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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 62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택영

Takyoung Jung's column 
'Where are we going now?
What are we doing here?'

<정택영 칼럼>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작‬ 야 방성대곡 代作也 放聲大哭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ㅡ역사를 통해 잘 아는 대로,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 사설란에 실린 장지연 張志淵 의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비판의 논설 제목이다. 
‘이 날, 목 놓아 통곡한다’는 뜻으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11월 17일 대신들을 압박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조약 체결에 찬성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대신들을 비판하며 통곡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국적인 방성대곡에 빗댈 일은 아닐 지라도, 최근 미술계에 야기된 초유의 사태를 두고 침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이 제목의 ‪#‎패러디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좋아서 시작했든 주어진 재능에 따라 시작했든 모든 직업을 차치하고 평생을 예술의 길을 걸었고 처음에 작심한 예술의 길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그러나 최근 화투그림으로 촉발된 '‪#‎조영남대작사건‬' 으로 인해 그간에 보편적으로 인식해온 예술과 미술의 가치와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격랑은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마치 당연한 도그마처럼 치부하고 창작의 길로 일관해온 예술에 대한 관념과 세상을 바라보는 질서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근대사 이래로 이 문제에 관련하여 그 누구도 상상해보았거나 예측치 못했던 복병이 불쑥 출현한 것이다.

그 일이 불거진 이후, 메스컴이 타전하는 기사 내용과 대중들이 달아맨 댓글들로 이 사건의 전말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 '화투그림 ‪#‎대작사건‬'의 요체는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 조수 또는 쌍방계약에 의한 타인이 대신 그려주는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인가?
2. 조수, 보조 작가의 작품 참여는 어디까지 ‘관행’이라고 용인할 수 있는가?
3. 현대미술에서 ‘조수, 보조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4. 만일 '대작'인줄 모르고 작품을 구매했다가 후에 대작인 것을 알게 되면 이것은 '사기'인가'?
5. 예술은 과연 누구 말대로 '‪#‎사기‬'인가?

이렇게 축약해볼 수 있다.
............

우선 100여 년 전 그려졌던 위 작품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으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라는 문구를 넣어 이미지와 대상, 언어와 사고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전복시킨다. 이 작품 《이미지의 배반》 아래에 쓴 이 말은 모순어법으로 보이지만, 이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이미지에 불과할 뿐. 또한 그림 속 텍스트도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를 그린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그리트는 우리의 관습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덧붙여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환영인 그림이기 때문이다. 즉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그리트는 상식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으로 평소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사물과 관습화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고 뜻하지 않은 충돌을 작품 속에 펼쳐 놓는다. 
이 그림도 '예술이 사기'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마그리트가 그린 것일까? 예술의 목적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익숙함에 젖어있는 사고체계를 환기시켜 세상을 바로 보도록 이끌어 주는 데 있는 것이다.
.........

이번 화투그림 #대작 사건으로 대중들의 예술작품에 대한 수많은 글들을 접해 본 결과, 예술계에서 있어온 관행과 그 이면에 있는 일들에 대하여 몰랐다거나 놀랐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크게 회의적인 심정을 토로하고 있음을 보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사건의 핵심은 대작이 범법자가 될 수 있는가라든가 그러한 행위가 관행이라든가 또는 사기라든가 하는 문제는 이에 관련한 각 분야의 유관기관에서 수사, 심의, 재판 등의 실체적 관행에 의해 규명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의 밑바닥에는 이 그림에 관련하여 매매행위나 대작행위에서 파생된 돈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대작그림을 판매함으로써 이득을 취하고 대작자에 대한 댓가의 지불이 상식 밖이라는 등의 발언들은 결국 모든 것의 초점을 돈이라는 것에 상정하여 전개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화투그림을 구매한 사람들 또한 단순하게 화투그림이 좋아서 산 사람도 있으리라 추정하지만 대체적인 여론은 유명 연예인의 이름으로 내건 이 그림이 투자가치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 구입한 것이란 사실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이 시대상을 반영한 현상에 다름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대가 그렇다.
모두가 ‪#‎맘모니즘에‬ 젖어 '돈 되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배금 사상이 짙게 깔려있는 시대적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미 150여 년 전에 독일의 철학자 포이엘바흐는 그래서, 그가 살던 시대로부터 150년 후의 세대를 일찌감치 내다봤던 것이다.

''The present age ... prefers the sign to the thing signified, the copy to the original, fancy to reality, the appearance to the essence ... for in these days illusion only is sacred, truth profane.'' <Ludwig Feuerbach (1804-1872), German philosopher. The Essence of Christianity, preface to 1843 edition (1841)>

21세기 사람들....그들은 '사물의 존재보다는 상징을, 원작보다는 복제본을, 진실보다는 환상을, 사물의 본질보다는 겉껍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고 이미 썼지 않은가?
.....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의 현상이 그렇다. 
인류 역사가 겪어온 보편적 질서나 가치가 전복되고 전통과의 단절을 가져온 오늘날의 현상이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물의 가치를 인식하는 법을 상실한 채, 오로지 돈의 힘만 믿고 돈을 쫒고 있으며 돈으로 인해 평생 쌓아온 명예가 실추되고 인격이 추락하는 모습을 목도한다.
이 일의 결과가 어떠하든, 나는 앞으로 대중들이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눈에 대해, 또 불가불 작품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예술가들의 형편에 대해, 미술관과 갤러리 오너들의 전문적 역할과 방향에 대해, 예술계를 이끌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단체들의 방향에 대해, 작품을 콜렉션하는 수많은 ‪#‎콜랙터들에‬ 대해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내가 걸어갈 이 험난한 예술의 길에 서서 외로이 되묻게 되는 것이다.
.
'‪#‎예술은사기인가‬?' 에 대하여...!

May 27 Frida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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