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술과 함께한 화가들

김달진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술의 신(神)은 '디오니소스(Dionysus)'로 전해지고 있다. 이 그리스 신화의 주신(酒神)은 로마시대로 오면 그 명칭이 '바커스(Bacchus)' 또는 '바쿠스' 로 변하게 된다. 이 신이 만든 것이 술로 그 때문에 그것을 '바커스의 선물'이라고도 한다. 주신 디오니소스는 신들의 주인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를 숭배하는 트라키아지방에서 그리스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커스는 대지의 충작을 관장하는 신으로 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각지에 포도재배와 양조법을 전파했다고 한다. 이집트 신화에도 주신이 있다.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는 누이인 이시스와 결혼을 하고 이집트를 통치한 왕이었으나 동생 세트에게 살해되어 사자(死者) 나라의 왕이 된다. 이 신은 농경의례와 결부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데 보리로 술을 빚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술과 인간의 관계는 역사만큼 밀접하였고 술이 없는 예술을 상상하기란 삭막하다. 달을 껴 앉고자 취중에 강물로 뛰어 들었다는 중국의 시선(詩仙) 이태백 이야기가 있다. 술의 취기는 개인마다 편차가 크지만 의기양양한 기분, 무슨 장애물이라도 물리칠 자신감,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지고, 실제와 공상세계와의 중간에 있는 듯 생각되는 인간의 창조력이 보통 때보다 더욱 고조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 창조적 순간에 필요한 자신감과 해방감이 있는 듯 하다.

유명한 '달마도' 작가인 조선 인조때 화원 김명국은 술독을 끼지 않으면 먹을 갈지 않았고 취흥 없이는 붓조차 잡지 않았다는 주호(酒豪)였다. 달마대사는 일본인들이 딱 좋아하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래서 일본으로의 통신사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김명국은 어느 일본인에게서 별채에 벽화를 그려달라는 주문과 천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취흥이 오른 김명국은 금을 녹인 물을 입에 담았다가 벽에 뿌려 버렸다. 화가난 일본인이 그를 죽이려 하자 김명국은 그에게 술을 더 가져오라고 한다. 술동이가 바닥이 보일 때쯤 그는 신나게 붓춤을 추면 흘러내린 금물로 산수인물화 한 장을 그렸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화가 오원 장승업은 일자무식의 가난한 화가였지만 타고난 천재화가로 산수, 인물, 영모, 절지, 기명 등 다양한 방면에 좋은 작품을 남긴 명인이었다. 그는 주색을 매우 좋아해서 미인과 감미로운 술이 옆에 있어야 득의의 작품을 내놓았다. 오원이 도화서에 들어가 고종황제가 그에게 병풍을 그리라고 명하면서 하루 서 너 잔씩만 나누어주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한 달을 못 넘기고 창덕궁을 빠져 나와 술집을 드나들다 걸려 왕의 진노를 샀던 일이 전해진다.
현대작가로 간결한 선과 요약된 형태로 단순 소박한 아동화같은 화풍을 남긴 장욱진도 소문난 애주가였다. 그의 작품은 동심과 가족애가 강하고 현대의 프리미티브 화가로 평가되며 제작과 인간적인 면모에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 본인의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1979년)>에서 '폭음! 폭주! 벌써 40년의 주납을 쌓고 있다. 나의 지나간 40여 년은 오직 그림과 술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림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휴식이었던 것이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리겠다' 라고 적고 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1906년 파리로 나와 활동했던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 - 1920)는 항상 개성적인 우수에 잠긴 인물화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서민적인 초상, 만년의 귀부인상, 관능적인 누드화에서 선이 명료하며 목이 길고 무엇인가를 찾는 듯한 쓸쓸한 시선이 우리를 붙잡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평생 가난과 술과 아편, 그리고 결핵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다가 36세에 쓰러진 불우한 화가였다. 그는 병과 빈곤과 알코올 중독으로 신음하면서도 몽파르나스에서 군림했던 정신적 귀족, 마지막 보헤미안이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활의 에피소드들은 로맨틱한 전설을 만들어내고 애수에 젖게 하는 소설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낳게 하기도 했다.
모딜리아니와 같은 시대 에콜드 파리파에 속한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이었다. 열 살 때부터 벌써 술집을 드나들고 17세 때에는 요양소 생활을 해야 할만큼 술이 심했고 술버릇도 나빴다. 음주벽을 고치려고 잡은 화필이 뛰어난 그림을 그려 주위를 놀라게 하였으나 전후 아홉 번의 요양소 생활을 해야할 정도의 술고래였다. 위트릴로는 어머니가 화가였으며 파리의 뒷골목, 거리 풍경을 많이 남겼다. 그는 건물이 자아내는 생활의 역사와 풍물의 맥동, 창 하나 하나의 숨결을 그린 전형적인 건물의 화가였다. 건축물의 선을 자로 긋는다든지 석고를 섞어 벽의 색감을 내려 한다든지 해서 현실감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술을 사랑하는 화가들이 많다. 그리고 술은 많은 예술가들의 동반자로써 걸작을 낳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술 때문에 더 많은 명작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한 작가도 있으며,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술에도 절제의 미학이 필요하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