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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 60 대작 소고

정택영

대작 소고

Thinking on the 'vicarious exercise painting'

세간에 널리 알려진 가수이자 방송인인 자칭 화수의ㅡ 화투그림 '대작 사건' 헤드라인이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는 기사를 접하고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대작을 완성했다는데 그게 무슨 사건으로 비화되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메이저급 미디어는 물론 거의 모든 미디어들이 이 대작 사건으로 넘쳐났고 이 기사 아래에는 무수한 네티즌들의 댓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대작' 내용을 읽고 들어서 알고 있으려니와, 거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전시장에 버젓이 내다 건 그림들이 거의가 다른 무명화가가 그려주었는데 이 그림들이 과연 그의 그림이라 볼 수 있는가? 수백, 수천 만원에 팔려나간 화투그림들은 과연 누구에게 저작권이 있는가? 이건 '사기'가 아닌가? 이런 내용으로 집약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름 꽤나 알려진 논객들의 비평의 소리와 미술이론 전문가들의 메스컴과의 인터뷰 기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화투그림을 '대작'시킨 사람을 옹호하고 현대미술의 '관행'이라고 비호하는 부류와 이건 있을 수 없는 '사기'행위라고 몰아붙이는 부류로 나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대중들의 반응은 허탈하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하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심지어 미술대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사람조차 다 모를 라파엘과 앤디 워홀의 미술 공장이야기며,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프랑스의 앙리 마티스와 쿠사미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이 조수를 동원해 작품을 제작했다는 전문성 있는 견해를 피력하는가 하면 어떤 논객은 미국의 그린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 대작사건의 판례를 들먹여가며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다는 전문가 뺨치는 해박한 지식을 펼쳐놓고 있었다.

난 지구 반대편에 멀리 떨어져 이 대작 화두를 보면서 벌써부터 일어날 조짐을 예감하고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 제국의 미술판에서도 이러한 대작 사건이 횡행하고 있고 20세기를 강타했던 팝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의 양상은 대중들로 하여금 예술작품의 오리지넬러티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큰 혼돈을 초래한 것이다.

어디까지가 오리지널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복제미술이며 어디까지가 진품이고 어디까지가 위작인지 그 구분법이 점점 모호해져가는 이 시대가 어쩌면 일찌감치 예견되었던 현상임을 2천여 년전에 이 땅을 살다 간 현인들의 기록으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천 수백년 전, 순자는 그의 악론에서 21세기 쯤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후예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적었다.

其服組,其容婦。其俗淫,其志利,其行雜,其聲樂險
기복조, 기용부, 기속음. 기지리. 기행잡, 기성악험.....!

용부(容婦,ㅡ 남성의 여성화(성형을 많이 하는 세대)
속음(俗淫,ㅡ음란하고 퇴폐적인 풍조(마약과 섹스문화의 창궐)
기복조(基服組, ㅡ지나치게 화려한 복장(남녀 구분없는 유니섹스)
지리(志利,ㅡ지극히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심)
성악험(聲樂險, ㅡ광기의 음악(락앤롤, 랩 뮤직)

기원전 3세기 (BC 298?~BC 238?)에 태어났던 순자는 이미 21세기를 일찌감치 내다봤다.
그리고 오늘날 그가 예견한 개인과 사회전반에 걸친 문화 풍속도는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지금 세간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대작'사건의 내용과 '대작'을 주문한 그 유명인은 차치하더라도 그 사건의 중심부에는 '돈'이란 문제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이 불거진 것은 기사내용으로 보아 그림을 대신 그려준 분의 폭로로 표면화된 것으로 보인다.
외국유학까지 다녀온 60대 화가가 경제적 고난에 부딪혀 자신의 작품에 몰입하지 못하고 세간에 알려진 사람이 하청을 준 주문그림을 생산하고 그것도 그림운송비를 아끼기 위해 속초에서 서울까지 오토바이로 운반을 해주었다니 같은 인간으로 참 씁쓸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돈이 궁했던 것이다. 닥치는 대로 해야만 가족의 생계를 부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이 사건을 야기한 핵심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대작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전시로 유치한 갤러리들 또한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한 나라의 예술분야에 발담그고 전문가로서 작가를 검증하고 작품의 조형적 가치와 현대미술의 흐름과 맥을 심도있게 고찰하고 엄선할 책임이 있을 것이며, 이 그림들을 소장할 사람들에게 그 미술사적 가치와 조형적 가치와, 소장가치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했을 일이다.
물론 이 그림들을 수천 만원에 구매해 소장한 콜렉터들의 경제적 능력 또한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예술작품은 소장가에게 팔리고 유통되어야 예술인들이 생존해나갈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한 경제논리이다. 그러나 그런 경제능력을 가진 자들이 가난하고 힘든 좋은 작가들의 작품은 거들떠보지기는 커녕 전시장에도 나오지 않고 이름이 나있고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의 그림에만 눈독을 들이는 태도 또한 이 사건이 불거지도록 가능케 한 실마리가 되었다고 본다. 화투그림을 구입했었다는 한 컬렉터는 '그가 10만원주고 그려온 그림'이라면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다. 결국 수천만 원 주고 산 그림을 속아서 샀다고 실토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예술의 가치와 가격을 혼동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말'은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천리이며 지고불변의 진리이다. 
이 대작사건이 불거지면서 대중 속에 수없이 회자된 말이 백남준 선생이 남기고 가신 예술에 대한 일갈이었다.
나는 유명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남기고 간 그 말을 기억한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그가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대중들은 예술이 사기라는 것을 은연중에 기억 속에 저장해 놓았다. 이제 대중들은 그 유명했던 작가의 일갈을 기억의 샘에서 꺼내어 예술이 사기란 것을 중얼거리며 살아갈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갈인가! 예술이 사기라니....!
그렇다면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로 문명과 문화 예술의 역사를 기록해 오면서 '예술은 사기'라는 내용을 기록해 왔단 말인가!
아무리 유명인이라지만 말은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가 저 세상사람이 되고 그 후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후배들은 어쩌란 말인가?

세상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가 내뱉은 말 ㅡ '예술은 사기 詐欺 다'라는 말을 
나는 이렇게 자조적으로 고쳐 해석해 본다.
'예술은 사기 私嗜,ㅡ 즉 예술은 개인적인 기호'다 라고.
차라리 그 유명했던 예술가가 <예술은 개인적인 기호다> 이런 뜻으로 뇌깔인 말이었으면 하고 나는 소망한다.

이 화수란 분의 대작 사건은 결국 유명세를 등에 업고 주문 그림이 화단의 '관행'이라는 변명을 함으로써 화단까지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의 주문생산에 손을 빌려주고 동조한 화가와 유명세를 의지해 큰 마진을 노리고 합류해온 갤러리들, 갤러리에서 그림을 산 고객들....모두의 합작품이 된 셈이다.

모든 것의 가격은 알면서도 가치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세간의 현실을 나는 통탄한다.

May 18 Wednesday 2016
takyoungjung.com
jungtak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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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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