할 수 있었다. 뉴욕 월스트리트 한복판을 연상하게 하는 고층빌딩마다 관공서와 기업체들이 입주해있고,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초대형 식당, 명품을 소비하는 쇼핑 공간, 최고급의 마사지 샵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초현대적인 도심에 최근 경제성장으로 한껏 여유를 누리게 된 중국 부호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미술품이 어떻게 조응할 수 있을까?

애드리언 쳉의 K11 미디어 달리전 시선 집중


▎애드리언 쳉의 ‘K11’에서 전시되고 있는 미디어 달리전. 달리가 살아나온 듯 눈길을 집중시키는 디스플레이에 놀라게 된다.

의문을 풀어줄 해답으로 상하이의 수퍼컬렉터들과 연관된 특별한 2개의 공간을 소개한다. 첫 번째가 ‘K11’과 ‘K11 파운데이션(Faundation)’이다. 미술품이 다른 상품과 차별화되고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안으로 홍콩에 이어 상하이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애드리언 쳉 (Adrian Cheng)은 30대 중반으로 홍콩 최대 부동산·유통 기업인 뉴월드(New World)그룹의 3세 경영인이다. 예술 분야로는 예술재단인 ‘K11아트파운데이션(KAF)’을 설립해 회장으로 활동중이며, 한중 문화교류에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세계적인 슈퍼컬렉터인 그는 문화예술을 사업에 녹여내 비즈니스화하고 후원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정신이 발휘되는 곳이 K11이다. 홍콩에 처음 세워졌고 상하이, 베이징으로 확장되었다. K11은 예술, 자연, 문화가 트라이앵글로 교집합 되는 문화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지점으로 해석된다. K11 Museum에서는 현재 ‘Media Dali’ 전이 한창이다. 미디어 달리전이라고 하지만 원작은 10여 점 내외에 불과하고 대부분 잡지나 신문 등에 기사화된 자료들이다. 기존에 달리전을 국내외 여러 뮤지엄에서 접해봤다면 밋밋해서 지나칠 수 있는 전시다. 필자 또한 파리와 런던, 국내에서 이미 몇 차례 달리 전시회를 봤기 때문에 큰 호기심 없이 입장했다. 하지만 입장한 순간부터 필자는 눈길을 떼지 못했다.

달리의 수 많은 출판자료 그 자체가 대작이었다. 그 자료의 귀중함을 간파하고 기획부터 전시준비-프로모션- 관람객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정성을 다한 전시였다. 달리는 편집광적인 집착과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기질의 분출과 끊임없이 괴롭히는 환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창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면상태에서도 이미지가 떠오른 그리기를 반복했고, 지칠 줄 모르고 창작에 매진한 예술가였다. 필자는 그런 달리의 정신을 전시 중에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은 그가 영원히 사랑한 부인 갈라처럼 비타민 같은 디스플레이가 펼쳐졌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콧수염을 살짝 건드리며, K11에 잉크를 보냈을 것이다. 전시장의 디스플레이는 미디어와 원작을 이어주고 작품의 본질과 특성을 잘 파악했다. 지하 3층이라 천정도 낮고 공간도 200평 정도로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스플레이는 아름다웠다. 절제된 색과 과도하지 않는 디스플레이 소품들은 원작과 미디어 자료들을 감싸 안으며 관람객을 맞이했다. 백화점 입구에는 달리 작품을 상징하는 유기적인 시계 조각과 거미조각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든 층마다 달리의 작품들이 인테리어와 시각디자인, 아트상품 코너 등 매장 곳곳에 스며 들어 있었다.

쇼핑센터 주요 동선마다 작품 배치 인상적


▎동선을 따라 요소요소에 작품들이 적절하게 설치되어 있다. 상하이 롱미술관 내부(왼쪽)와 K11이 입주한 백화점 통로의 조각 작품(오른쪽).

만족한 전시를 관람한 후 백화점 곳곳에 설치된 다른 작품들로 자리를 옮겼다. ‘아트스테이지 월 프로젝트’는 통로에 구성되어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게 위치해 있고, 중앙에 편안한 의자로 비치해서 어린아이와 쇼핑하는 부모들이 애용하고 있었다. 각 층별로 제법 큰 조각작품들이 각 층의 성격에 맞게 설치되어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굳이 미술관에 들어가서 관람하지 않아도 쇼핑하는 길에 흘깃 볼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잘 정리된 작품설명서와 QR코드가 있어 관심 있는 작품을 면밀하게 정보를 접하게 해놓았다.

레코드 삽과 식품관, 식당가 등 쇼핑객들이 이동하는 통로 요소요소에 작품들이 적절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예술 접근성이 일상과 다르지 않음을 그 곳에 들어가면 알게 된다. 지난해 여름, 호텔 에클라 베이징 쇼핑몰에서 대형 살바도르 달리의 조각, 앤디 워홀 , 유명작가들의 미술작품과 조각작품들이 호텔 군데군데 전시되어 있었던 강한 인상의 연장이다. 호텔 로비부터 층별 복도, 각 룸마다 주제가 다르게 구성되어 조각과 회화가 즐비했었다. 중국 현대미술은 맛있는 음식점이 늘어나듯이 무섭게 중국인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국내에도 멀티 복합쇼핑센터가 서울과 중소도시로 확장되고 있지만 중국과 달리 예술이 없다. 딱 영화관 입점까지만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상하이의 탐방공간은 롱미술관(龍美術館)이다. 지난 12월에 이슈가 되었던 미국 뉴욕 경매에서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Nu Couche)’를 2000억원에 낙찰받은 부호는 선라인(Sunline)그룹 회장 류이첸(劉益謙)· 왕웨이(王薇) 부부이다. 류이첸이 골동품과 고미술을 주로 컬렉션 한다면, 왕웨이는 근현대미술을 중심으로 100억 이상의 금액도 서슴없이 컬렉션하는 하이슈퍼켈렉터이다. 그녀의 컬렉션에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서울옥션 홍콩에서 김환기 작품을 최고가인 47억원에 낙찰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2014년 세워진 ‘Long Museum West Bund Gallery 1’의 메인 전시 큐레이팅은 일본 큐레이터로 ‘Breaking through to the actual via the imagination - Long museum collection show concept’전이다. 김환기 작품의 경우 기존에 컬렉션한 1954년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고, 더구나 그 작품이 도록 표지라서 더 반가웠다. 탁월한 컬렉터인 왕웨이 여사의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디스플레이, 하드웨어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니 아무래도 인공호수 같은 느낌을 피하지 못했다. 전시벽면의 일부를 통 유리로 설치해서 공간을 넓게 보이게 유도했으나 작품 감상에 몰입하는데 방해되었다. 작가들의 작품도 일본작가들에 치우쳤다.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모토 나라, 구사마 야요이 등 크고, 수량이 많은 작품들이 배치된 후에 요즘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는 단색화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은 10점 남짓에 불과했다. 허전한 마음으로 세면실에 들렀다가 뜻밖에 국내 신미경 작가의 비누로 만든 관음보살상이 세면대 옆에 설치되어 있었다. 왕웨이 여사가 롱미술관 설립 전에 리움미술관을 벤치마킹 했다고 하던데 서울 한남동 리움 세면실에 설치되었던 신 작가의 작품을 염두에 두었던듯 하다. 작품 설명서와 QR코드를 보니 학고재 상하이 지점에 같은 시기에 전시중인 신미경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K11과 롱미술관 전시를 보면서 거대한 나라 중국의 양면을 보게 됐다. 세계적인 부호로 엄청난 금액의 미술품을 거침없이 소장하고, 320억원짜리 명나라 때 찻잔을 경매로 낙찰 받아 호기스럽게 차를 마시는 류이첸 컬렉터의 대담함에 반했고, 한중일 최고의 작품을 컬렉션한 규모에 놀랐지만 한편으로 과시적인 측면이 강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도 있었다. 규모에 비해 짜임새가 없다는 점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많은 미술관으로 비추어졌다.

리움 미술관을 벤치마킹한 거대한 롱미술관

이에 반해 K11은 문화예술을 기업이익과 예술가를 후원하는 사이클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전시를 관람하고 쇼핑 동선을 걸으며 느낄 수 있었다. 애드리언 쳉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주요 작가의 작품에서부터 중국작가를 중심으로 컬렉션하고, 한국의 작가들과도 친분을 갖고 작품을 컬렉션하는 인물이다. K11 재단에서는 50명의 아티스트를 양성하고 있고, 아티스트의 전세계의 플랫폼을 형성에 적극 후원 중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처럼 관람객들은 예술을 생활 속에서 즐기고 체험하고 부자와 서민이 좋은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예술의 민주화에 앞장서면 된다.

중국의 슈퍼컬렉터는 두 자리 숫자에 이른다. 소더비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정물, 데이지와 양귀비 꽃병’을 672억원에 낙찰 받은 중국 영화계의 거물 왕중쥔 화이브라더스 회장도 있고, 크리스티 경매에서 피카소의 ‘클로드와 비둘기’를 326억원에 낙찰 받은 부동사 분야의 갑부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도 있다. 중국 화가들에 집중적으로 컬렉션해서 중국 현대화가 저우예성 작가의 ‘춘풍함소’를 20억원에 매입했다. 또한 롱미술관처럼 수퍼컬렉터가 오픈한 푸둥의 히말라야 미술관이 있다. 이 외에도 상하이 외에 중국의 주요 도시에는 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세워지고 있어서 고미술과 현대미술에 대한 수요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낙관하고 있다.

중국의 미술 컬렉션이 개인의 부의 과시나 투자만이 아닌,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 나라와 지역문화에 기여할 때 엄청난 금액의 컬렉션은 졸부의 자랑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 슈퍼컬렉터 다키스 요아누(Dakis Joannou)는 “나는 권력이 아니라 관계를 원한다”는 한마디 말로 오랜 컬렉션의 경험을 남겼다. 예술가와 컬렉터, 그리고 컬렉터와 미술전문가의 관계가 신뢰로 이어질 때 공공재인 미술품은 관람객과 쇼핑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이어주는 발아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글·사진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문화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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