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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30. 파리의 유산-그 의지의 산물들

정택영

어둠이 서서히 걷혀가는 새벽 5시 무렵,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쯤 파리의 거리에는 여명을 뚫고 청소차무리가 등장합니다. 대형 원형회전 솔이 장착된 차가 거리 구석구석을 휘젓고 지나가면 강력한 고압살수차가물을 뿌려대고 간밤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바람에 나부끼던 빛 바랜 신문지,오물들, 먹다 버려진 바게트 빵조각들, 기차티켓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지만 새벽녘 청소차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새로운 도시의 얼굴로 태어납니다.


많은 이들, 관광을 마치고 돌아간 사람들은 파리 거리의 애완견들이 마구 방뇨한 배설물에 대해 우려를 표하곤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고압살수차나 고압진공 흡입차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 그런 오물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파리 거리가 늘 깨끗하게 유지되는 까닭을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얼마가 지난 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물의 풍족한 사용, 아! 그것이었던 겁니다. 보통 세계의 도시에는 상수도와 하수도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곳 파리에는 하나가 더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수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하 어딘가에 거대한 물탱크를 곳곳에 설치해 놓고 비가오면 빗물을 받아 저장을 해놓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그 물로 거리를 마음껏 물을 흘려 보내며 오물을 휩쓸어갑니다. 마치 아스팔트 위의 작은 실개천 같은 개울물이 흐르면서 서정의 정취를 더합니다.식수부족이 조만간 지구촌 사람들을 위협할 것이라는 매스컴의 경고가 우리의 미래를 염려하게 하지만 파리의치수행정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고 친화적으로 다가가며 그 후엔 환경을 지배합니다. 결코 환경에 원인을 돌리고 잘못된 책임을 그것으로 돌리는 비굴한 모습을 보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와 운명은 우리의 손보다는 의지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손은 의지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포브스는 말합니다. 손으로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 없이 행한 일은 훗날 상상치 못한 결함으로 나타나 해를 주기도 하며, 결국 이를 무너뜨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과 의지의힘이 곧 한 나라의 힘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파리의 거리를 거닐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특히나 광고 간판이 눈에 별로 띄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원자력기술이나 화학, 우주공학 같은 첨단 IT테크놀로지 분야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달해 있음에도 이나라는 여전히 농업국가이며 농수산물이 자급되어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모습을 봅니다. 거리는 관광객들과에트랑제들로 넘실대며 자유의 물결이 흐르고 있지만 과다한 상업지구나 건물을 도배한 것처럼 보이는 광고판도배건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인생관이 분명하고 삶의 철학과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기에 그런 듯합니다. 그들에게는 분명한 법규제가 존재하고 시민들은 분명히 그것을 지켜야 하며 그것을 꼭 지키겠다는 의지가내면에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해서는 안될 법규를 어기고 뇌물을 써서 우격다짐으로 위법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파리라는 도시는 약속된 법규와 계획에 위배됨 없이 유지되고 가꾸어져 가고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두가 말하듯, 파리는 관광도시임이 분명합니다. 파리 사람들에게도 미래가 있고 그 설계가 있으며 그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파리 거리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손이나 삽이 아닌 의지로 일구어낸 유산, 그 찬란한 유산을 갈고 닦는 모습을 보기 위해 지금도 사람들은 파리로 발길을 향하는 것일 것입니다.


월간에세이 2011년 6월호

정택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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