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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고통 속에서 생명을 꽃피우다

정영숙

포스트 아방가르드 미술가 이호영 

고통속에서 생명을 꽃피우다
시간예술의 영화적 표현을 공간예술의 미술적 표현으로... 평면, 입체, 설치,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폭넓게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작업실 테이블 위에는 몇 장의 팸플릿과 이호영 작가의 박사학위 논문이 놓여있다. 박사논문 주제는 ‘영원한 화두·화엄에 나타나는 신체와 폭력의 연구’(2009년)다. 1997년 이후 지속적으로 붙들어온 주제인 신체 표현과 폭력의 의미를 분석했다고 한다. 논문 첫 장에는 “향기나는 삶. 아름다움이 빛나는 생(生)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즐겁게 살아내는 것에…. 정영숙님께 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문장과 글씨체가 아름다워 몇 번을 읽어보아도 기분이 좋다. 그랬다. 이호영 작가의 개인전을 여러 차례 관람하면서 그때마다 그의 작가노트와 전시제목에서 매번 흥미를 느꼈다. 
 100호 이상의 평면작업을 위해서는 적절한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만큼 임대료도 비싸고 온기를 유지하는 데도 많은 돈이 든다. 더구나 몇 해 전부터 겨울 기온이 급격이 떨어지고 추위도 오래 간다. 많은 작가가 작업실 난방비를 감당하지 못해 아예 동면에 들어가거나 서울을 벗어나는 추세다. 
 이작가의 작업실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과 광주시 오포면의 경계에 위치한 상가건물 2층이다. 한 쪽 창문 너머로는 저 멀리 율동공원 번지점프장의 꼭대기 일부분과 뒷산의 낮은 능선이 보인다. 이렇게라도 자연풍광의 한 부분이나마 볼 수 있어 다행스럽다. 차가운 작업실의 온기를 유지하는 것으로는 붉은 빛을 발하는 온풍기 2대가 전부다. 작가는 에스프레소를 즐긴다고 한다. 원두를 직접 갈아 내려준 커피 한 잔으로 뜨거운 기운을 채우고 작업실 탐색에 들어간다. 
 직사각형 실내 공간 한 쪽 벽면에 펼쳐진 작품들부터 다른 쪽에는 벽면에 기대 세워놓은 작품과 물감, 프레스 등 작업도구들이 가득하다. 몇 몇 작품을 살펴보니 강렬한 터치와 추상과 반추상이 겹친 표현방식, 사진과 물질성이 강조된 마티에르를 접목한 조형방식 등이 먼저 읽힌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돌직구를 날려본다. “작품 창작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작가의 대답은 자신의‘영원한 화두’로 시작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람의 삶과 똑같습니다. 그림은 그 자체의 절대치가 아니라 삶의 절대치입니다. 결국 삶을 예술적 장치로 풀어가는 것이고, 그 중 평면작업이 얽매이지 않는 형식이어서 이를 통해 접근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작행위가 답을 주지는 않아요. 오히려 질문을 던져주지요. 이러한 질문이 다시 예술행위를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작가의 그런 욕망이 담긴 작품의 이미지는 액션 페인팅의 운동감, 다소 거친 오브제의 부착 등으로 인해 언뜻 봐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다. 
 2002년 여름, 강원도 강릉 지역에 슈퍼 태풍 루사가 지나갔다.작가는 당시 태풍이 지나간 처참한 페허를 목격하고, 그 참담한 마음을 작품에 담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그가 작품으로 표현한 폭력성은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아닌 폭력적 힘에 의해 죽어가는 자연을 담았다. 당시를 기억하게 하는 명확한 기록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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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둠으로부터 빛에게로, mixed media on canvas, 182x227.3cm, 2002
2 영원한 화두, oil on canvas, 182x225cm 2점, 1997
3 꽃들의 비명, video art & installation of mixed media, 2008

 23회의 개인전은 23편의 영화

 “그 해 여름, 홍수에 떠밀려온 듯 보이는. 돋아난 모래톱 위에 반쯤 묻혀진. 반 정도 상반신을 드러낸 조그만 철제의자. 바람이 지날 때마다 시립한 코스모스들이 흔들거리고. 팔걸이와 등받이가 붉게 녹이 슨. 흐르는 강. 작은 모래톱 위에. 의자의 정적 위로 바람이 지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기억풀이는 2003년 개인전 ‘꽃들의 시간’의 주제였던 ‘어둠으로부터 빛에게로’다. 거대한 태풍의 물결이 순식간에 생명을 삼키고 건물을 무너뜨린 자연의 폭력성을 행성이 폭발하듯, 용광로가 분출하듯 거침없이 표현했다. 작가는 ‘꽃들의 대지’ 연작을 표현하며 “꽃이 인간의 신체 같고, 우주의 시선으로 보면 인간은 찰라적이다”라고 언급했다. 
 끔찍한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작가는 예민하고 감각적인 감성으로 어둠에서 빛을 찾는다. 바닷가 모래톱, 페허 속에서 자란풀잎 하나에서 강한 생명력을 본다. 각각의 삶 속에 깃들인 고통·어둠·차가움을 떠받드는 밝음을 찾는다. 그러다 2011년의 개인전 ‘녹, 오래된 정원’에서 어둠 속에 피어난 꽃이 마침내 형상화한다. 
 “가을이 봄을 함축하듯 오래된 정원을 녹으로 장식하는 것은 살고자 하는, 피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페허 속에서 다름이라는 욕망의 꽃이 피어난다.” 
 그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녹이 피어나듯, 오래된 정원의 생명력을 동질화한 폭력으로 삶을 그려낸다. 이러한 내용을 특정 주제로 표현한 개인전이 2008년 ‘꽃들의 비명’이다. 
 나무판, 죽은 나무, 두상 테라코타, 그리고 소형 모니터 등은 수평적으로 놓여 있어 바닥에 깔린 흙과 낙엽처럼 고요하고 거칠다. 그 가운데 오래된 나무의자 하나가 높여있다. 오로지 이 의자만이 제대로 수직적 형상을 하고 있다. 녹슨 오래된 정원을 상징하는 단서, 녹으로 감싸였지만 생명을 품은 완전한 형태의 의자다. 관람객들은 폐허 속을 거닐 듯 조심스럽게 나무판 위를 걷는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시 낭송이 시작된다. 
 작품 안에서 시인은 시를 읽는다. 
 “그대 사랑 / 꽃 피는 바람에 사라졌습니다 / 꽃 피지 않았던들 / 우리 사랑 헤어졌을까요….”(‘꽃 피지 않았던들’ 이홍섭) 
 다양한 매개체로 거칠게 가득 채워진 전시장 내에서 시인의 낭송 퍼포먼스는 바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다. 침묵의 시간을 깨우는 잔잔한 시계추의 흔들림 같은 떨림, 여기에 생명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테이블 위에 놓인 지난 개인전 팸플릿을 몇 장 펼쳐보니 작가의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조형방식이 눈에 띈다. 이같은 형식은 1997년 첫 개인전부터였다. 그가 주로 사용했던 오브제는 바닥에 설치한 촛불, 흙과 화분, 그리고 2000년 이후부터는 테라코타, 죽은 나뭇가지와 뿌리, 소형 모니터, 목선(木船) 등이다. 이러한 선택된 오브제는 작가의 기억의 층에 자리한 연관된 사물들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사진과 두꺼운 마티에르(질감)을 강조하기 위해 에폭시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 장르만 고집하지 않고 평면·입체·설치·사진, 그리고 퍼포먼스와 영상까지 폭넓게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정신, 포스트 아방가르드 기질이 투철하다. 삶을 하나로 말할 수 없듯 다채널로 표현하는 장치라고 말하는 그인 만큼 삶의 문제를 미시적으로 보지 않고 큰 줄기로 풀어보고 싶은 열망의 표출일 것이다. 
 작업실 한 쪽 벽면에 기대놓은 평면 근작을 들여다본다. 여인의 상반신 형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끈적거림이 느껴질 만큼 에폭시를 두껍게 발랐다. 2011년 개인전 ‘꽃 눈’에서 발표한 시리즈였다. ‘꽃 눈 -피어나는 몸’ 연작을 위해 모델을 선택하고 작가가 의도한 자세를 취하게 한 후 사진을 촬영한다. 직접 찍은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근접한 다음 다른 물질성을 결합한다. 
 이작가는 50호 정도의 작품 8개를 연결하거나 100호 정도의 작품 2~5점을 시리즈로 구성해 설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 작가 중 색면화가 버넷 뉴먼·마크 로스코 등의 대형화를 통한 숭고미,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의 강렬한 올 오버 드립페인팅(drip painting)의 제스처와 유사성이 보인다. 지난 현대미술 작가들이 제시한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는 한 부분이 전체인 형식에 주목한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맞물려 있듯 삶이라는 구조를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 생명에 대한 경외다. 이처럼 삶의 구조는 기존의 조형장치와 한 장르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테마의 한 부분이 전체인 것으로 그동안 모두 23회 개인전을 개최했으니 그는 23편의 영화를 촬영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단일한 표현을 지루해하고 매번 다르게 표현하는 작가의 기질은 강한 욕구의 발현이다. 그러고 보니 사진촬영 때 모델도 직접 섭외하고 컨셉트를 제시하고 모델로 하여금 자세를 취하게 하는 방식이 영화감독이 한 장면마다 배우의 연기를 점검하는 방식과 닮았다. 다만 시간예술의 영화적 표현을 공간예술의 미술적 표현으로, 시간예술적 방식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영상과 설치,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팸플릿 등에 실린 글은 상당부분 작가 자신이 쓴글이다. 대부분의 작가는 평론가나 큐레이터에게 비평을 의뢰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화가는 흔치 않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문학반 활동을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에도 미술반이 아닌 문학회 활동을 더 활발히 했다고 한다. 당시 국어선생님의 화집을 통해 20세기 현대미술을 접하고는 흥미를 느껴 대학생도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잡지를 구독하며 미술과 가까워졌다. 그러니 미대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흔히 접하는 입시미술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의 개인전에서 시를 낭송한 시인도 같은 문학반 출신 이용섭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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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원한 화두, oil on canvas, 182x225cm 2점, 1997
2 snow-flowers 1221, mixed media on canvas, 227.3x181.8cm, 2011
3 꽃눈-피어나는 몸, mixed media on canvas, 53x45.5cm, 2011
4 양재천은 흐른다 23, digitai printing, 91x73cm, 2006
5 Flowers-mud 55, mixed media on canvas, 91x117cm, 2011
6 화엄성-빛의 의지, mixed media on paper, installation, 1999

책과 글로 말하는 화가

 조형작업을 펼치는 작가에게 글 잘 쓰는 능력은 큰 장점이다. 단면이 아닌 전체를 관통하는 조형언어를 표방하는 설치 위주의 실험적 작업과 개념미술 형식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미술 이후로는 미술도 시각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먼저 읽고 감상하는 형식이 대세다. 이러한 양상은 미술작가들이 잘 그리고 잘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가’,‘문제의식은 무엇인가’,‘의미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풀어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작가 또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나는 왜 그리는가’라고. 삶에 대한 물음이 지속되듯 작가로 살아가는 당위성을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그는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예술이며, 물음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것이 예술가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카프카·톨스토이·이성복 등의 문학가를 좋아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색상, 음식 등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삶의 방향이 대략 느껴진다. 그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은 대중적이기보다 마니아 층에 주목받는 예술세계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삶에 대한 물음을 지속하고 뭔가 굳건하게 삶을 보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자리한다. 
 “폭력적 상황에서 희생을 통해 타오르기를 희망한다. 생이 남아 있는 한 몸으로 밀고 가는, 느껴지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희생을 통해 작품은 하나의 제의가 되기를 원한다.” 
 이호영 작가의 박사논문 결론 부분의 일부다. 이작가는 논문을 쓰면서 지난 작업에 대한 정리와 질문과 답이 끝났으니 이후로는 또 다른 확장된 개념으로 접근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폭력을 가하는 희생의 도구는 신체다. 신체가 예술가의 근원적 시선이자 표현의 대상이었기에 이작가는 꽃을 신체화했다. 근작에서는 신체를 사진으로 담아 오브제화한다.   
 확장되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는 장르와 결합의 층에서 혼용되는 공간을 제시한다. 특히 문학을 작품에 적극 도입해 사진매체를 중심으로 신작을 계획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날 것 같은 조형언어로 발표한 작품들이 미술계 중심에서만 움직였다면,이제는 일반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책이라는 매체다. 앞으로 이호영 작가의 개인전은 도록이 아닌 책과 함께 작품을 만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월간중앙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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