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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자료의 오기(誤記) 실태, 심각하다

김달진

-미술자료의 오기(誤記) 실태, 심각하다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지난해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2011 미술분야 만료저작물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를 서울아트가이드 2월호(114쪽)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본 연구소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기존 문헌들이 얼마나 많은 오기(誤記)를 범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도록이나 단행본, 백과사전, 미술인 관련 인명사전 등 출판물을 통해 그 실태를 살펴보았다.

우선 작고 작가(사망년 1965년 이전)를 대상으로 정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작가에 대한 생몰년 등이 문헌마다 다르게 게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화가 이달주(李達周)의 경우 1964년 유작전 이래 처음 열린 회고전 ‘황폐한 시대의 요절작가 이달주전’(가나포럼스페이스, 2004) 도록에는 생몰년을 (1920-1962)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1)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에서는 출생년을 1921년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에 1964년 수도화랑에서 열린 ‘故 이달주 화백 추모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리플렛에서 확인해 본 결과 1920년이 정확한 연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묵로 이용우(墨鷺 李用雨)의 경우 『묵로 이용우 화집』(동아일보사, 1982)에 기재된 생몰년은 (1902-1952)인데 반해,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1953년 사망했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에 1953년 대한미술협회 주최로 국제구락부에서 열린 ‘故墨鷺畵伯유작전’ 리플렛 서문에서 확인해 본 결과 “지난해 지상에 報道로 알리워져있지만…불행히도 급격한 病魔로因하여 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은…”라고 적혀있어 1952년이 작고한 연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김종태(金鍾泰)의 작품 <노란 저고리>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공식적으로 작가의 생몰년을 (1906-1935)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사망년을 1938년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수암 강용범(康用範)의 경우 제주미술인작품집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주미술인작품집2006』에서는 1953년에 작고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에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 기당미술관의 관계자와 통화해 본 결과 “기당미술관을 지어 기증한 재일교포 사업가인 기당 강구범씨 친형이 바로 수암 강용범으로 1952년에 별세했다”는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조각가 차근호(車根鎬)의 경우 「근대문화유산 조각분야 목록화 조사연구 보고서」(문화재청, 2011)에서 4.19 학생의거 기념조형물 공모 당선자로 내정되었다가 김경승에게 낙찰이 결정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기록과 함께 생몰년을 (1925-1960)이라고 수록하고 있으나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에서는 (1928-1961)이라고 게재되어 있었다.

백과사전, 도록, 단행본, 조사보고서 뿐만아니라 작품을 거래하는 경매도록도 마찬가지이다. 두산 정술원(鄭述源)의 경우 『A옥션-제3회근·현대및고미술품경매』(2007) 도록에서 생몰년은 (1885-1959)년인 반면 『제13회 I옥션 sale』(2011)에서는 (1885-1955)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에 수소문 끝에 영일정씨판결사공파 후손에게 확인해 본 결과, 1955년에 작고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후손 정태식씨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어릴적에 한 두번 뵌 적이 있으며 선대 할아버지의 작품에 대한 평한 글을 보면 방랑생활을 했다고 나와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원래 관직생활을 해오던 집안으로 부유했으나 일제강점기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생몰년에서 1,2년 오차는 너무나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역사를 왜곡하는 과오
한국전쟁 중 피랍 또는 월북한 작가의 경우 생몰년 표기는 더욱 제각각이다. 문헌에 따라 월북, 피랍 당시를 몰년으로 기재하는가 하면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월북작가 이쾌대(李快大)의 경우 경북 칠곡 출신으로 지역 화가의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한 ‘이쾌대전’(대구미술관, 2011)에서는 생몰년을 (1913-196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1913-?), 1996년 열화당에서 발행된 도록 『이쾌대』에서는 1987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나와있다. 이에 북한에서 발행된 리재현의 저서 『조선력대미술가편람(증보판)』(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에서 확인한 결과 1965년 2월 20일 사망했다고 정확히 수록되어 있다. 더욱이 책 서문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이 책에 지난 시기 창작공로가 있는 문석오, 리쾌대 등 미술가들도 놓치지 말고… 가르치심을 주시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추적한다고 해도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서양화가인 윤희순(尹喜谆)의 경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생몰년을 (1906-1947)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에 생전에 그가 남긴 저서 『조선미술사연구』(서울신문사, 1946)에서 작가약력을 찾아봤지만 수록되어 있지 않아 1994년 동문선에서 증보 발간된 복간본 『조선미술사연구』과 2001년에 열화당에서 나온 『조선미술사연구』에서 작가 약력을 확인해 본 결과, 동문선판에서는 생몰년을 (1902.9.9-1946.4.5)으로 수록한 반면 열화당판은 (1902-1947)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동문선판 서문에 적힌 “八一五, 돌맞이를 하면서”라는 글귀 역시 정확한 연도가 없으니 확인할 방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산 박기돈(朴基敦)의 경우 ‘대구미술100년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00) 도록에서는 사망년을 1945년으로, ‘대구의 근대미술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09)에서는 사망년을 1948년으로 기재하고 있다. 이에 박기돈의 옛집이 대구 계산동에 있다는 정보를 찾아 대구 중구청에 확인한 결과,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본청 관할이 아니므로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현재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는 옛집의 박기돈 소개 안내문에 따르면 생몰년을 (1873-1948)이라 표기하고 있지만 이 역시 건물 소유주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정보에 불과했다. 이에 소유주로부터 기산 선생 제자분의 연락처를 받아 연결을 시도했지만 최근 작고했다는 소식만 듣게 되었다.

이외에도 동일한 작품이 문헌마다 다르게 수록되는 경우도 있다. 전북도립미술관 소장품인 박호병의 <사계산수도8곡병>은 ‘한국서화삼백년전 II’(솔갤러리, 2006) 도록에서 원작과 다른 배열로 잘못 수록되어 있었다. 또한 ‘전북서예의 역사와 동향전’(전북도립미술관, 2005)에 출품된 박성우의 <10곡병>이란 작품은 전주문화원 동국진체연구소에서 발행한 ‘전북서예의 재조명전’(전주문화원 동국진체연구소, 2008) 도록과 서로 다르게 배열되어 있었다. 이에 미술관 관계자는 “개인소장품이라 어느 것이 맞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으며 전시 개최 당시 사진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미술관, 박물관 등 기관 소장품이 아닌 개인 소장품일 경우 그 이상 조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몇몇 사례를 통해 문헌에 남아있는 오기의 실상과 그 심각성을 지적해 보았다. 이번 조사를 통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바로 정보 불감증이다. ‘정보의 홍수(Information Overload)’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아무런 검증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분별해 낼 수 있는 안목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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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자료를 제공하고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주관하는 「국가DB사업」으로 구축(http://people.aks.ac.kr)
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년 발행, 전 27권

_ 자세한 내용은 서울아트가이드 3월호 136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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