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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 / 1% 가능성도 놓치지 않는 영원한 아방가르드

정영숙

융합의 아티스트 유현미

1% 가능성도 놓치지 않는 영원한 아방가르드


인식되는 것에서 벗어나기, 그 자유로움을 향해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으로 색다른 조형언어를 도출해내는 통합형 아티스트들이 요즘 부쩍 눈에 띈다. 유현미도 그중 한 명이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그리고 글쓰기 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사진과 영상으로 함축시키는 유 작가는 1990년대 초반 뉴욕 유학을 거쳐 귀국 후 15회의 개인전과 150여 회의 기획전, 그룹전에 참여하며 탄탄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중견작가이다. 뉴욕 아모이스이노 화랑 주최 공모전 최우수상을 비롯해 모란미술상, 일우사진상 등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 매봉역 인근 주택을 개조한 작업실을 찾았다. 작업실인 지 작품에 등장하는 세트장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는 공간이다. 널린 물건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 차를 마셨다. 마치 작품 안에서 하나의 오브제가 되어 차를 마시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진 회화가 아니다. 독립된 조각도 아니다. 회화와 조각이 한 공간 에 있는 오브제이고 설치다. 이렇게 설정된 공간을 다시 한 컷의 사진으로 담아내는 형식이어서 이 공간은 작업실이자 작품 속 풍경이 된다. 지금은 다음 개인전에 발표할 공간으로 변형 중이다.

 벽면은 파스텔 톤으로 채색했다. 공간은 사각틀 혹은 아치형 구조에 의해 네 부분으로 나눴다. 그중 하나의 사각 틀 안쪽에는 큰 공을 올려놓은 사다리가 세워져 있다. 2009년 작 ‘네 번째 별 No.2’와 2011년 ‘십장생 No.1’의 배경이 됐던 공간이다. 작품의 주제별 특색에 맞춰 공간을 이용하고 그 공간까지 작품에 담아내는 그의 첫 시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사람들은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사진 같다며 감탄한다. 또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 한 폭의 그림 같다고 말한다. 왜일까? 어쨌든 사진과 회화, 이 두 가지를 합친다면 누구나 공감하는 절대미를 찾을 수 있을 테고, 그것이 내가 갈망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 같은 사진 혹은 사진 같은 그림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여기에 조각까지 덧붙인다면...”

 생각하는 바를 작품으로 옮기려면 표현 능력은 기본이다. 그는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그의 조각가로서의 자질과 표현 능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드라졌다. 중학교 2학년 미술과목 과제가 비누로 자화상 조각하기였다. 그는 열심히 공들여 만들었지만 담당 선생님은 오히려 누군가 만들어준 것 아니냐며 낮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억울했지만 자신이 직접 조각했으니 소질은 충분히 인정받았다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미대 진학을 꿈꿨다. 수채화나 유화도 곧잘 그렸으나 워낙 형태감이 뛰어나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조소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조각만 배우는 학부 수업이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나면 패션학원에 따로 드로잉과 회화수업을 하기도 했다. 학부 시절 조각과 회화를 탄탄히 다진 것이 현재의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온갖 재료와 장르는 다시 오브제일 뿐

뉴욕대학(NYU)유학시절에는 창작미술을 전공했다.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수업방식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판화, 세라믹, 유리, 설치, 사진 등 온갖 재료를 다루었다. 그는 특히 사진작업에 큰 흥미를 느꼈다. 아르바이트로 뉴욕의 패션거리를 촬영했던 경험은 사진의 속성을 이해하고 작업으로 진행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조각과 사진, 회화와 사진, 설치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은 대학원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작했다. 조각과 사진을 이용해 설치작업을 하고, 그 설치작업을 다시 사진에 담아 1992년 피기트로와트 와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러 번 열었다. 당시에는 조각과 흑백사진을 혼합했지만 그 후 회화적 속성이 적극 개입되면서 회화, 조각, 사진 등세 장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모든 장르를 거치는 제작 과정이 쉽지 않은데도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는 욕망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작가의 그런 욕망은 고스란히 작품에 투영돼 특유의 조형언어로 구축된다.

 더구나 유 작가는 1%의 가능성에도 도전하는 열정을 가진 듯하다. 1990년대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이 동양의 여성작가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작품으로 전시에 초대받고 미술전문가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스스로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우선 비영리기관의 기획전시, 미술관의 그룹전, 대안공간 기획전 등을 꼼꼼히 살피고 그에 맞는 기획서와 작품제안서를 수없이 제출했다.

 그 결과 뉴욕의 브롱스뮤지엄, 얼터네이티브뮤지엄, PS112, 뉴지지뮤지엄 등 중요한 비영리 공간에서 전시 및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993년에는 아모스이노 화랑 주최 제8회 공모전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적극적인 도전정신은 마침내 뉴욕의 미술지형을 꿰뚫어갔다. 그는 이 경험을 발판으로 2004년 국내외 아티스트를 위한 <아트맵>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의 작업실은 개인전 준비로 분주하다. 이번 개인전은 2012년 일우미술상(출판부분)을 수상에 따른 일우스페이스 초대전이다. 일우미술상은 사진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열정적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유작가는 전통적인 사진작가가 아니다. 그런 만큼 응모 자체가 무모할 수 있었지만 “사진 매체를 활용하여 제작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취지를 읽고 응모했다고 한다. 

 회화, 조각으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최종 결과물은 사진으로 완성하는 작가에게 사진의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회화가 숭고한 그 무엇이라면 사진은 다큐성이 강하다.에디션이 있고 이미지의 변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그는 말한다.이 말처럼 유 작가는 특히 다큐멘터리를 강조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이미지를 각색 없이 직설적으로 드러내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촬영 후 최소한의 먼지 제거작업과 컬러 조정 외에는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1 '커다란 공(Big ball)No.4'(2013)               2 '커다란 공
(Big ball)No.5'(2013)


마술 같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조형물의 형태와 색채를 변형한 후 재촬영을 한다. 이렇게 사진의 재현성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주택가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가까운 상가건물의 지하에 그의 또 다른 작업공간이 있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섹션별 세트장으로 구획한 작업실이 나타난다. 벽면과 오브제들로 유추해보건대 이곳은 그의 ‘정물(Still Life), 차원의 경계’ ‘십장생(Good Luck)'시리즈의 공간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한쪽 구석에 그의 작품속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받았던 오브제, 의자가 놓여 있다. ‘Still Life, 차원의 경계’ 시리즈 중 ‘듣기(Listening)'라는 작품이다. 커튼 앞에 빈 의자와 벽면에 부착한 귀 형상이 모호한 상상을 자극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제시한 오브제는 벽을 넘어 대화를 통해 열린공간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해체된 벽채와 오브제는 또 다른 작업을 위해 침묵한다.

 ’돌구름(Stone cloud)'은 아치형 공간 사이에 돌이 구름이 되어 둥둥 떠 있는 광경이다. 얼마 전 마술을 볼 기회가 있었다. 눈속임 인 줄 알면서 마술사의 퍼포먼스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힘껏 박수를 치고 있었다. 새장의 새가 갑자기 토끼로 변한다거나 아이를 공중부양시키는 모습 등은 참으로 신기했다.

 유작가도 이 작품에서는 마술사가 된다. 무거운 돌이 공중에 떠 있는 광경과 ‘소우주 (Small galaxy)'에서는 지구본과 구형이 공간을 유희하듯 떠 있고, 공룡과 전화기가 한 공간에서 만난다. 각각의 현실적인 오브제는 작가의 설정에 따라 낯선 공간에 놓이고, 이질적인 이들 오브제의 결합은 비현실적 공간을 제시한다. 마술사가 속임수를 통해 즐거움을 준다면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공간을 넘나드는 경계에서 판타지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성을 열어준다.

 작가는 회화와 조각을 바탕으로 완성하는 사진 외에 영상작업도 병행한다. 사진의 평면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여기에 시간성까지 담아 한층 심화된 작품세계를 제시한다. 2009년에 제작한 ‘그림이 된 남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작품 속에서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상에 침범하는 사람들은 그를 그림 속에 주인공으로 그린다. 눈동자만이 움직일 뿐 그의 모습은 그림이다. 실체가 사라진 현실이지만 움직이는 눈동자로 인해 “이것이 그림이다”라고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에서 작품은 마무리 된다.



'빙산(Iceberg)No.1' (2013)


적당한 불안은 감각을 일깨우는 붓 터치

작가는 글쓰기를 즐긴다. 최근에는 <나무걷다> 라는 수필집을 출간했다. 작가의 시어머니인 김남조 시인이 그의 습작시를 읽고 등단을 권유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의 글쓰기는 미술작업의 또 다른 토양이 된다. “글을 쓰다보면 주인공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을 따라 작업구상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중견예술가의 일상은 어떨까?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과거에 경험했던 장면은 꿈과 겹치고, 실제는 영화 같은 미장센으로 변형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탐구하는 지점을 시각화 한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창작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유 작가는 “불안은 창의적인 사람만이 갖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긴장감과 불안이 작가의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그의 일상은 마치 농부가 땅에서 농사를 짓듯이 꾸준하고 성실하게 진행된다. 다만 반복적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진 한 컷을 얻으려고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7~8개월을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 “그 결과물은 한 장의 사진이지만 작업 도중 수백번 촬영을 해야 한다. 먼저 화면 안에 구성되는 오브제들의 구도를 수없이 확인하고, 오브제에 채색이 들어가면 또 중간 촬영해 결과물을 보고 그 진하고 흐린 정도를 조절한다. 나의 작업실은 여러 개의 세트가 여러 개 준비돼 있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이미지 변형 없이 미술의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며 전통적인 여러 방식을 이용해 완성된 나의 사진에는 건축, 조각, 회화, 사진, 영상 등 여러 매체에 관련된 행위와 과정이 누적돼 있다. 이렇게 완성되는 일련의 작업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사진으로 완성되며, 조각과 회화, 사진의 프로세스를 모두 거치며 장르를 넘나드는 환영을 보여준다.”

 어떤 예술가로 인식되고 싶은가? 그는 “인식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 자유로운 창작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인식된다는 것은 오히려 특정 상황에 갇히는 것 일 수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연출사진 작가 등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보다는 늘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1%의 가능성에도 과감히 도전하는 작가의 열정은 능동적 예술가의 아방가르드 정신의 산물이다. 유 작가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실과 비현실의 지점을 절묘하게 시각화하는 조형언어로 감상자의 닫힌, 또 하나의 감성의 창문을 열어가는 예술가다.



1 '깨어진 거울(Broken Mirror)No.3' (2013)

 
2 '미확인비행물체(UFO)No.1' (2013)                3 '미확인비행물체(UFO)No.2' (2013)


월간중앙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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