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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고 힘든 작업이지만 역사는 그렇게 기록되는것

김달진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 발간사

동시대를 가리키는 용어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정보화시대’를 들 수 있다. 특히, 우리처럼 인
터넷망이 발전되고 관련 기술력이 세계 최고인 국가에서는 자료나 정보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
고 파급되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보급율을 비롯한 인프
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지라도 원본의 정확한 기록과 관련 자료들이 축적(蓄積)되어 있지 않는 상
황에서 그 가치를 미리 논한다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사회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급속한 경제개발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우리 스스로를 돌
아볼 수 있는 수많은 관련 자료들이 망실되거나 사라져갔다. 특히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언어는 물론
우리의 정신 문화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은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라는 당위 아래, 미개하다는 명분 아
래 폐기처분 되었다.

지금 한국 미술계는 매우 과도기적인 시기에 놓여 있다. 고도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우리 미술계
와 관련 분야는 지난 세기에 비해 그 범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비약적인 팽창을 가져왔다. 미술작
가, 전시회, 전시공간, 관람객, 미술시장 등의 증가와 성장은 미처 그 성장통을 준비할 새도 없이 매우
빠르게 그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관련 정보들과 자료의 양은 정리가 불가능할
정도며, 다양해지는 정보의 스펙트럼은 미처 그 체계를 수립하기도 전에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지금
이라도 다양해지는 수많은 미술정보를 어떻게 분류, 정리, 기록하여 후세에 가치 있는 자료로 남길 것
인가에 대한 고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미술활동의 주체가 되는 미술작가를 어떻게 자료화 하여 역사에 남길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서화가들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자료집으로는 1928년『근역서화징
(槿域書畵徵)』, 1959년『한국서화인명사서(韓國書畵人名辭書)』, 1969년『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
觀)』, 1978년『청구서화가명자호보(靑丘書畵家名字號譜)』, 2000년『한국서화가인명사전(韓國書畵家
人名事典)』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기존에 발행된 인명관련 자료집들은 수록미술인들을 조선시대
말 정도로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 전후 동시대 현대미술가들을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은 4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잡지에 나오는 명화 한 장을 뜯어 모으는
취미에서 시작되었다. 1972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보면서 우리 근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 예를 들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이상범, 변관식 등등은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었지만 수많은 대다수 화가들은 겨우
이름만 존재할 뿐이지 더 구체적이고 소상한 자료를 찾아볼 곳이 없었다.

이때 가졌던 아쉬움으로 1978년부터『월간 전시계(月刊展示界)』에 근무하며 1979년‘근대 작고
미술가 인명록’을 6회 연재하였고, 1980년 2월호에는‘70년대 작고미술인’을 수록하는 등 보다 많은
미술가들이 기록되고, 그리하여 역사에 남게 되기를 갈망했다. 직장을 옮겨 1981년부터 199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 근무할 당시에는 미술인카드 작업을 통해 우리나라 작가들의 활동사항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였고,『 한국미술연감(韓國美術年監)』,『 열화당 미술연감(悅話堂美術年監』에 정보
를 제공하는 등 미술인 인명록 발간에 힘을 보탰다. 이런 노력은 2002년 월간『서울아트가이드』를창
간하여‘미술계인명록(美術界人名錄)’이라는 코너를 통해 2006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무려 30
회 동안 비창작미술인 연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번에 발행하게 되는『한국미술인인명록(韓國美術人人名錄)』은 크게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창
작 미술인과 관련 업무를 주로 하는 비창작 미술인으로 구분했다. 창작 미술인의 시기적 구분은 크게
1850년에서 1960년 출생까지의 근∙�현대 미술인을 망라했으며, 이를 다시 작고 작가와 생존 작가로
분류하였다. 비창작미술인은 그 특수성을 고려 1970년 출생까지 포함하였으며, 그 범주는 관련 학자,
전시기획자, 작품보존전문가, 갤러리스트, 미술저술가, 기관 및 미술계 인사 등을 망라하였다.

이번 인명록 작업 연구진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미술 전 장르의 근현대 작고미술인이었다. 이런 관점을 갖게된 배경에는 우리 역사에서 수많은 미술가들이 존재했지만 후세에 진정한 작가로 평가받고 미술사에 기록되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며, 아울러 생존의 유명세나 고가에 거래가 되는 작가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작가들은 타계 후에도 연구자들이나 관련 종사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역사에 기록되는 영화도 누릴 것이지만 이들 뒤에는 평생을 미술가로 살며 작품을 남겨 놓은 수많은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별은 별과 함께 있을 때 빛이 난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지금 우리 앞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유명작가 들은 시대를 같이 고민했던 다른 작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존 작가 역시 광범위하게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인명록이 부족하다. 대표적이었던『한국미
술연감』은 1977년 창간하여 전시 기록보다는 작가의 약력을 찾아보는 연감으로 활용이 컸지만 1997
년 이후 재정적 어려움과 미술계의 무관심 속에서 중단되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미술 월간지인『월간
미술 연감』도 권말부록으로 미술인명록을 발간하였으나 1999년 이후 중단상태다. 본 인명록에서는
이런 아쉬운 점을 또한 감안하여 1960년 출생 이전의 한국화, 서양화, 조소 분야 생존 작가를 최대한
수록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최근 미술계의 대표적인 지형변화 가운데 하나인 미술관련 유관 종사자들을 비창작 미술인
에 포함시켰다. 미술계의 전문 종사자들인 이들의 정보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소개되었지만 이번 인
명록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그 기초체계를 확립함은 물론 역시 가능한 한 많은 관련 전문가들이 소
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작업은 지속적으로 보강할 계획이며, 세분화된
전문 영역에 발맞춰 분류 및 데이터베이스화 할 예정이다. 관련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 부
탁드린다.

거의 반 평생을 미술 관련 자료에 파묻혀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
명록 역시 발간을 앞두고 많은 아쉬움이 스친다. 우선 가능한 한 많은 작가들을 수록하고 싶었지만 물
리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신문 부음난이나 구술,
관련 기록들을 통해 작고 작가들을 열심히 파악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지만 여기에 포착되지 않은
작가들 또한 많았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를 보완
하고 추가할 것이라는 다짐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약 7개월 여를 이번 인명록 발간에 매달리면서 느꼈던 큰 문제점은 작가들이 자기 약력 관리에 너
무 무책임하고 소흘하다는 점 또한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지점인 것 같다. 특히 개인 약력에 출생년
도와 출생지, 이름의 한자표기, 학력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조차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함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작가 본인은 물론 후세의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불성실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확한 전시년도 미표기, 전시명칭, 전시장소, 각종 공모전의 수상년도 등도 표기가
제각각이어서 이를 통일시키는데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번 기회에 미술계가 의지를 모아 가
칭‘미술가 표준 약력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해본다. 아울러 이를 모든 기관, 모든 작가들이 공유한
다면보다효율적이고정확한자료들이축적될것이고이는고스란히우리의자산이될것이다.

이번 인명록 발간을 통해 다시 한번 질곡의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의 삶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
가 되었다. 이들의 삶은 곧 나의 삶이기도 하다. 더딘 작업이고 힘든 기간이었지만 이것이 쌓여서 한
국미술은 조금 더 풍성해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와 같은 뜻을 품었지만 여
건이 허락치 않아 관련 정보들을 자료화 하지 못하는, 못했던 현인들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책임이
더 무겁다. 이 책을 그들의 노고 앞에 부끄럽게 내민다. 인명록 발간에 큰 도움을 준 문화체육관광부
와 힘든 작업에 끝까지 동참해준 연구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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