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박방영 / 자연과 인간을 '일획'의 활력에 담다

정영숙

동양화가 박방영

자연과 인간을 ‘일획’의 활력에 담다


평등한 자연에 유려한 글씨가 화룡점정 되는 특유의 작품세계···

온라인에선 인간미 넘치는 이모티콘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도


정영숙 문화예술학 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갤러리세인 대표


 박방영은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동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그동안 20여회의 개인전을 연 중견화가다. 1985년에 실험미술단체 난지도 창립전을 시작으로 회화와 설치, 그리고 퍼포먼스 등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국내외에서 회화로 참가한 초대전도 100회가 넘는다. 2006년 세계생명문화포럼과 2010년 G20 정상회의 갈라쇼에서는 퍼포먼스로 주목받기도 했다. 탄탄한 인물화와 극사실적인 소나무 그림에 탁월하다. 서예에 능숙하여 글씨와 그림이 혼용된 작품을 즉흥적으로 완성하는 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두바이대사관, 제주현대미술관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박 작가의 작업실은 경기도 파주의 한적한 시골마을의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웅장함이 느껴지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주변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꽃·풀들이 가을 색을 입을 채비를 하고 있다. 찬찬히 살펴보니 초가을에만 피는 파피루스, 부추 꽃 등이 잔잔하고 곱게 피었다. 실내에 들어서자 거실과 연결된 작업실이 있다. 대형 유리창으로 보니 정원의 풍경 너머로 먼 산자락까지 눈에 들어온다.

작가가 붓을 들고 창 밖을 유심히 바라보는 듯하더니 화선지에 쓱쓱 선을 긋는다. 이내 하얀 화선지의 정원 위에 파피루스가 자라나고, 부추 꽃이 피어 난다. 소나무 가지 위에 새들이 앉고, 그 아래에 새끼호랑이도 한 마리 쉬고 있다. 나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꽃향기가 머문다. 그는 ‘화기천지(花氣天地)’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 의미를 물었더니 그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들어 설명한다.


화기천지(花氣天地), 자연과 그림과 글씨의 어울림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나아가 세속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에 지배당하지 않는 천지본연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삶의 과정을 표현하는 조형작업과 천기적 요소로서 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서법의 빠른 필치로 작업한다. 무법이 법이라는 석도의 일획론(一劃論)과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왜 들풀과 들꽃을 많이 그리느냐”고 물었더니 “세상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화기천기 마음이 필요하다. 슬픔을 극복하고 한을 풀어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 산들풀 꽃의 길이다”고 했다. 그의 ‘화기천기’는 들풀과 들꽃이 만발한 광활한 대지다. 큰 꽃과 작은 꽃, 식물의 크고 작음의 경계가 없고 원근법을 배제한 채 일직선으로 병렬시킨 평면적 구성이 이채롭다. 모든 존재의 평등함을 드러내듯이 서로가 당당한 모습이다. 경쾌하고 리듬감을 느끼게 하는 붓 터치에서 그 특유의 필력이 느껴진다. 그가 그림과 함께 화선지에 담은 한시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世人看花色, 吾獨看花氣 (세인간화색, 오독간화기)’. 그는 “세상 사람은 꽃의 색깔을 즐기나 나는 꽃의 향기(기운)를 즐긴다”라고 설명했다. 꽃도 사람처럼 기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등한 생명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작가는 활기찬 생명의 기운을 화기천지에 담아낸다. “나의 작업은 필법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예가 회화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지배층인 문인들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데 서예가 회화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작업 또한 서예 필법으로 내면에서 분출되는 힘을 사용해서 순간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거침없는 붓놀림, 이를 뒷받침해주는 서예는 언제부터 익힌 것일까? 작가는 전북 부안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 때까지 생활했다. 초등학교 가는 길은 작은 산을 넘어서 가야 했고, 성황산의 돌벽에 옛날 시인 묵객들이 새겨놓은 한시를 보고 ‘참 잘 썼다’고 감탄하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부터 몰락한 양반집 자제가 가르치는 서당에서 천자문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훈장 선생님의 칭찬을 자주 들어서인지 한자 공부에 흥미를 느꼈다. 글솜씨도 좋아 중학교 2학년 때에 이기만 선생(신석정 선생의 수제자)의 권유로 신석정 선생의 추도문을 썼다. 고등학교 때는 전국서예 대전에서 최고상을 받는 등 서예와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너에게> 550x450cm, 천위에 혼합재료,2013. 

살아서 꿈틀대는 듯한 붓터치로 사람과 동물, 글자를 표현했다.

그 만의 독창성 드러내는 ‘상형일기’


어린 시절 한자를 배우고 서예를 익힌 경험은 작가생활을 하면서 다른 작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인 조형작업을 이끌어내는 자양분이 되었다. 요즘에는 동양화를 전공한 학생이나 작가라 하더라도 서예를 능숙하게 쓰거나 한시를 술술 적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는 단련된 필치로 추상에 가까운 서법도 자유자재로 구현할뿐더러 옛 문인화처럼 그림을 그린 화선지 한 면에 한시를 자유롭게 써넣는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오토매틱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그는 탄탄한 붓놀림으로 서예의 모든 서체를 넘나들며 작품에 따라 강약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가 지난봄에 부안과 변산반도 주변을 답사하면서 작업해놓은 그림을 보여줬다. 그림과 글씨가 혼용된 것들이다. “그림 일기인가요?” 부안답사기를 엮은 것으로 그는 작품집을 “상형일기”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이야기 발전과정을 서술해가는 연작그림을 중국에서는 연환화(連環畫)라 한다. 박 작가의 상형일기는 상형문자와 그림으로 그리는 일기이다. 이 일기는 작가가 세상을 보는 감각과 경험을 통해 문자와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선택된 이미지는 작가의 손을 통해 일상적 표현이 아닌 새로운 이미지, 혹은 암각화의 기호처럼 표현된다. 넓은 들과 산, 그리고 바다를 끼고 있는 부안은 천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작가는 부안의 명소인 월명암 ·개암사 ·내소사 등 문화 유적과 문화인들의 흔적을 답사한 후 부안답사기 연작을 완성했다. 답사한 장소와 교통수단, 동행인,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각지의 풍경과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가 암호를 해석하듯 풀어주는 상형일기의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동네 한가운데에 붙여 놓은 새마을 간판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당시 그림 잘 그리고 글씨 잘 쓰는 어른들도 있었을 테지만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최근에 그리는 상형일기를 보니 그 시절의 경험이 축적돼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중국의 장자제(張家界)와 구이린(桂林) 기행을 다녀와서 장가계 기행도의 작업도 진행중이다. 그는 “요즘 작업은 일기다. 마치 벽화에 그림·글씨를 표현하듯이 모필의 힘으로 강약을 조정하고 그리고 자동기술법(Automatism)으로 나오는 내면의 힘을 이끌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예술은 상업적인 것을 배제할 수 없지만 생활 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것을 공유하면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2

1 <대어 낚고> 45x37.5cm, 2012. 물고기는 기독교에서는 '거듭나는 사람', 불교에서는 '탈하는 사람'을 뜻한다.

2 <부안답사일기> 135x118cm, 한지위 혼합재료, 2014. 고향 부안의 역사유적지를 다니면서 느낀 감상을 그림과 글로 표현.

특유의 이모티콘으로 타인과 즐거움을 공유


최근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이나 SNS를 이용할 때 문자와 이모티콘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한다. 박 작가는 특유의 이모티콘은 선보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낸다. 그의 필력을 바탕으로 먹의 농담과 인물의 특징이 요즘 유행하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의 맛을 듬뿍 느끼게 한다. 새로운 이모티콘 작업에 대해 그는 “마음의 감정과 현재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표현해내고 마음 밑에 깔려있는 재치와 유머를 끌어 올려 표현하고 즐기는 맛이 그만이다”고 웃는다.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아이패드로 매일 꽃그림을 그려서 지인들에게 꽃을 선물하듯이 작가는 지인들에게 매일 주변 사람들에게 작가만의 이모티콘을 선물하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으로 표현된 함축적인 메시지와 유머가 스며있는 이모티콘은 받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기는 듯하다. 작가가 앞서 말한 예술의 일상화, 일상에서의 예술을 즐기고 공유하고자하는 풀뿌리 예술의 실천이다. 조선시대의 화가들 중에는 경사를 앞둔 지인이 찾아오면 좋은 글과 그림을 그려주고, 여름에는 부채에 그림을 그려 선물하고, 새해에는 연하장으로 복을 기원했듯이 작가는 다양한 이모티콘을 지인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일상의 잔잔한 즐거움을 재치 있게 나누는 것이다.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주요한 조형 기호는 인체와 말, 활, 물고기 등이다. 인체의 형상은 사람이 중심인 우주를 표현한 것이다. 박 작가는 “사람의 형태가 갖고 있는 글자체와 운동신경이 매력적이고 사람 또한 몸과 정신이 일체화되기 때문에 몸 안의 정신을 담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실에도 말 조각과 말 그림이 걸려 있다. 그 작품 속의 말의 의미가 궁금했다. 박 작가는 “ 어린 시절 집 앞에 마부가 있어서 말을 많이 보고 자랐다. 자연스럽게 작품에 말이 그려지면서 나중에는 이상향을 향해 전진하는 천마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목표를 향해 힘차고 날렵하게 달리는 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지난해 그가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로 활동할 당시 그곳 전시공간에 설치된 대작을 본적이 있다. 작품속의 자유분방한 선과 강력한 필력은 원초적인 생명을 이끌어내는 원초적인 힘을 느끼게 했다. 그 당시 그가 스마트폰으로 보여준 작품은 한시와 인물 드로잉이 중심이 된 것이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이라는 것이 있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나는 장다첸(張大千)과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길고 부드러운 모필을 손에 쥐고 소매를 썩 걷어 올려 일필 획도 마음 가는대로 편안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 그림들을 다 그린 다음에는 다시 한 번 그 붓을 들어 화폭 한 구석에 정감어린 시를 유려하게 적고 싶다.” 피카소가 다음 생에서 꿈꾸었던 그림이 현재의 박 작가의 작업이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고 작업하는 작가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화선지 위, 먹이 마르기 전에 순식간에 이어지는 작가의 글과 그림으로 수십 개의 화선지가 주변에 흩어졌다.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는 일필휘지의 붓놀림이 그만의 작품세계를 일구고 있다. 


월간중앙 10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