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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팡세 : 예술과 대중에 대한 단상

정택영

<예술과 대중에 대한 단상>


'대중의 눈, 대중의 판단은 예리하다.'

근래에 미술계에 관련한 일들로 인해 대중과 작가들간의 의견이 분분 무성하다.

모작 模作, 위작 僞作, 대작 代作 등의 문제로 검은 무대막 뒤에 덮여 있던 화단의 풍경들이 밝은 빛을 받으며 밖으로 노출된 것이다.

물론 작품을 그려내는 창작공간이 밖으로 노출되어야 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그 검은 무대막 뒤에서 옳지 못한 비리로 남의 작품을 베껴가며 모작 또는 위작을 생산해내거나 조수를 기용해 컬렉터들의 구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거의 같은 작품을 복사해 남발하는 행위가 있다면 이것은 대중을 속이고 우롱하는 행위이며 법에 저촉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범법행위가 되는 것이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어느 논객이 '대중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고 가볍게 뇌깔인 것도 대중을 너무 모르고 내뱉은 말이 되어 그 비판의 비수가 다시 그에게 되돌아가고 있다.

모두가 너무 안일하고 경박하게 예술이란 것을 대하고 예술 행위를 해온 결과이다.

'예술작품에는 그 작가의 혼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대중들로 하여금 예술을 일반 상품처럼 취급하지 않는 가장 핵심적인 예술의 힘이며 예술관이자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가며 작품을 해나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차치물론 且置勿論 하고 오로지 작품 창작에만 몰두할 때 작가의 혼이 작품 속에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요즘 흥행하는 말대로 '투잡', '쓰리잡'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작품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말은 가당치 않은 말이다.

예술가가 일반인들의 삶과는 다르게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하고 핍절乏絶 한 이유는 잡다한 여러 생각을 접고, 현실에 야합하지 않으며 오직 작업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작품에 혼이 담겼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으며, 이런 작품을 보고 대중들이 감동을 하거나 예술을 높이 평가하기는 커녕 예술을 상품으로 보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세상의 많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예술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예술은 그래서 고독한 것이고 구도자의 길과 같은 것이다.


“The role of the artist is to ask questions, not answer them.”

안톤 체홉 Anton Chekhov 은 '예술가의 역할은 대중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예술창작이란 대중들에게 예술은 이런 것이라고 답을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예술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왜 사는가 하는 문제들, 무엇이 가치있는 일이며, 무엇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가를 묻는 그림들이어야만 한다.

만일 그러한 문제를 묻는 그림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답을 해주는 그림이라면 그것은 '질의응답 도해사전 質疑應答 圖解辭典'에 불과할 것이다.

예술가의 길이 어려운 것은 그러한 고독 속에 살고 구도자 같은 길을 걷는다 해도 결코 보상을 바라고 행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고행의 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며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면 그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 창작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든 오로지 자신의 혼을 쏟고 작업에 열중할 때, 그 작품은 빛날 것이며 그 후에 대중들로부터 보상을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상을 바라는 예술은 목적을 상실한 예술에 불과하다.

창작의 보상은 곧 '창작 그 자체'이다.

참으로 지난한 길임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누구도 함부로 '예술가'라거나 '예술을 하고 있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된다.


June 2 Thursda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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