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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윤 / 미술너머에서 미술을 통찰하다

정영숙

퓨전동양화의 기수 홍지윤

미술너머에서 미술을 통찰하다


시와 그림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다중매체 활용해

동양의 사유(思惟)를 확대해가는 모험가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홍지윤(44)의 작업실은 서울 도심인 원효로의 한 주택가에 있다. 대로변에서 한 블록만 안쪽으로 조용한 골목길에 있는 집인데, 바로 초입에서 큰 간판이 있는 주택이 보인다. 그 간판은 작가의 작품 <인생은 아름다워> 시리즈 중 꽃의 이미지를 클로즈업한 것이었다. 대문을 열고 아담한 정원을 지나 작업실로 들어서자 벽면 곳곳에 드로잉 작품들이 놓여 있다. 드로잉과 함께 이면지나 원고지에 글을 써놓은 메모들도 눈에 띈다. 큰 기둥에는 ‘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란 글이, 화장실 입구에는 ‘사랑가’의 한 대목인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 붙어 있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입구 벽면에도 원고지 두 장에다 자작시(‘움직이는 정원’)를 써 붙여 놓았다. 시를 지어 그림으로 그리고 이를 설치와 영상으로 확장해가는 홍 작가의 작품 세계가 작업실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시(詩)와 글자가 그림이다


홍지윤은 퓨전동양화가라고 불린다.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박사과정을 졸업한 그는 대학 강단에서 동양화론과 실기디자인론을 강의했고, 2002년에는 디자인정글아카데미에서 ‘홍지윤의 퓨전동양화’를 가르쳤다. 강의를 맡은 것은, 디자이너들과 동양화 비전공자들에게 동양화의 핵심인 '글씨와 그림의 근원은 같다'라는 의미의 ‘서화동원(書畵同源)’의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 독특한 강의는 편지글, 시, 노랫말 등을 동양화 붓으로 쓰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즘에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를 오래전부터 시도해온 것이다. 작가는 물론 화선지에 모필(毛筆)로 자작시를 쓰는 작업방식에도 익숙하다. 유년시절부터 일기와 편지쓰기를 좋아했고, 동양화를 전공한 이후부터는 일반 종이에 쓴 글씨를 화선지로 옮겨 모필로 쓰고, 이를 그리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작업들을 묶어 2003년에 <화선지 위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수묵화시집을 출간했다.


동양화의 화론육법(畵論六法) 중에 ‘골법용필(骨法用筆)’이 있다. 안정된 선으로 대상 골격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붓놀림에 관한 기법이다. 이는 반드시 모필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 그는 이에 대해 “자연의 재료인 모필을 사용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며, 물과 먹을 담은 털이 글씨와 그림을 쓰고 그린다는 면에서 관능적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모필은 작가의 직관과 감각을 유동적인 선으로 담아내는데 탁월한 재료였다. 그래서 작가는 캔버스에 아크릴 컬러를 사용한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그릴 때도, 수묵화를 그릴 때는 커다란 모필을 들고 물감에 물을 섞어 사용했다. 동양화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을까? 어릴적에 수채화를 잘 그렸던 그에게 대학입시를 지도하던 미술선생님이 동양화를 추천해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원에서는 ‘현대수묵화(水墨畵)운동’을 이끌었던 스승에게서 ‘물처럼 유연하게 살아가는 삶을 알게 하는 수묵의 동양적인 특성’을 배웠다. 작가는 “수묵은 동양적인 사유체계를 삶의 태도로 삼게 하고 내 작품의 형식적 기반이 되는 큰 역할을 했다. 수묵은 모필을 사용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것이 내 작품에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라고 말했다.


홍지윤은 이후 수묵과 담채(淡彩)로만 이루어진 전통적 수묵화 방식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2003년 개인전<움직이는 사유, ‘큰새 붕(鵬)’>에서는 자작시를 중심으로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영상작업을 소개했다. 당시에는 동양화 작가가 미디어 작업을 하는 경우가 없을 때여서 개인전 발표 2년 전에 ‘연세 디지털 헐리우드’ 과정을 수강하며 영상기술을 별도로 배웠다고 했다. 작가의 홈페이지에 저장돼 있는 당시 영상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사유, ‘큰새 붕(鵬)’>은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등장하는 대붕을 주제삼아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은유한 것이다. 이 작품은 5편의 자작시로 구성돼 있는데, 에피소드 1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에서 시작돼 에피소드 5 ‘고독(삶)의 상자에서 나오다’로 마무리된다. 수묵 추상회화를 배경으로 천천히 비상하는 움직이는 붕새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800여 장의 이미지가 영화 필름처럼 연결돼 16분 분량의 영상작품으로 거듭났다. 2005년 <사계, 홍지윤의 사유-움직이는 수묵그림과 시>전시부터는 자작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그의 시와 글씨도 그림이 되었다.


홍 작가는 시와 그림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퓨전화가다. 

<꽃과 새와 나비들이 내이름을 부르네>, 21x29.7cm, 화선지, 수묵채색, 2004. 


글씨와 그림, 영상과 그래픽의 만남


2014년 1월에는 홍콩 최대 쇼핑몰인 랜드마크 노스(Landmark North)에서 초대받아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선훈카이는 매년 홍콩 국내 및 해외작가 중 1인을 선정, 작가 작품을 이용한 VIP를 위한 아트상품디자인 제작 및 공간장식 프로젝트와 함께 작가의 주요작품을 전시하는데, 한국작가로는 홍지윤이 처음으로 참가한 것이다. 홍콩의 주요언론사와 온라인미디어 등 17개 업체가 경쟁적으로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그동안 퓨전 동양화를 앞장서 개척하고 다중매체를 활용해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국내에서 진행한 수십 차례의 아트콜라보레이션(Art Collaboration) 작업이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비욘드 아티스트’(Beyond Artist)를 지향한다. 그가 아트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다. 작품의 본질을 토대로 하되, 다른 장르와 협업을 통해 미술의 영역 너머에서 미술을 통찰하기 위함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의견교류를 통한 숙련된 작업과정을 즐긴다. 그의 작품세계는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피렌체 비엔날레에서 로렌조 일 마그니피코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05년부터는 현재와 같은 다중매체를 통한 방식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방송매체에 출연, 퓨전동양화 작가로 널리 소개됐다. 2008년 <인생은 아름다워>전시회는 필자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형광색(螢光色)’으로 그려진 꽃 그림 회화작품과 꽃과 책이 어지럽게 놓인 책상 위에서 모필로 시를 쓰고 있는 영상작품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화선지에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를 넘어서서 주제를 담아 실험적인 동양화를 조형화한 작품들이었다. 그는 당시 전시회 팸플릿을 펼쳐 보이며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양적인 맥락에서 시간을 이야기하고자 한 작품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이 하나의 그림이다. 꽃잎 하나하나, 새의 깃털의 하나하나가 겹쳐 결국 꽃 한 송이, 새 하나를 이루는 것 같은, 동양적 사고에서 보는 시간을 개념화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홍지윤은 ‘세상의 모든 것은 퓨전, 새로운 퓨전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로 퓨전예술을 중요시한다. 그는 “작가로서 동양적인 사유와 회화형식으로 현대의 감수성을 표현하고 다중매체와의 융합을 추구한다”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동양적인 사유체계에 익숙한 나에게는 자연의 순환원리로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동양의 정서가 있다. 음과 양, 삶과 죽음 등 모든 구분되는 것을 융합하려 한다. 최근에 나는 그것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막힘과 분별과 대립이 없이 두루두루 통하는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의미와 거의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내 예술의 근본적 맥락이다.”


 

2014년 1월 홍콩에서 가진 아프프로젝트 장면. 

Chinese New Year Project-Landmark North Decoration View, Hong Kong.


<인생다채 Life is colorful>

Korean fashion and culture festival-한국패션협회, 국립중앙박물관. 2010.

다른 문화와의 융합 확대해가는 개척자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색동꽃’, ‘색동새’는 이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아이콘이다. 이들은 각각의 ‘색’이 모여 하나의 모티브가 된다. 그리고 활기와 기쁨을 만든다. 이는 ‘색동’이 가지고 있는 본래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특유의 인공적인 ‘형광색’으로 표현된다. 이는 각각의 색이 우주의 순환원리를 담고 있는 전통의 ‘오방색(五方色)’에 대한 현실적인 해석이다. 작가는 현대의 다중매체는 인간과 대상이 교감한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자연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작가의 작품에서 형광색의 사용은 색에 대한 전통의 사유체계와 자연에서의 ‘빛’의 색인 무지개 색, 그리고 일상과 작업을 통해 익숙해진 테크놀로지(영상과 그래픽 작업)에 의한 모니터로부터의 ‘빛’의 색을 병치하고 융합한 결과임 셈이다. 이렇듯 작업의 본질에는 동양정신과 현실의 융합을 기반으로 삼는 작가의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작업실 입구에는 그의 작품을 응용한 우산, 옷 등을 쉽게 발견할 수있다. 기업과 아트콜라보레이션을 활발하게 한 흔적도 곳곳에 눈에 띈다.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패션협회와 협업으로 패션쇼에 출품한 <Life is colorful>시리즈의 의상도 마네킹에 입혀져 있다. 패션디자이너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던 듯하다. 작가는 유년시절에 어머니의 작업실에서 다양한 색상의 천과 유럽과 일본에서 건너온 화려한 패션잡지를 보고 자랐다. 어머니는 딸이 그려온 옷을 손수 디자인해 만들어주기도 했다. 어머니와 다르게 예술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예술가적인 취향이 더욱 강했던 감성적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더 많이 물려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홍지윤의 아트프로젝트는 화장품 회사, 의류회사, 미술관 등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미술관과 갤러리 말고도 대중이 미술을 더 가까이서 만나고 공유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늘 마음을 연다. 2003년부터 기업과의 협업을 통한 융합과 대중과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펼쳐온다. 작업실 근처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도 그의 작품이 걸려있는가 하면 간판, 포장지, 인쇄물 등에서도 그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발견할 수 있다. 커피숍 입장에서는 미술작품을 커피숍에서 직접 감상하고 예술 작품으로 브랜드의 차별화를 꾀하지만, 작가도 대중에게 노출되는 곳에서 작품이 펼쳐지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


작가는 음악, 드라마, 영화, 광고, 패션 등에도 관심이 많다. “예술은 살아가는 것이며 예술가의 일상이 예술이고, 어떤 매체로 표현돼도 예술이다”고 그는 말했다. 홍지윤은 동양의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미술작품과 다른 문화를 융합하는 새로운 미술형식을 끊임없이 창조하면서 영토를 확장해가는 개척자다. 그의 ‘비욘드 아트’가 우리의 실생활과 더 가까워지길 기대한다.


월간중앙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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