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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그의 초상화엔 매의 눈이 있다

정영숙

리얼리즘을 미니멀리즘으로 그리는 '작가' 강형구

그의 초상화엔 매의 눈이 있다


생각 속 동체를 표현하고 싶은화가...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물을 사진 찍은 것처럼 그리려고 한다'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현대미술은 쉽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늘어나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미술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일반인들이 어렵게 여기는 현대미술이 사실은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있는 커피숍에 들르는 일 만큼이나 다가가기 쉽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방법은 간단하다. 처음에는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한눈에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리얼리즘 작품을 위주로 감상하자. 이런 그림을 자주 접하다 보면 작가가 그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추상 작품에서도 자연스럽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심미안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충족을 경험하게 해줄 작가 중 한명이 강형구다. 강 작가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0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7억여 원에 낙찰된 ‘빈센트 반고흐 블루’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인물화는 판매되지 않는다는 미술계 속설에도 불구하고 강 작가는 자화상을 중심으로 역사적 인물이나 대중 스타등의 초상화를 꾸준히 그려왔다. 미술계 이단아 같은 그의 행보는 ‘ 빈센트 반 고흐 블루’ 이후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그 결과는 미대 졸업 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작품이 팔리는 쾌거(?)를 낳았다. 이제 강 작가는 한국 미술계의 중진으로 미술 경기가 좋지 않음에도 해외 주요 미술관. 아트페어. 경매에 초대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의 작업실은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 내 레지던시에 있다. 7년째 이곳에 머문다. 장기 입주작가인 셈이다. 작업실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 사납게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져 깜짝 놀랐다.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맞은편 벽에 기대선 링컨이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링컨>이 개봉된 시점이어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초상이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과 다른 점을 하나 꼽으라면, 역시 캔버스의 크기다. 작업실 한켠에 겹쳐 세워놓은 작품이나 작업 중인 작품들이 모두 200~300호에 이른다. 강 작가는 올 하반기 국내 개인전과 뉴욕. 베이징 등에서 개인전이 계획돼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작업실은 열기로 후끈거린다.

 그의 푸른색 티셔츠가 유난히 눈에 띈다. 작업 중인 링컨 초상화도 푸른색, 고흐의 초상화도 푸른색이 주를 이룬다. 푸른색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강작가는 태극기의 이미지마저 푸른색으로 떠오른다고 한다.

작업실 창틀에 태극기와 외국 국기 20여 개가 꽂혀있다. 맞다, 작가의 전화 ‘컬러링’도 애국가다. 벌써 15년이나 계속된 일이다. 그는 10여 년째 수염을 기르듯 한 번 선택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 습관 같은 것일 뿐이라고 에둘러 말한다. “국가관을 떠나 가정 같은 소속감이 좋다.”

 그는 손기정기념재단을 만들고 1기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공동이사장으로 있다. 화가로서는 흔치 않은 경력이다. 손기정 선수가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랐을 때의 심정에 가슴이 먹먹한 연대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가 진정한 작업 시간


대학 졸업 후 그는 10여 년 직장생활을 했다.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갤러리를 운영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갤러리 운영에 실패하면서 오히려 그는 붓을 들었다. 가족에게 미안했지만 그에게 그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로 다가왔다.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그 후로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강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용수철을 눌렀다 튕겨나가는 탄력으로 그리기에 집중한다.”, “붓을 들었을 때 보다 캔버스 앞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울 때가 작업 중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림이 잘 그려질 때 오히려 붓을 놓는다고 한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다 보면 그림이 새롭게 보이고 그림이 부르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캔버스 앞에 다가서게 된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 진정 화가인 셈이다.

 그렇게 그리고 싶던 그림을 그리게 됐으나 더 큰 불안감이 그를 압박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그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대형 초상화를 그리는 데만 매달렸다. 작품이 팔릴 리 없었다. 불확실성은 슬럼프로 이어졌지만, 그렇다고 팔리는 작품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40대에 다시 그림을 시작해 10년 동안 그린 대작 70여 점을 동시에 발표했다. 단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첫 작품 발표는 그에게 ‘팔포’라는 별명만 남겼다. 작품 판매를 포기한 작가라는 뜻이었다. 무모하리만치 대형 캔버스에 그린 카스트로나 박정희 등의 초상화나 자화상은 판매를 염두에 두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작업이었다.

 강 작가는 교과서에서 알브레히드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본 후 막연히 화가를 꿈꾸었다고 한다. 그 뒤로 살 바도르 달리를 만나 발상의 전환을, 대학에서 척 클로스의 대형 인물 초상에 빠졌다. 물론 반 고흐에게서도.

 고도의 집중력과 감각적 표현을 요구하는 작업을 진행하려면 휴식도 중요하다. 강 작가가 미술작업 외에 평소 즐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작업실 한쪽을 가리켰다. 수백 개의 비디오 테이프가 꽂혀있다. 평소 영화보기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글쓰기도 즐긴다. 그가 책꽂이에 꽂힌 몇 권의 노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대학 시절의 일기였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일기는 기록화에 가까울 정도로 구체적이다. 영화를 관람한 날짜와 동행자, 비용까지 1년 단위로 목록을 작성해뒀을 정도다.

 기록은 기억을 재생하는 힘이다. 그는 일기를 몇 줄만 읽어도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내용에 따라 통계표까지 작성해놓은 그의 일기는 이제 와서는 작업의 원동력과도 같다. 그는 평소 드림다이어리도 쓴다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가 꿈을 잊지 않으려고 곧바로 기록하고 드로잉하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늘 필기도구를 준비해두었듯이 그도 현실 너머의 환영을 기록하고자 애쓴다고 한다.


그의 초상화의 공통점은 ‘눈빛’


미술가로서는 참으로 특이한 사고와 행동이었다. 그러나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예술가에겐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사고함으로써 남들이 보지 못하는 틈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틈이 차별화의 근간이 되고 작품으로 옮겨지면 독창성으로 뿜어져 나온다.

 그의 작업실 한켠에는 지점토로 만든 작은 조각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틈틈이 조각하고 싶은 인물이나 대상을 그로테스크하거나 정밀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2006년 작 ‘고흐(Gogh)'는 259.1x193.9cm, '표준화된 인물(F. Figure)' 200호다(캔버스는 같은 200호라 해도 인물이냐 풍경이냐 바다풍경이냐에 따라 세로길이가 조금씩 다르다). 고흐의 얼굴은 오른쪽을 향하고, 눈은 약간 위를 바라본다. 고흐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작가 중 한명이다. 그렇지만 강  작가의 작품 속 고흐의 눈빛은 자화상의 눈빛과 사뭇 다르다. 그가 표현하고 싶은 내면의 동기가 과감하게 드러난 눈빛이다. 응시다.

 이처럼 그가 대형 캔버스에 그리는 얼굴 중심의 초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눈빛이다. 마릴린 먼로의 반쯤 감긴 매혹적인 눈, 오드리 햅번의 사랑스런 눈, 앤디 워홀의 선글라스에 감춰진 눈도 강렬하다.

그는 자화상을 즐겨 그린다. 자신의 20년 후 늙은 모습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도전적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알브레히드 뒤러의 자화상처럼 좌우대칭이 뚜렷하고 긴 흰 머리카락 때문에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한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 스타. 정치인에서 자화상까지, 그가 응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응시와 효과의 어울림”, “얼굴을 통해 초상을 그리지 않는다. 사회를 그린다”, “사회적 분위기가 감상자를 응시한다”는 등 그의 짧은 대답에서 그의 의도를 유추해볼 수 있다. 작가가 선택한 유명인이나 대중 스타를 통해 그가 살아가는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떠올린다는 말이다.

 유명 인사를 사실적으로 그린다면 사진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 질문에 그는 사진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 을 끌어내기 위해 그린다고 말한다. 늙은 마릴린 먼로나 20여 년 후의 자화상처럼 왜곡과 변형으로 상상충동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사실성을 강조한 이미지와 대상을 왜곡한 초상화의 공통점은 눈빛이다. 초상화가 응시하는 지점이 중요하다.

 그가 표현하는 ‘응시’는 사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응시(凝視)’와 매의 눈처럼 사납게 노려보는 ‘응시(應視)’를 넘나든다. 라캉의 ‘응시(Gaze)’는 ‘장자가 나비 꿈을 꾸는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는가’ 하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응시로 풀어낸 것이다. 작가는 감상자의 응시에 주목한다. 작가가 표현한 초상과 감상자의 응시가 충돌하는 교차점, 그 지점에서 응시는 내면을 향하거나 초상을 벗어난 제3의 응시를 유도한다.


1 2 3
1
'붉은 칼라스(red callas)', 2013

2 '밤하늘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in the night sky)', 2010

3 '자화상(Self-portrait)', 2007

작업 과정 중시하는 액션페인팅


1970년대 강형구 작가는 앵포르멜(비정형) 형식을 이끌었던 화풍이 아닌 극사실주의 화풍을 실험하는 청년작가였다. 그리고 40대 후반, 자화상 50여점이 포함된 초상화를 발표하면서 극사실주의 계열의 작가로 분류됐다. 얼핏 보면 사진 같고, 자세히 보면 사진보다 더 섬세한 디테일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 그림에서 극사실적 표현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도 안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테크닉은 극사실적이지만 생각까지 극사실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 그림은 미니멀리즘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평소 수치를 들어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듯하다. “자화상 30%, 유명인 30%, 일반인40% 정도로 그리는데 어떻게 고흐와 마릴린 먼로만 그렸겠느냐”는 식이다.

 그는 한 인물을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한다. 반면 재료는 다양하게 실험한다. 캔버스의 재질도 텐트 천이나 군복 천, 알루미늄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의외로 붓은 별로 없다. 작품 표현기법상 세필이 수십 개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다. 그는 늘 칫솔. 전동드릴. 이쑤시개 등 재료 선택을 위해 호기심으로 사물을 접한다. 결국 그가 표현한 작품이 액션페인팅이 아니라 그가 창작행위를 하는 과정이 액션페인팅인 셈이다.

 무명시절 그는 ‘1일 1짜’를 유지했다. 하루에 한 번은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는 얘기다. 배달원이 작업실 문을  여는 순간 “우와” 하고 내뱉는 감탄사가 그에겐 큰 격려가 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는 보통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가 논문을 발표하듯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가 논문을 발표하듯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림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다만 보여주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림을 보고 느끼고 교감하는 것, 다른 예술과 다르게 미술작품을 통해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의 손맛까지 감상자에게 전달된다고 믿는 그는 아무리 바빠도 어시스트를 두지 않고 혼자서 직접 그림을 그린다. 조각이나 개념미술과 달리 회화에서는 작가의 손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의 처음과 끝은 작가의 고감각의 결정체이고 그것이 작가의 이름을 완성한다고 그는 믿는다.

 강 작가는 40대 후반에 작품을 발표한 뒤 50대 나이에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유명 작가, 인기 작가, 극사실주의 작가 등의 수식어를 거부한다. 그냥 작가라는 말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대법관을 지낸 그의 부친이 직무에 따라 부장검사. 대법관 등으로 불리기보다 ‘강 검사’로 불리기를 좋아했듯이 그도 그저 작가로 불리기를 원한다.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를 “생각 속의 동체(물체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를 그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인물을 사진을 찍은 것처럼 그리고 싶다”고 그는 덧붙였다. 메두사. 산타클로스. 백설공주 등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상상의 인물이나 문학의 주인공까지. 지금까지의 작품이 명확히 보이는 인물을 사진 이상으로 세밀하게 담아내며 주체와 타자를 응시로 표출했다면, 미래의 초상화는 보이지 않는 인물을 사진같이 표현하는 생각의 차별화다. 실제 인물도 ‘확대라는 과장’으로 새로운 느낌을 제공하듯, 가공의 인물을 표현하는 추상적 접근이 극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강형구 작가만의 회화적 액션이다.

'빈센트 반 고흐 블루(Vincent van Gogh in blue)', 2007

월간중앙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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