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유비호 / 내가 곧 미디어다

정영숙

뉴미디어아티스트 유비호

내가 곧 미디어다


현대인의 삶을 미학적인 언어로 담아내는 문명 관찰자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뉴미디어아트를 예술의 한 형태로 부각시켰다. 이로 인해 예술의 양상은 혁신적으로 변화한다.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국내에 알려진 시기는 1980년대다. 그 이전, 국내에서는 1977년 박현기의 작품이 비디오 아트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많은 미디어아트 작가가 국내외에서 활동한다. 표현방식도 첨단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실험적 작품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유비호는 국내 뉴미디어아트 2세대 작가에 속한다. 2000년부터 개인전과 그룹전, 프로젝트 활동등으로 '예술가의 예술적 실천을 통한 사회참여 가능성'을 시도해왔다. 첫 개인전을 통해 뉴미디어아티스트로 주목받은 그는 2001년 쌈지스페이스 아티스트스튜디오, 2004년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시 활동을 비롯해 문화체육부와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전시를 개최했다. 특히 그는 싱글채널과 비디오 퍼포먼스, 인터넷 방송 등의 뉴미디어를 활용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모색해왔다.

그의 작업실은 서울 강서구 목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다. 작업실 내부는 생경함 그 자체다. 화가난 조각가의 작업실이라면 캔버스나 이젤 또는 조성 중인 입체작품이 늘어서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 작가의 작업실에는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책과 다른 한쪽에 쌓인 종이상자, 그리고 두 개의 책상이 전부다. 한 책상에는 모니터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또 다른 빈 책상은 드로잉을 작업하는 용도인 듯했다. 그 옆으로 전시에 사용했던 오브제인 의자와 테이블이 은박지로 포장된 채 차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디어아트의 시작은 드로잉

그 작업실 전경만으로도 뉴미디어아트의 속성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작업 과정이 얼핏 그려지기도 한다. 백남준은 1965년 “언젠가는 비디오가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럼에도 드로잉은 빠질 수 없는 작업이다.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작가의 작업은 대체로 책상 위에서 이뤄진다.

유 작가가 여러 권의 드로잉북 가운데 하나를 꺼내 보인다. 거기에 드로잉을 혼용해 표현한 작품 구상이 빽빽이 담겨있었다. 작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고, 인터넷을 서핑하며 떠오르는 이미지와 내용들을 문자와 드로잉으로 담은 것들이다. 드로잉북을 보니 그의 관심 영역과 작업의 전개 방향이 대충 그려진다. 다음 작업에서는 신화가 대폭 수용될 듯 싶다. 길가메시(Gilgamesh)를 그린 드로잉이 우선 눈에 띈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미디어아트로 옮기게 될까? 이미 발표한 작품의 드로잉을 통해 그의 작업을 유추해볼 수 있다.

‘88’이라는 숫자가 뉘여 있고, 그 위에 앉은 인물을 가벼운 채색으로 표현한 드로잉이 있다. 2011년 난지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출품작을 위한 드로잉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1년 만에 완성한 ‘트윈픽스(Twin Peaks)라는 주제다.

“난지도는 산업화 시기에 도시개발 정책에 따른 많은 사연이 깃들인 공간이다. 이 작품은 난지도에 쓰레기 매립이 시작되기 전 해인 1977년부터 매립이 종료된 1992년까지의 신문기사에서 난지도 관련기사를 그러모아 이를 기본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익숙하고 낯선 감각을 양립화해 당시를 바라보는 현재의 감정을 드러내보고 싶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작품 ‘1988’을 설명했다. “1988년의 서울올림픽은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근대화를 일궈낸 최고 이벤트였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희생과 아픔이 있게 마련이다.한국의 성장기를 거쳐온 다수 한국인의 애잔한 심정을 담았다.” 그는 드로잉에서 본 ‘88’숫자를 합판과 각목으로 만들어 소리(스피커, 엠프, CD플레이어 등)를 입혀 그 의미를 표현 해냈다.

드로잉과 작품의 내레이션을 개념화해 주제를 풀어가는 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대학시절 학습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유독 책이 많다. 전공 서적은 물론이고 역사, 철학, 종교, 영화 관련 책도 여럿 눈에 띈다. 대학 때부터 관심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고, 선배들과 학술 스터디를 하고 기성작가들을 초대한 세미나를 열어 이론공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당시의 학술 스터디는 그의 작업의 개념을 구축하는 기초가 됐다. 그때 만난 <비주얼 컬쳐>라는 책은 그가 “미술인으로서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멕시코 벽화를 공부하면서 예술가의 사회참여 정신과,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유 작가는 대학 시절 영화에 푹 빠져 살았다. 하루에 세 편의 영화를 몰아 볼 정도로 비디오 대여점을 들락거렸고 대학가 영화제, 프랑스문화원을 단골로 찾았다. 영화에 대한 마니아적 관심이 그의 대학 전공 선택과 그의 작업 세계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학부 때는 회화를 전공한 그는 대학원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그는 “디지털시대로의 혁신적 삶의 변화와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른 예술창작연구를 대한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에 영감을 준 인물 가운데는 유독 영화감독이 많다. 작가주의를 고집하는 아티스트 감독들로 <토리노의 말> <사탄 탱고>의 헝가리 출신 벨라 타르 감독과 <어머니와 아들> <러시아 방주>의 러시아 출신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이 대표적이다.


1 2  

 1'1988'                                         2'황홀한 드라이브(Euphoric Drive)'                       


미디어아트로 서브토피아를 들여다보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그는 미디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점점 확장시켜왔다. 2010년에 발표한 ‘유연한 풍경Ⅰ(Flexible Landscape 1)’은 그의 이런 관심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듯하다. 특정 건물의 미니어처를 주관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오브제화해 제작해 설치한 것이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다. 영상작업은 노란색의 풍경으로 가득하고 순차적으로 기업의 로고를 배치해 스쳐 지나가게 한다. 여기에 후기산업사회의 대표적 기업 건물(SK주유소, E마트, 국민은행, 스타벅스커피, KT기지국 등)을 미니어처로 만들고 바닥에 바퀴를 부착해 유동적으로 이동시켜 배치할 수 있게 했다. 각각의 미니어처 바로 옆에는 대형화분들을 설치해 실제 도시 풍경과 상반된 이미지를 제공한다. 화분 같은 자연물은 실제 크기인 반면, 각 기업의 건물은 축소된 형식이 사회 시스템을 유쾌하게 꼬집는 블랙유머로 다가온다. 이 작품 제작의 배경에는 2008년 한국에서 일어난 두 개의 큰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송도신도시 건설과 태안반도의 기름 유출사건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거대자본과 소비자의 관계를 관찰해 시각적 은유로 형상화한 것이다. ‘황홀한 드라이브(Euphoric Drive)'는 3D 애니메이션이다. 이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서 감상한 적이 있다. 당시 유작가의 유쾌한 상상에 미소를 머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노란색 능선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화면에 다른 이미지는 보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기업의 로고만 보인다. “낯선 공간에 가더라도 자신에게 익숙한 브랜드가 있으면 친숙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감정에서 출발한 작업”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듯 매스미디어가 제시하는 허구의 현실에 그의 주관적 관점을 제시하는 작업 방식은 ‘서브토피아(Sub-topia)’의 세계다. 서브토피아란 ‘타자지향성과 상업화, 그리고 디즈니화가 도시 변두리의 일상 경관에 이식되는 것으로 목적이나 관계에 어떤 패턴도 가지지 않고 인위적인 구조물을 생각 없이 섞어 놓는 것’이다. 유 작가는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사회 시스템을 비판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주관적인 미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뉴미디어아트의 특징은 접속성, 몰입, 상호작용이다. 그의 작품에서도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접속성은 개인 혹은 시스템 사이에 일어나는 직 · 간접적인 접속으로, 인터넷의 발달로 가능해진 기술이다. 상호작용의 단편적 특징으로 그는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작동되는 범주라는 점에서 보면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반응이기 때문에 인터렉티브한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미디어아트는 예술임에도 기술에 의존함으로써 감성적 기능이 배재된 예술로 변화해가는 경향이 있다. 감성이 배제되고 그 자리를 기술로 채워 감동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작가는 “내가 작업에 활용하는 방식은 감정이입이라기보다 정해진 시스템에서 이탈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심미적 탈출 욕구”라고 설명한다.


  
'극사적실천(極私的 實踐, Extreme Private Practice)'



내 작품에 문학적 표현방식 녹여낼 것

영상작업인 2010년 작품 ‘극사적 실천(極私的 實踐, Extreme Private Practice)’은 옥상 한쪽에 한 평이 채 안되는 작은 잔디밭 위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남성이 보인다. 그가 날려버리는 플라스틱 공 안에 ‘일상탈출 매뉴얼’이 적힌 종이쪽지가 들어있다. 매뉴얼 가운데는 “불현듯 당신이 세상과 동떨어져 홀로 있다는 공포감을 느낀다면 신문을 가늘게 찢어 연결해 ‘줄’을 만들라”는 것도 있다. 다른 매뉴얼에도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하기 위한 도구를 만드는 갖가지 행위가 적혀있다. 암호 같은 이들 매뉴얼은 플라스틱 공에 담겨 남성이 휘두르는 야구방망이 끝에서 사라진다.

이처럼 사소하면서도 주관이 두드러진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방가르드 정신이 깃든 예술가들, 윌리암 모리스, 다다이스트, 플럭서스아티스트 등 일상의 소소한 행위를 예술로 승화한 선례가 있다. 마찬가지로 유 작가는 아나키즘적 관심을 아방가르드적 예술행위로 풀어가는 듯하다. 이 같은 이해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 2011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공조탈출(共助脫出, Mutual Escape)'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지식전문가에서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개인에게로, 자본의 세계화에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로, 타의에 의한 강요와 규율에서 자발적 참여에 의한 자율과 자치로, 큰 단위의 국가에서 작은 단위의 소박한 공동체로...”라고 명기해 놓았다. 작품의 퍼포먼스로는 ‘자율적 참여자들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일상에서 탈출하는 협력 퍼포먼스’를 수행했고, 워크숍으로는 ‘스스로 혹은 서로 일상에서 탈출하는 실험’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했다.

유년시절부터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학문제도 즐겨 풀었다고 회상한다. 고등학교 때는 자연스럽게 이과를 선택했고 물리학 등 과학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그 덕분에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도 어렵지 않게 미디어 매체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인문학 학습, 영화 마니아로서의 관심은 그가 뉴미디어아티스트로 성장하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

유 작가가 앞으로 추구해나갈 작업의 방향이 궁금했다. 그는 “좋은 작품은 시대를 거슬러 공감한다. 옛 가요 <타향살이>를 들으면 공감하는 부분이 크다”고 에둘러 말한다. 그는 신작을 위해 얼마전에 16mm 필름카메라를 구입했다. 그는 향후 작품들에서 영상을 문학적 표현방식으로 접근할 예정이라고 귀띔한다.

사회학자이자 시인인 심보선은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을 꿈꿔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격렬한 요동에 맞서 꿈틀거리는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의 신작이 기대된다.



'유연한 풍경l(Flexible Landscape 1)'

월간중앙7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