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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일-세상의 욕망을 그리다

정영숙

포스트 개념미술을 추구하는 작가 위영일

세상의 욕망을 그리다
'짬뽕맨 작가' 낙인 거부하고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팔색조 꿈꿔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위영일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기 전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의 카이스 갤러리에 먼저 들렀다. 그의 다섯 번째 전시회였다. 지난 5년 동안의 작업을 중간점검하고 중첩되는 작업을 정리하는 자리로 보였다.‘이상형(Ideal type)’이라는 주제 아래 그가 그동안 작업해온 ‘기네스 욕망(Guinness Desire)’, ‘장수욕(Longevity)’, ‘식욕(Appetite)’ 시리즈를 회화․조각․사진․설치․영상 등으로 다채롭게 표현했다.  
  ‘기네스 욕망’은 기네스북(Guinness Book)과 욕망(Desire)의 합성어다. 삶의 필수요소는 아니지만 과도한 욕망의 허상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해 기네스의 기록은 지속된다. ‘기네스욕망’ 시리즈에는‘짬뽕맨(Complexman)’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배트맨․슈퍼맨․헐크․원더우먼 등 슈퍼 히어로들의 초인적 능력을 한데 모은 형상이다. 이상적 형태의 조합이 오히려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다. 작가는 짬뽕맨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꼬집는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과잉욕망에 주목해 미래사회에서도 변하지 않을 인간의 욕망을 식욕․성욕․장수욕․권력욕․편리성․속도․기네스 등 7가지로 설정했다. 이들 7가지 욕망은 ‘그들만의 리그(A League Of Their Own)’ 시리즈 이후발표한‘Planet wee012 All-Star’를 통해 표현된다. ‘Planet wee012 All-Star’는 가상의 행성이다. ‘wee012’란 작가의 이름을 알파벳과 숫자로 표기한 것이고, ‘올스타(All-Star)’란 스포츠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작품은 최고의 선수를 한데 모아 경기를 벌이려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의 실체를 평면 혹은 입체로 보여준다. 
 ‘식욕’은 세계 최고의 뚱보 버스터 심커스(Buster Simcus)를 등장시켜 배가 부르면 먹지 않는 동물과 달리 음식에 지나친 욕구를 보이는 인간을 비판한다.‘장수욕’에서는 십장생도를 차용해 인간의 장수 욕망을 비판한다. 장수욕 시리즈 중 <For a 100 Year-old witch>는 작가가 지난여름 태풍 직후 새벽에 자전거로 한강을 달리다 느낀 장수욕의 한 단면이다.진흙덩어리와 잡목으로 뒤덮였던 한강변 운동기구들은 순식간에 말끔해지고 사람들은 다시 줄을 서서 운동한다. 작가는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자전거 부품을 설치한 마녀할머니의 빗자루 형상으로 꼬집는다. 작가의 뚜렷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주제를 전개하는 작가의 실험적 태도에 주목하게 된다.  
  2009년 위 작가가 국립창동스튜디오 장기입주작가로 활동할 때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포트폴리오를 펼쳐가면서 자신의 작업을 친절하게 설명하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난지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한남동에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의 역곡역 근처다. 지난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전업작가들의 전형적 궤적이다. 

 
그의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짬뽕맨(Complexman)'은 슈퍼히어로들을 한데 모은 형상이다. 이상적 형태의 조합이 오히려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로,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꼬집는다.<만삭출동>2012.



1 인간의 장수 욕망을 꼬집는 <18장생도> 2011. 2 이즈음의 짬뽕맨은 남성 캐릭터들 가운데 홍일점인 원더우먼의 영향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영웅의 위엄을 버리고 핀업걸의 자태를 자랑하는 모습이었다.<짬뽕맨 에로21> 2009. 3 야구나 야구장을 이상적이고 성스럽게 생각하는 미국사회의 인식에 냉소를 보내는 <꿈의 구장>2007. 4 '작가는 세계최고의 뚱보 버스터 심커스(Buster Simcus)를 등장시켜 음식에 지나친 욕구를 보이는 인간을 비판한다. '식욕' 시리즈의 <심커스> 2009. 5 위영일의 추상은 수많은 SF영화.만화 등에 등장하는 낯설고 신비로운 모습에서 발생한 구조적 페인팅이다. <SF 구조> 2012.

핀업걸의 자태를 자랑하는 슈퍼맨
 요즘 같은 불황기에 작품을 팔아서는 작업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위작가는 팔리는 작품 대신 지속적으로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는 덕분에 경제적 안정은 요원해 보인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그는 또 한 번 긴축재정을 선택했다. 지금의 작업실은 그 선택의 결과다. 낡고 오래된 작은 빌라 2층, 숙식하는 방 옆 조금 더 큰 방이 작업공간이다. 최소한의 공간에 최적의 동선만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작업실은 썰렁했다. 개인전과 기획전을 동시에 열다 보니 대부분의 작품은 전시장에 나가 있다. 작업실에 걸린 작품은 ‘Planet wee 012 All-Star’ 시리즈의 <Complexman Ero. ver 15> (2009) 뿐이다. 이 즈음 짬뽕맨은 남성 캐릭터들 가운데 홍일점인 원더우먼의 영향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영웅의 위엄을 버리고 핀업걸의 자태를 자랑하는 모습이었다.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짬뽕맨을 자살시킴으로써 이 시리즈를 마감할 생각이다. '짬뽕맨 작가'로 고착되려는 시점에 내린 그의 결단이다.
 텅 빈 듯한 공간에서 위 작가와 마주앉았다. 무엇보다 짬뽕맨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가 궁금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 만화를 좋아했다. <태양을 향해 달려라>라는 허영만의 만화가 특히 재미있었다. 20대 초반에는 당시 전성기를 맞았던 이현세의 구단에 들어갈 목적으로 만화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시각디자인과에 다닌 경험으로 만화의 평면적 표현에 익숙했던 데다 뛰어난 묘사력까지 갖춘 덕분에 몇 해 동안 이현세의 <아마게돈> <남벌> 등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접한 해외 유명 만화들과 만화가 문하생 경험이 짬뽕맨 탄생의 발판이 된 셈이다. 짬뽕맨에 대한 생각을 위 작가는 석사학위 논문에서도 털어놓았다. 
 “미국식 외침에 정작 달려 나오는 슈퍼 히어로는 보잘것없는 만화책 크기로 제작된 작은 캐릭터일 뿐이다.(...)그 중 슈퍼맨은 경제공황이 최고조에 달한 1938년 등장했다. 경기침체로 활력을 잃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암울한 시대를 초월하고 싶은 욕구를 대리만족하게 해주었던 것이 슈퍼맨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 만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얼핏 보아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케릭터지만 내용적으로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희화화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이처럼 개인적 경험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것이 작가의 무기다. 그의 짬뽕맨 시리즈는 팝아트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내용면에서는 만화 캐릭터와 대중적 아이콘을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개념적 작업방식에 가깝다.    
 군대에 다녀온 후 그는 만화가 문하생으로서의 일상에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협업으로 완성해가는 작업과정에 흥미를 잃었다. 이제 감각적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마음에서 홍익대 회화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고낙범 선생의 수업은 그림을 보는 시점과 작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Planet wee 012 All-Star'시리즈는 '올스타(All-Star)'라는 스포츠 용어를 차용해 인간의 '과도한 욕망'의 실체를 평면 혹은 입체로 보여준다. <Planet wee 012 All-Star 3> 2012.
 
동어반복은 이미지 창조 아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2006년 ‘그들만의 리그 1’을 발표했다. 현대미술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소통의 부재’를 다뤘는데, 그 원인을 작가의 권위적 태도와 관객의 무관심한 관람 태도에서 찾았다. 또한 <그들만의 도구>에서 작가는 미술사의 맥락을 이해하며 학습한 방식을 토대로 유명작가들이 작업하는 도구를 나열한 것이다. 작가 스스로 “나는 도구 의존증 작가이다”라고 강조하듯이 회화적인 감성의 붓질을 제거하여 내용과 정보에 집중하도록 하는 작업방식을 택한 것이다. 더불어 <artist color chart>는 모더니즘 작가로부터 현대 작가들까지 개별 작품을 분석하여 주요색채를 바탕으로 한 칼라 차트를 만들어 간 것이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극사실적인 물방울의 지속성, 만화의 망점을 시각화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벤데이 망점(Benday Dots), 알약에서 파생된 원형의 패턴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데미언 허스트의스팟페인팅(Spotpainting)등이 표기되어 있다. 위영일 작가는 이와 같은 작품들의 특징을 동어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기계적 작품이라 일컬으며 예술가의 ‘의식의 고정화’ 즉 매너리즘을 공격한다.
 이어 발표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작가는 “‘제국주의적 타자’로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주입되고 강요받는 ‘미국식 영웅주의’의 예를 아메리칸 슈퍼 히어로와 메이저리그 영웅들에서 찾아 미국인들이 영웅을 숭배하는 원인과 그 영웅들이 허상임을 폭로한다”고 말했다. 2008년 발표한 <꿈의 구장(Ideal stadium)>은 그의 이런 생각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야구나 야구장을 이상적이고 성스럽게 생각하는 미국사회의 인식에 대한 냉소적 반응이다. 
 이 또한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식이다. 위 작가가 청소년기에 만화 외에 접한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은 야구였다. 지금도 그는 사회인야구팀에서 활동할 정도로 야구는 그의 삶과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다.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서 동네 아이들과 야구를 시작한 그는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야구 기록지를 작성하고 관련 신문기사를 수집하는 등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비닐봉지로 글로브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가정환경 덕분에 야구는 시작도 못해봤다. 이처럼 좋아하는 야구가 정작 그의 작품에서는 희화화돼 나타난다. <월드시리즈(World Series)>는 세계전도에서 메이저리그를 펼치는 미국만 확대해 그린 작품이다. 야구가‘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임을 주지시킨다.

친절한 작가에서 불친절한 작가로  
 작업실 벽면에 컬러로 인쇄된 유인물이 몇 점이 부착돼 있다. 만화책에 등장하는 몇 컷의 이미지도 있다. 그 옆으로 기계부품 단면도 같은 이미지가 붙어 있다.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작가는 ‘공상과학구조물그림(SF-Structure painting)’ 시리즈라고 답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SF 구조’는 약 40년 전부터 수많은 SF 영화․만화․애니메이션․삽화에 낯설고 신비로운 구조물로 등장했다.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구조는 아니지만 기존과 다른 형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장르에서는 유용하다고 한다. 작가는 이를 회화로 표현하기도 하고 부조로 제작했다. 몬드리안의 추상이 자연의 수평․수직구조에서 시작되었고, 칸딘스키의 추상이 음악에서 발생된 감성적 형태라면 위영일의 추상은 SF 구조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페인팅이라 하겠다. 일부 다다이즘 작가가이 기계의 움직임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과 개념적으로 유사함이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동일한 재료와 기법으로 동어반복하는 현대작가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는다. 이미지의 창조가 아니라 단순한 재구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스스로 규정한 이미지 재구성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품의 내용에 따라 회화․사진․입체․설치․영상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이쯤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원초적 질문을 해본다. ‘그들만의 리그’ ‘기네스 욕망’ 시리즈는 인간 욕망의 근간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작가 개인의 욕망의 주체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권력에 관심이 컸다. 공모전, 레지던시 지원에 집중하면서 커리어를 쌓아 인지도를 높이고 싶었다. 그러나 창동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 달라졌다. 원하던 스튜디오에 입주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가깝게 접하면서 오히려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 이후 현대미술의 맥락을 이해하고 예술가의 속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이런 측면은 대학시절부터 드러났다. 국전 도록을 수집해 작가별로 작품의 특징을 분석하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전 학년 실기실을 돌며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지금도 그는 명함을 받으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꼼꼼히 살핀다. 이처럼 자료를 검색해 분석하는 자세는 감성적 접근이 아닌 이성적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그의 작업 태도와 연결된다. 
 위영일 작가는 가능한 한 친절한 예술가이기를 원한다. 예술가들이 말을 아끼고 지나치게 개념화하는 작업에 혐오감을 느꼈다는 그는 오히려 아우라를 배제하고 나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 작품에서는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방향을 그대로 그릴 예정이다. 이는 한스 아르프가 우연하게 그리는 선의 형상에서 나뭇잎과 인체를 발견하듯, 미술의 우연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불친절한 예술가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기존과 다른 양식의 작품으로 선회하겠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는 짬뽕맨 작가로 낙인찍히는 것을 거부하고 주체적․개념적 사고로 확장된 팔색조 같은 예술가를 지향하는 셈이다. 
                                                                                                                                    월간중앙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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