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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미술계의 관행'이란 말에 대한 반론

정택영

<정택영 칼럼>

<'미술계의 관행'이란 말에 대한 반론>
<이른바, #조영남 대작 사건에 부쳐>

<이 글을 쓰는 목적>

최근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화수(자칭 화가 + 가수) 라는 분에 관련한 화투그림 '대작' 사건이 표면화되면서 불거진 사회 전반의 파장은 생각한 것보다 그 충격파가 너무 크고 예술품을 대하는 대중들의 생각과 태도, 작품 컬렉터들과 화가 사이의 골이 깊어질 양상이 보여지고 심지어 무수한 대중들의 미술에 대한 오해와 한국 사회 전반에 파장을 불러온 예술관에 대하여 나는 심히 우려 하고 있다.
한국 미술계에는 뛰어난 미술평론가들과 미학자, 이론가들이 무수히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들조차 이번 '대작사건'의 후폭풍에 대하여 이렇다 할 세계미술 전반의 현상이나 이론적 설명과 명쾌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동분서열하며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측과 '미술계에 대한 모독'이라는 갑론을박으로 나뉘고 무모한 논쟁에 휩싸여 매스컴 종사자들과 대중들은 오히려 미술계의 이러한 현상을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는 표현으로 뉴스를 타전하고 있어 앞으로의 파장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예감케 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예술론이나 미학에 정통한 입장이 아님에도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몰이해와 오류를 간과하고 있는 현재적 상황을 강건너 불 보듯이 좌시할 수 없어 몇 자 적어 본다.

화가는 분명 하나의 직업이다.
직업이란 그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공인된 전문업이란 뜻이다.
화가는 당연히 그가 배태한 그림을 팔아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하는 일이 오직 화가의 일 뿐이라면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 당연히 생활해 나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화투그림 대작사건으로 인해 예술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너무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사회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음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다.
나 자신도 평생을 그림을 팔아서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교육시키고 생활을 해 왔고 앞으로 남은 생애도 그림을 팔아서 살아가야 하므로 지금 당면한 이 사회적 현상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1.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변명에 대하여>

먼저 이번 화투그림의 대작사건에 연루된 분의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 이라는 변명에 대하여 나의 견해를 정확히 밝히고자 한다.
이 비화의 중심에 서 있는 분이나 미술 관련 평론가와 미학자 미술비평 논객 등의 변론을 보면 대체적으로 대작이 미술계 관행이라는 점을 외국 작가들의 사례를 들어 언급하고 있으며 미디어 기자들도 자신의 현장 취재 노력 없이 평론가들이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미디어에 옮겨 발표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리고 예증을 들은 작가들은 공장형 스튜디오 factory studio 에 몇명 내지는 백 수십여명에 이르는 조수들을 고용해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예를 들어 이를 관행으로 정당화 내지는 합리화하고 있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급한 미국의 앤디 워홀 Andy Warhol 이나 제프 쿤스 Jeff Koons,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 Demian Hirst 등은 196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팝아트 Pop art 란 새로운 미술사조에 기반하여 당시의 사회. 문화적 특징과 현상을 예술의 한 형태로 표현했던 작가들임을 주지해야 한다. 
팝아트는 순수미술의 반전과 대중적 통속이미지를 통합시키면서 1960년대 서구 일반사회의 환경을 미술로 수용한 예술 사조로 1954년 영국의 미술평론가인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가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생긴 사조의 하나이다.
원래는 매스컴이 지배하는 대중문화가 만들어내는 '대중예술'을 가리키기 위한 편리한 명칭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후 1962년 알로웨이가 그 의미를 확대시킴으로써 팝아트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문맥 안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미술가들의 활동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팝아트는 대중이 애용하는 물품을 일정한 양식으로 도입함으로써 소비자의 환경과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며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보다는 평범하고 속된 것, 난해하고 애매모호한 것보다는 쉽고 간편한 것을 내세우며 수용태도 면에서 파괴와 부정보다는 긍정과 탐색에 관심이 주어졌고 유머와 위트 등 낙천적 기질이 강하게 보여지는 특정예술이란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말하자면 팝아트의 탄생은 그동안 사회를 지배하던 부르주아 부류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고급예술High Art을 평범한 일반 대중들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저급예술Low Art로 끌어내려 모든 대중이 함께 예술작품을 보고 즐기고자 하는 미학의 바탕에서 탄생되었던 것이다.
팝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의 예술형식이 어느날 갑자기 생성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예술가들의 사회현상에 대한 예리한 성찰과 세계관에 대한 자각과 철학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팝아트 계열의 작품에 대해 대중들이 열광하자 미술품 콜렉터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수요가 급증하자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작가를 도울 조수를 기용하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작품 자체를 조수들이 대작을 해 준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2.
<'화투'라는 오브제가 과연 팝아트에 속하는가?>

이번 대작사건의 쟁점을 야기한 핵심 가운데 하나가 '화투'라는 오브제를 차용함으로써 이 그림이 팝아트적이라고 분류하고 인식한데 기인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팝아트의 핵심 작가들이 차용한 오브제는 마린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J. F. 케네디 등 유명인사들이나 캠벨스프 깡통 바나나, 사람의 혀, 미국 성조기 등 다양한 오브제를 다중 복제함으로써 평범한 사물들을 작품의 주제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평범하고 진부한 오브제들을 차용했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팝아트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대작사건에서 그려진 오브제가 한국사람들이 즐기는 화투장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해서 이 그림들이 모두 팝아트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상당한 오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화투그림에 연루된 화수란 분의 그림이 화투 이미지의 변용을 통해 작품을 하고 전시장에서 발표를 했다 해도 그가 이 화투이미지를 차용하게 되었던 철학적. 미학적 바탕의 근간이 존재하는지 또 최초에 이 화투이미지를 차용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이어져온 이 그림의 원본 밑그림인 에스키스 Esquisse 나 드로잉 Drawing작품들이 얼마만큼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면 그 오리지넬러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에스키스나 일련의 프로세스를 입증할 만한 드로잉작업들이 없다면 이는 그의 작업 프로세스가 제대로 진행되어온 것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투라는 오락의 한 도구에 그려진 이미지라 해서 그것이 팝아트적인 요소를 획득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왜 많은 비평가들이나 그의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했던 갤러리들이 한결같이 화투그림을 팝아트 작가라고 정의 하고 발표를 하여 콜렉터들에게 작품을 판매해왔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화투그림이라 해서 그것이 팝아트의 계보라고 단언하는 것부터가 미술계 전문인들로서의 오류를 스스로 범하고 만 것이라 볼 수 있다.

3.

<왜 '화투 그림'이 많이 팔려나가게 되었는가?>

위에 언급한 대로, 화투그림이 팝아트적이냐 아니냐 하는 미술사적 또는 조형적 해석은 차치하고, 화투그림이 메스컴 발표 대로 2009년부터 대작이 암암리에 이루어져 온 것이라면 무슨 이유로 이 화투그림이 잘 팔려나간 것인가?
이 화투그림에 무슨 미학적 가치가 있으며 소장가치가 있다는 것일까? 이러한 전문가들의 검증은 부재한 채, 오직 이 화수란 분의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고 그 인기몰이를 등에 업고 전시가 이루어졌던 것이고 이 화투그림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장하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근저에는 돈이란 논리가 내재되어 있던 것이다. 돈이 되니까 사게 된 것이다. 만일 이 천박한 화투그림 이미지가 돈이 안 된다면 이 그림을 사다가 집안의 거실이나 방에 걸어두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화투 이야기를 화두 삼아 매일같이 감상하겠는가? 그럴 만한 무슨 미학적, 심미적 가치가 이 그림 속에 들어있단 말인가? 돈이 된다 하니까 투자심리가 발동되면서 화투그림에 관심과 눈독을 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대중심리이고 대중소비사회의 본색인 것이다.
그림에 대한 안목이나 소장가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돈이 된다는 망상이 이 화투그림에 이목을 끌도록 만들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더우기 화투란 소재가 도박으로 이어지면 범죄가 되는 나라에서 화투를 장려할 무슨 특별한 아젠더라도 있단 말인가?

4.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란 문제에 대해>

위에서 밝힌 대로, 팝아트나 키치 아트 경향의 계열에 속하는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은 그들의 작품을 처음부터 조수에게 시켜 완성했던 작가들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만 한다.
그들도 초창기에는 임대한 좁은 지하 차고에서 홀로 밤 세워가며 작업을 했고 또 직접 자신이 내다 팔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들이 이렇게 조수들의 손으로 완성한 작품에 작가 싸인만 해서 팔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들도 처절한 어려움이 있었으며 고난이 있었던 작가들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앤디 워홀은 폴랜드로부터 미국으로 이민을 온 작가였고 거처할 곳이 없었으며 초기에 무척 어렵게 작업을 했던 작가이다.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도 처음부터 공장형 스튜디오를 갖고 작품을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
좀 더 크게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데미안 허스트가 그의 작품을 판매하여 오늘날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게 된 배경을 알아야만 한다.
미술계는 지난 몇 년간 미술 마켓의 급성장과 가격의 지나친 상승과 더불어 최근 경기 악화는 미술 마켓이 하강국면을 맞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메이저 옥션을 통해 미술 마켓은 소위 잘나가는 작가들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강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에 미국이 경제적인 힘으로 현대 미술을 장악하던 분위기였음을 알아야만 한다. 영국에서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국가적으로 예술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게 되었던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골드스미스 컬리지의 학생 16명의 작품을 전시한 1988년 'Freeze'전을 출발점으로 세계의 주요 작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1980년대 현대 미술의 권력가이자 기업가인 찰스 사치가 당시에 YBA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하며 영국의 YBA 작가들은 급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미술가들이 '대작을 하는 것이 관행'이란 언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5.

<결론>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란 것은 크게 잘못되고 오도된 말이다. 
극히 일부 불가피한 작가들이 조수를 기용해 밑칠을 하는 경우는 알려진 대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작품의 대작이 미술계 관행일 만큼 일반화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지금 작업공간이 없어서 지방으로 산 속으로 비닐하우스를 짓고 이사를 하는 가난한 작가들은 부지기수이다.
처절한 가난과 싸워가며 작가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어느 메스컴의 발표를 보면 미술인들의 거개다수가 최저생활비 수입도 안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려운 화가들이 대작을 시킬 조수를 쓴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며 어불성설이다.
또한 화가들의 작업 환경이나 공간이 비좁고 열악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내 경우에도 1986년 서울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 때, 10m 길이의 대형 작품 두 점을 완성해 출품했는데 이 작품이 대형 공간이 있어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 대형작품을 두루마리로 말아 차에 싣고 넓은 들판에 펼쳐놓고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위에서 내려다 보고 드로잉을 하고 고칠 부분을 사진 촬영한 다음 다시 두루마리로 말아 비좁은 작업실로 가져와 좌우 벽면과 바닥에 ㄷ 자로 몇번을 펼쳐가며 수정하고 보완하여 완성할 수 있었다.
꼭 공간이 커야 대작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정신이며 집념이며 철학이다.
그것만이 이 혼탁한 세파를 뚫고 화가로의 길을 묵묵히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확신한다.

May 21 Saturday 2016

Paris에서 정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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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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