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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민정 / 미디어예술가

정영숙

미디어예술가 금민정


‘영상조각’의 새 지평으로 점프

미술과 조각, 영상기술이 만나는 미디어아트...

무용 등 여타 예술과도 끊임없는 소통을 추구한다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백남준 이후 미디어아트의 발달은 하이테크놀로지의 진척과 SNS 환경에 밀접하게 연동한다. 빔 프로젝트를 흰 벽면에 투사해 가상세계(작가가 창작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기본 방식에서 건물 외벽에 영상을 투여하는 ‘미디어파사드’ 형식, 증강현실(현실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을 이용한 공공예술프로젝트 등 쉴 새 없이 진화하는 기술발달은 문화 예술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세기 이전의 그림에 21세기 풍경이 결합되는 식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현실의 풍경에 상상의 공간이 개입된 4차원 연출이 시도되는 등 미디어예술가들의 개성적인 표현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금민정 작가가 있다. 그는 영상으로 발표한 다양한 작업을 ‘영상조각’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미디어예술가다.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금호영아티스트 선정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4기),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4기)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현재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시창작공간 ‘홍은예술창작센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비어있는 사각의 공간에 문(門)이 하나 있다. 그곳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시간이 지나면 문이 볼록해진다. 잠시 후 문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반복된다. 우리가 들숨 날숨으로 숨을 쉬듯이 문도 숨을 쉬는 모양새다. 2007년께 필자가 처음 만났던 그의 작품이다. 그가 첫 개인전 ‘숨쉬는 방(Breathing Room)'이라는 주제로 시작한<Breathing 연작>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그의 핵심 테마다.


 

<LOVE> 2010년 작.

무용을 만나면서 협업 가속화


필자가 만난 그의 두 번째 작품은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감상한 ‘유연한 정물’이었다. 선택적 오브제를 서술적으로 시각화한 것으로 필자의 뇌리에 오랫동안 잔상을 남겼다. 작가의 표현방법은 그뒤 단순한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상설치.영상조각.영상안무 등 다채롭게 세분화됐다. 무용가.사운드아티스트와 협업해온 작가는 최근까지도 미술 외에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계속 시도한다.

 금 작가에 대한 옛 기억의 단상을 들춰보며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그가 입주해 있는 홍은예술창작센터는 서울시가 2011년 은평구 홍은동에 위치한 서부도로교통사업소 부지를 예술과 자연, 사람이 어우러지는 창작공간으로 리모델링해 개관한 곳이다. 다양한 영역의 예술활동과 협업이 가능하도록 마련됐는데, 특히 현대무용 예술가를 위한 무용연습실이 잘 갖춰져 있다. 그는 이곳에 입주할 때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2008년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할 때 오프닝 행사에서 무용가와 협업을 한 뒤로 적극적으로 영상안무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 작가는 자신의 영상설치작업과 무용의 극적요소를 결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실험하고 싶은 기대감으로 넘쳤다고 한다. 그런 적극성이 있었기에 창작센터에 입주하기도 망설임이 없었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홍은예술창작센터의 1층에는 무용연습실과 세미나실이 있고, 2층에 작가들의 방이 있다. 복도를 따라 1~3번째 방은 현대무용가들의 공간이다. 네 번째 방이 금 작가의 방인데, 면적은 8평 남짓으로 그리 넓지는 않지만 냉난방과 개수 시설까지 완비한 쾌적한 환경이다.

 그 방에는 잘 정돈된 작품 재료들과 완성된 소품 3~4점, 그리고 각종 영상 기자재가 정갈하게 정리돼 있었다. 영상이 주된 작업이기 때문에 보통의 화가나 조각가의 방처럼 각종 화구와 물감이 어지럽게 널려있지는 않다.

 그가 미디어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소박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에 무기를 주제로 한 영상 작업을 발표했는데 뜻밖에 평가가 좋았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무기는 평화와 부드러움, 유연한 여성성과 반대쪽에 자리하는 물건들이었다. 미사일, 폭탄 등 정치적이고 공격적인 무기라는 사물의 특성을 평화스럽고 여성스러운 개념들로 환치하고 싶었다. 그래서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이용해 무기들이 호흡하는 것처럼 만들었는데 교수님과 학과 동기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작업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예술가의 꿈도 이어가게 되었다.”


이것은 ‘생각하는 사물’이다


금 작가는 본래 조각을 전공했지만, 학부 시절부터 컴퓨터 툴을 이용하는 데 흥미가 많았다. 아니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 3D기술로 멋있게 스케치를 하고 싶은 욕심에 주변의 선배들에게 조금씩 툴의 사용법을 배우는 등 독학으로 테크닉을 익혀나갔다.

 그의 작업실 벽면에 부착된 <뒤틀린 방(Twisted Room)>은 장방형의 사각형 안쪽으로 점점 작아지는 사각형들이 나선형으로 돌아 들어가다 한가운데에는 작은 문(20cm 정도 함몰된 계단 형태의 안쪽 중앙에 있다)이 하나 있다. 바로 숨쉬는 문이다. 2006년 개인전에서 발표한 <문, 벽면, 천장> 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를 발전시켜 <숨 쉬는 벽>, <소실점 소실>, <뒤틀린 방 시리즈> 등으로 이어갔다. 그는 또 책, 잡지, 신문, 시계 등의 오브제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하이데거는 저서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예술과 철학의 관계를 논하면서 예술을 철학보다 우위에 놓고 ‘사물’을 다른 말로 ‘존재자’라면서 사물의 존재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필자는 금 작가가 선택한 사물을 도구의 특성을 벗어난 비가시적 도구로 접근해보는 측면에서 하이데거의 이론을 빗대어보았다. 그 관점에서 보면 신문을 소재로 한 금 작가의 <The Sculpture>는 뉴스가 실린 신문을 아름다운 꽃장식인 코르사주로 만든 사례다. 이는 사회적 맥락으로 사물을 관찰해 속성을 파악한 다음 그 속성을 미학적으로 분석해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그에게 흥미롭게 들었던 작품 중에 <Love 시리즈>가 있는데, 그 작품의 제작 배경은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문의 편지보다 더 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사전(辭典)에 정의 내려진 'Love'에 밑줄을 긋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낸다. 이는 오브제의 상징을 극대화한 것으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따뜻함은 심장이 꼼짝거리기도 하고 몇 마디 글자로 정의 내려진 관념을 녹여버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파티션(칸막이)의 형상을 빌린 부조식 환조다. 영상도 USB로 구동돼 간편하게 설치될 수 있어 에디션 3개 중 2개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미디어아트도 컬렉션을 하다니 미술 컬렉터의 작품 취향도 급속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업실에 있는 또 다른 작품 <꽃피는 봄이 오면>에 콘센트를 연결하니 눈앞에 영상이 펼쳐진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진 레이어로 켜켜이 붙여진 벚나무 가지 사이로 흰 눈이 내리는 영상이다. 금 작가의 기존 작품이 내부 공간에 집중된 미학적 탐구였다면 2010년부터는 외부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메라를 들고 서울 도심에서 수도권 밖까지 외부의 공간을 탐색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작품으로 옮겨진 곳이 국회의사당과 서울역의 군용철도수송사무소(RTO)였다.

 작가의 시선이 어쩌다 RTO에까지 미치게 됐을까? 전시공간을 고민하던 어느 날 그가 RTO에서 공연을 보게 됐다고 한다. 그 순간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구상 중이던 작품의 전시 장소를 정했다. 작가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오랜 시간이 축적된 흔적이 남은 특정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RTO의 건물 내벽은 1935년 건립된 이래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존돼오고 있는데, 창문 밖은 80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어 현실 공간이 움직이고 있다는 데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이곳에서 ‘장소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을 펼치고자 했다.

 

 2

1 <Abstract Breathing RTO>.2013년작.        

2 <서울역 대식당> 2013년작.LED모니터와 미디어 혼합.

새로운 기술은 창작의 원동력


그 후 금 작가의 작업은 현대무용가와 사운드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진행됐다. 작가는 우선 낡고 거친 벽면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RTO의 빈 공간과 벽면을 촬영한 후 그곳에 영상 회화를 제작했다. 칠이 조금씩 벗겨지고, 바닥에 떨어진 페인트 잔해들이 들썩거린다. 색채는 엷어지고 진해지기를 반복한다. 금 작가의 이 작품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공간의 궤적을 응축한 독특한 영상이 됐다.

 금 작가처럼 조각, 회화, 설치, 사진을 영상에 담아내는 일은 언뜻 봐도 결코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 복잡한 기술을 익혀야 가능한 일일 터이다. 작가는 모든 작업과정을 혼자서 감내하는 것일까?

 “학교 다닐 때부터 애니메이션 등 영상에 관심이 많아 신작을 진행할 때마다 필요한 컴퓨터 기술과 영상 효과를 찾아서 익혔다. 작품 활동 횟수가 늘어나면서 테크닉도 더 좋아졌다. 지금은 어지간한 기법은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적 측면에서는 자유롭다. 오히려 작품의 개념을 잡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개념에 맞는 기술을 스스로 익히고, 그래도 모르면 전문가를 찾아가서 배우기도 한다. 또 조소를 전공한 것도 3D 영상 제작에 도움을 주었다.”

 미디어아트 작가로서 그는 더 넓은 지평을 향한다. 금 작가의 끊임없는 호기심이 기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새 영상기술의 발표될 때마다 그의 눈빛은 더욱 빛난다. 최근에 새로 개발된 종이처럼 얇은 모니터, 구부러지는 모니터 등도 향후 새로 작품 소재로 쓰여질 것이 틀립없다.

이처럼 호기심 많은 작가의 관심은 내년에 또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지난 8여년 동안 영상설치, 영상안무, 영상조각을 발표하고 다른 매체와 협업했던 것을 정리하고, 지금처럼 작업했던 방식으로 탐구하며 구상하는 영상조각을 제작할 계획이다. 사진을 응용한 입체조각 방식도 다른 조형적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고, 역사적 스토리 공간도 구성하고 싶다.”

 금 작가는 국내 활동뿐만 아니라 해외 활동에도 관심을 갖고 여건이 닿는다면 국제적이면서 자신의 작업 성격과 맞는 해외체류 계획도 갖고 있다. 주목 받는 신진작가의 틀에서 벗어나 영상조각의 독보적 영역을 개척해가는 그가 국제 미술계에서도 도약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월간중앙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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