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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 전문가 시대 - 예술가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택영

<정택영 칼럼> 
'전문가 시대 - 예술가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Takyoung Jung's column -
'The age of experts - Artists do not free give birth.'

1.
바야흐로 전문가 시대를 맞았다.
전문가 시대란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갈고 닦아 타 분야 사람이 범접하지 못하여 그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가 대우를 받고 사는 시대를 말한다. 모든 분야는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인 expert 이 있게 마련이다.
연간 전세계 9천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파리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구상에서 단 한점 밖에 없는 '모나리자의 미소' 회화작품이나 루브르 박물관, 고흐의 집 등을 보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지만 관광객들이 파리를 찾게 만드는 빼놓은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에펠탑이다.
설립 당시, 에펠탑은 예술작품으로 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포스트 모던 이후 제프 쿤스나 클레스 올덴버그, 조너던 보로프스키의 'Hammering man; 망치질하는 사람' 같은 거대한 크기의 모뉴멘털 조각이 예술작품으로 기록되는 것에 비추어 오늘날까지 파리의 명작으로 남아있는 에펠탑은 하나의 거대한 모뉴먼트 Monument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에펠탑이 탑이냐 건축물이냐 상징물이냐 예술품이냐의 경계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전세계의 상징물 중에 파리의 에펠탑이 포함된다는 사실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에펠탑이 예술품이냐 아니냐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에펠탑을 구상하고 설계하여 실현시킨 구스타브 에펠이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1889년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을 쌓아 올릴 수 있었는가 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에펠은 물론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철도를 놓는 토목기술전문가였고 독일과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20여 개의 철도를 건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는 내부 골격 설계도 구스타브 에펠의 작품이었다. 
에펠은 이 탑을 세우기 위해 대충대충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당시 유명했던 정치인과 시인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전문가다운 의지도 대단하지만 세계 최초로 가장 높은 에펠탑을 쌓아올리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고 전문적인 경력과 지식을 쏟아부었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에펠탑을 쌓아올리기 위해 1,700여장의 설계도면과 3,700여장의 부문도면으로 오차가 없는 드로잉과 도면의 밑그림으로부터 시작해 이 탑이 탄생될 수 있었다. 에펠탑은 300명의 인부가 26개월 만에 완성하여 1889년 3월 31일 준공되었다. 1만5,000개의 강철 조각과 1,200만여 개의 대형 리벳이 사용되었으며 당시 대형 크레인이 없던 시대에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곡예사까지 동원하여 마침내 에펠탑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전문가는 거저 태어나지 않는다. 그 분야에 발담그고 해박한 지식과 깊고 넓은 경륜을 쌓아야만 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2. 
지금 한국에서는 잘 알려진 화수(자칭 화가와 가수)의 대작(큰 작품이 아니라 '남이 대리로 그려준' 작품) 사건으로 설왕설래 논란이 무성한 모습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대작사건에 대하여 메스컴 종사자들이나 미술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비평가, 화가 등 전문가들이 다양한 논리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미술비평가들은 대체적으로 19세기 말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나 모더니즘 이후의 마르셀 뒤샹의 아방가르드 미술과 20세기 중반에 출현한 팝아트 계열의 앤디 워홀 등과 현대미술사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미국의 제프 쿤스나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 등의 예를 들면서 이 작가들이 조수들의 손을 통해 협업을 하여 완성한 작품들이 작가의 작품으로 인정된다는 사례를 들어가며 미술계에서는 '관행'이라고 해석하고 있고 메스컴 종사자들도 미술비평가 몇명의 인터뷰와 의견을 인용해 흔히 있는 미술계 '관행'이라고 쓰고 있다.

이 '대작 사건'으로 인하여 대중들의 반응은 미술품이 100% 그 화가의 손에 그려진 유일한 작품으로 알고 있었는데 적지 않은 화가들이 조수들이나 협업자들과의 콜라보로 작품이 완성된다는 미디어들의 뉴스를 보고 '놀랍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미술작품에 대한 실망과 회의를 느낀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 등 제국의 미술분야에서 대작을 해주고 있는 사례를 조목조목 들면서 한국에서의 대작 사건도 큰 문제될 것은 없다는 중론으로 좁혀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을 계기로 대중들도 현대미술의 양상과 몰랐던 음지의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고 대작사건에 대한 외국의 판례들을 통해 현대미술의 특성과 경향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된 듯하다.

3.
메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미술평론가들이 인용하여 언급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는 대체적으로 앙리 마티스부터 시작하여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공장형 화실 factory studio 을 운영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작가들의 예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작가들이 그만큼 예술분야에서 입지를 굳힌 데는 그만한 어린시절부터의 탄탄한 뎃생실력과 드로잉 실력 표현능력을 갖추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오늘날 같은 대표적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 어린시절부터 드로잉과 일러스트레이션, 병리학 관련 드로잉 등 탁월한 뎃생실력을 갖춘 예술가였다. 그는 영국 Goldsmiths college 골드스미스 미술대학을 졸업해 화가로의 길을 정석으로 걸었으며, 1995년 미술계의 권위있는 Turner Prize 터너 상과 1994년 베를린 DAAD 펠로우십을 수상했다. 살아있는 현대 미술의 전설이며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고 있고 영국 현대미술의 부활을 이끈 현대 작가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충격적인 이미지와 엽기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일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는 정통 현대미술 교육과정을 거쳤고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단지 개념미술이란 미명 하에 머리로만 작품을 구상하고 수십여 명이나 되는 조수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의 경우, 그가 말년에 조수를 시켜 작품을 완성했다고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어린시절부터 뎃생실력을 완벽에 가깝게 갈고 닦았으며 회화는 물론 조각과 동판화에도 뛰어났고, 직물의 디자인, 삽화 등 새로운 분야도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그가 89세 되던 말년에 너무 드로잉을 많이 하여 팔에 관절염이 오자 움직이질 못해 조수를 불러 이렇게 저렇게 색종이를 자르라고 자신의 밑그림을 보여주며 지시를 했던 것이지 머리로만 예술적 개념을 생각해내고 모든 것을 밑에 조수들에게 시킨 것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만 한다.

미국의 앤디 워홀의 경우, 그는 폴랜드로부터 미국으로 온 이민자였다. 어린시절부터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잘 했으며 탄탄한 뎃생력을 연마해 사실적인 작품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유명인사들의 얼굴초상화나 드로잉도 많이 했고 그들과 사진을 같이 찍어 전시장에 자신의 작품과 나란히 걸어 전시를 함으로써 점차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가 단순히 실크스크린 인쇄공법으로 마린린 먼로나 캠벨스프 깡통을 다중복제하여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기본기와 뎃생능력,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탁월한 표현기법을 연마해 나갔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제프 쿤스 Jeff Koons, ‘키치의 제왕(King of Kitch)’이라 불리는 그는 어린시절부터 재능을 보여 7세 때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고, 가구상이었던 아버지는 9세 된 아들이 직접 모사한 명화 복제품들을 판매했다. 메릴랜드 미술대학(Maryland College of Art)에서 회화를 전공하였으며 1976년에 시카고 미술학교(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순수미술 학사 과정을 수료했다. 졸업 이후 뉴욕으로 이주한 작가는 MoMA에서 새로운 회원과 스폰서를 유치하는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큰 성과를 보였고, 이후 그의 작품은 팝 아트와(Pop Art)와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경계를 오가고 있으며 Celebration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제프 쿤스는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Hanging Heart (Magenta/Gold)가 사상 최고가에 판매됨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에 등극하게 된다. 뉴욕 뉴 뮤지엄(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의 큐레이터 댄 캐머런(Dan Cameron)은 그의 작품이 ‘기쁨과 철학적인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어린아이들과 철학자를 모두 만 족시키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1980년대에는 제프 쿤스의 작품을 받아들이 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제프 쿤스 쪽으로 자연스럽게 끌려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제프 쿤스는 앤디 워홀의 가장 성공적인 후예라 불리고 있다.

4. 
한국의 경우, 미술대학 교수가 자기 제자들을 불러다가 100호 200호가 넘는 대형 캔버스를 짜고 밑칠을 시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다. 제자들은 그 교수에게 잘 보여야 차후 대학 시간강사 자리나 전임교수 임용 때 밀어줄 것을 담보로 충성을 다해 학교 강의가 끝나자마자 교수 화실로 달려가 캔버스 짜는 조수로 일을 했다고 어느 후배는 실토한다. 그것도 제자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무임금 노동을 한다는 데도 엄청난 경쟁이 도사리고 있었다. 교수의 밑작업 일을 돕던 많은 제자들 가운데 단 한 두명 정도만 대학 전임강사로 임용이 되므로 그 나머지 무임금 조수로 일하던 제자들은 등을 돌리고 떠나 각자의 길로 간다. 이게 현실이다.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한 화가의 경우, 조수를 기용해 기본 작업을 의뢰하는 일은 사실 잘 알려진 일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화단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지배적으로 그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데 있다. 부유한 화가들은 당연히 조수를 고용할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경제논리에 의해 조수의 손에 자기 작품의 밑작업 일을 시킬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가난한 화가는 미술재료 구입부터 밑칠작업, 액자주문, 전시장 운송, 판매가 된 경우에는 소장가 집에까지 운송을 해준다던가 심하면 드릴과 망치를 가져가 벽에 디스플레이까지 해주는 일과 작품비를 수금해오는 작가는 그래도 행복한 화가에 속한다.

갤러리 오너들도 이미 화단에서 명성을 얻고 장사가 되는 작가들만 골라 기획전이나 초대전을 열기 때문에 부익부 현상은 지속될 수 밖에 없고 독창성이 뛰어나나 아직 화단에서 지명도가 없고 경제적 능력이 없고 가난한 화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풍토 속에서 빈익빈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잘 나간다는 작가만 계속 작품이 팔려나가는 구조가 형성되어 궁핍한 화가들의 삶은 갈수록 더욱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5.
이제, 대작사건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목도하고 음지의 한 부분을 엿보게 되었다. 예술은 사기도 아닐 뿐더러 장사를 하는 행위도 아니다.
너나 할 것없이 이윤추구에만 몰입하는 현대인의 처절한 자화상이 이런 현상을 자초한 것이라 진단해 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모든 것의 가격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예술작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러한 대필, 대작, 대화, 짝퉁, 모작, 위작 사건은 끊일 날이 없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 앤디 워홀 같은 작가들은 단지 개념적 미술행위로 자신은 머리만 쓰고 나머지 작업을 모두 조수들이 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그들이 남긴 수천 점의 드로잉 밑작업이나 에스키스들을 통해 얼마나 그들의 기본기가 잘 다져져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미술계 논객의 한분이 화투그림 대작 사건을 두고 오버액션이라고 마치 미술계를 대변이나 하는 듯이 내뱉는 말은 이것이야 말로 오버액션이고 무지의 소치라 아니할 수 없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마티스나 앤디 워홀,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는 다른 분야와 양다리를 걸치며 오간 화가들이 아니라 어릴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며 미국의 정규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줄곧 작품 창작에만 몰두하여 현대미술의 정점에 다달은 작가들임을 알 수 있다. 정석의 길을 걸은 이런 작가들과 화투그림 대작사건을 비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대작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검찰의 수사나 미술전문가들의 조언과 증언을 들어볼 필요도 없이 그가 보유하고 있는 십 수년 동안의 작품 구상을 위한 밑그림(에스키스 Esquisse)이 얼마나 되며 얼마나 기본기가 갖춰져 있는지를 확인해 보면 그의 회화 능력은 쉽게 판명이 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술계 '관행'인지, 사기혐의인지를 묻는 무슨 여론조사가 필요한가?

뿐만 아니라, 목에 힘주고 이름값으로 원로작가 운운하시는 분들의 회화 실력을 알고자 하면 그에게 화지를 건네주고 손에 연필을 쥐어주어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 보라! 그러면 그의 기본 뎃생실력이 어느정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심판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으리라.

무슨 대가입네, 하고 메스컴을 도배하는 유명작가라 하더라도 그의 화실에 작품을 구상하는 일련의 프로세스와 밑그림을 위한 에스키스 작업과 드로잉 작업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개념미술가로 칭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개념미술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는 자도 얼마든지 화가가 될 수 있음을 현대미술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개념으로만 예술행위를 하는 사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적어도 화가의 길을 올바로 걷는 사람이라면 추상미술이던 구상미술이던 개념미술이던 아방가르디스트던 간에 끊임없는 뎃생능력 연마와 작품을 위한 에스키스 작업이 먼저 선행되어야만 한다.
어느날 갑자기 아이디어맨 처럼 작품구상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뎃생의 기본기를 보면 그가 진정한 화가인지 아닌지 금방 판단할 수 있다.

이 기회에 환골탈태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예술의 진정한 의미와 예술가의 자세를 정립해야만 하리라 생각해보는 것이다.

May 19 Thursda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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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tak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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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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