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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 유한한 아름다움

정영숙

김기태

유한한 아름다움 

 

그곳은 사람들이 머물다간

흔적인 풍경으로대체되어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정영숙 문화예술학 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갤러리세인 대표



UnknownArtist-Mar 3rd 14(Mixed Media on Canvas. 91X73cm. 2014      

작은 숲길을 걷는다. 지난해 핀 산수국은 마른 꽃으로 자리하고 그 곁에 올해의 꽃이 피어난다. 대나무과의 여린 무성한 풀들은 몇 가지만 나무로 자리를 잡아 푸른 잎을 키운다. 그 숲의 꽃과 나무들은 기억으로 존재한다. 바람과 공기까지도 시간의 층으로 침잠한다. 이 봄에 걷는 그 숲은 기억이 켜켜이 쌓이며 또 다른 풍경으로 자리한다.

김기태의 ‘작자미상(Unknown Artist)'시리즈 신작에서 그 숲의 체취를 언 듯 감지한다. 필자가 걸었던 그 숲이 아니겠지만 미묘한 감정의 연결선이 작동 한다. 어느 날 그 호수, 그 산길, 그 언덕, 그 들판에 필자가 있었던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작품에는 누군가 살았을 것 같은 집, 도로, 논과 밭만 있을 뿐 그리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철저하게 풍경 중심의 포커스이고 그 풍경 또한 대체로 알려진 산, 호수가 아닌 어느 산 자락의 파편, 어느 호수의 파편, 어느 사막의 파편이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파편 형식은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 공간, 침묵을 지목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명예로운 데가 있다. 또한 뭔가 소실되었기 때문에 파편이 된다. 그래서 사진이 파편의 형식으로 나온다고 생각한다”라고 그의 저서 [사진의 관하여]를 조너던 콧과 대화 중 언급했다.

김기태는 도로에서도 한 참 벗어난 비포장 길에 차를 세우고 1시간 이상을 걷는다. 거의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서 주변을 바라본다. 무성한 숲, 아니면 황량한 사막의 중심에서 낯설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리고 셔터를 누른다. 인간의 터전 밖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삶의 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작가는 그 지점, 그 파편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너무도 짧아서 찬란하고 오히려 매력적인... “어떤 그런 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순간적인 바람이라든지 지나가는 숨소리, 누군가 지나갔을 때 체취, 제스처, 사건 이런 것들을 장소가 기억한다. 레코드판에 곡에 담아서 어떤 조건이 있을 때 음악이 들리듯이. 나는 그 느낌을 빛으로 표현한다.” 라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작품 제작방식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 위에 페인팅을 한다. 작가가 원했던 존재론적 표현을 담아내는데 용이한 사진의 매력에 빠졌고, 특히 흑백사진을 먼저 공부하며 연구하였다. 그리고 대학에서 전공한 회화, 페인터라는 것은 익숙한 도구였기에 배운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두가지를 접목하는 방식, 즉 재료와 기법이 다른 장르를 결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는 무엇보다 작품 주제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방식이고 스트레이트 포토가 의식의 세계라면, 회화는 무의식의 세계를 전달하는 매체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한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의 사이, 그 틈, 그 경계면에 있는 것이 내 작품의 이미지가 아닌가?”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두 방식을 당분간은 지속하고 싶은 작가는 ‘작자미상’시리즈로 “극화(Dramatiaztion)'한 내용 중 이런 장면이 있다.
 
“ 푸르고 높은 하늘 아래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럽던 어느 날, 작은 언덕을 지나 보일 듯 말듯한 작은 개울이 무성한 풀숲 사이로 지나가는 그 길가에는 그리 크지 않은 나무 한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인적이 뜸한 이곳은 나름 소풍 나오기에 좋아 보이는 그런 풀밭과 그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으리라. 어쩌면 오래 전 어느 사랑하는 연인이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였으며, 또는 먼 길 가던 여행자들은 이 그늘에서 잠시 땀을 식히곤 했을 지도 모른다. 또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저 너머 들판에서 벌어진 어느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도망친 한 병사는 이 그늘에서 떠나온 집을 그리워하며 가쁜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그들의 달콤했던 속삭임, 지친 땀 냄새와 한숨,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눈으로 허공에 마지막 손짓을 남겨 놓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들이 남긴 그 흔적들은 마치 그들의 아름다웠던 나날들을 보여주기나 하려는 듯 부드럽게 일렁이며 빛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저 멀리 그날의 하늘 속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시간은 사진을 변화시킨다. 김기태 작가는 영민한 이성과 예민한 감성으로 모든 풍경을 변화시키는 시간을 사진으로 담는다. 그 후 사진위에 그려진 그림은 한 순간의 아름다운 빛을 우리가 살았던 그 풍경에 대입하여 연약한 인간의 순수성으로 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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