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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 15. 소유와 기부문화

정택영

파리팡세 : 15. 소유와 기부문화 

 



 

 

'인간의 머리는 인간을 달에까지 보냈지만, 인간의 가슴은 원시인의 그것과 틀린 것이 없다”고 에리히 프롬은 ‘소유와 존재’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에워싼 첨단문명이 하늘을 찌르듯 발전해 간다 해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은 태초에 있었던 인간성, 그 본래의 가슴과 인간적 심성, 그리고 인간의 조건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것이 사실입니다. 터치스크린이나 눈의 수정체 인식센서로 모든 것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사이버 세상에 살아도 여전히 우리는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하며 따스한 체온으로 스크린을 터치해야만 작동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한 현대인들,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현대인들은 방황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가치는 소유하고 부를 축적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맹신하며 온 힘과 정열을 바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소유의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고 나면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를 뒤늦게 깨닫고 통탄하게 됩니다. 그의 삶인 그 존재가 상실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약속”이라고 여기고, 에리히 프롬은 이 위대한 약속이 틀렸다는 것을 현대 사회의 여러 징후들에서 볼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와 행복해 지는 문제에 집착하고 살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한 개인이 행복해 지는 가장 필수조건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정체성은 항상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위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삶의 궁극적인 문제는 바로 정체성, 그것입니다.
소유와 존재, 그 양자간의 다른 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소유란 사용에 의해 감소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지적 창조력이나 이성, 사랑 같은 존재적 가치는 실행하면 할수록 증대됩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가고 이 비교를 통해 상대적 빈곤, 박탈감이 인간을 괴롭힙니다. 삶의 두 방법에 있어 존재양식의 궁극의 목표는 보다 깊이 아는 것인 반면, 소유양식의 목표는 보다 많이 아는 것입니다. 소유보다 존재의 정체성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서구인들에 의해 나눔과 기부의 미학인 노블레스 오블리쥬가 탄생하고 오늘날에는 사회 지도층에게 그 위치에 맞는 높은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파리 남쪽 자뎅 가에 위치한 시테 국제 대학생기숙사관을 거닐며 소유와 기부에 대한 생각을 더욱 깊게 합니다. 이미 1920년 대부터 각 나라의 기숙사관이 지어지기 시작하여 미국, 영국, 러시아, 모나코, 쿠바는 물론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등 40여 개국이 자국의 파빌리온을 지어 자국 유학생들이 큰 비용부담을 들이지 않고 유학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지도자, 리더들이 나오고 있음을 봅니다. 다른 나라의 건물은 한 개인의 기부에 의해 지어진 기숙사관이 대부분임을 알고는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이곳에 아직 한국관은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의 핵심은 바로 그 건물을 짓고 난 후의 소유권 개념에 대한 갈등과 집착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소유는 영원히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벌써부터 알았습니다.
일생을 마친 뒤에 남는 것은 모은 것이 아니라 뿌린 것이라 말한 제라르 헨드리의 말을 깊이 새겨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파리 시떼 유니버시떼 국제학생기숙사단지 한국관을 상상하며-

 

Paris에서~

【정택영(화가/프랑스예술가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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