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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대우받는 나라-유럽 미술관 산책기

김달진

오래된 낡은 건물의 전시장 마룻 바닥에서는 소리까지 났지만 아이들은 조용히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랐다. 미술관으로 데리고 와서 서로 다른 몇 곡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TGV를 타고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투르미술관에서 본 품격 높은 수업 광경이었다. 비단 이곳에서만이 아니라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니스의 마티스미술관, 독일 베를린의 게멜데갤러리 등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그리거나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앉아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질문을 던졌다. 우리 나라의 전시관람 풍경인 일렬로 줄을 서서 지나가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보았던, 작품 앞에 이젤을 세워두고 모사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의 적극적인 미술관 활용과 예술가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3월 한 달간 파리에 머물며 5개국 12개 도시의 36개 박물관·미술관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처음 나가는 유럽이라 과도한 욕심으로 강행군을 했지만, 덕분에 참으로 많은 것을 체험했다. 미술협회에서 만들어간 유네스코 아티스트 카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미술관에서 무료 입장 또는 할인 혜택을 받게 해주었는데, 이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미술인이라는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미협 회원으로서 이번에 회원증 덕을 톡톡히 보았던 것이다. 언제인가 국내에서도 미술가들이 고궁이나 미술관을 무료로 입장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의 테이트모던은 새로운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년 5월 템스 강변 서남쪽에 있던 전기발전소를 개조해 개관하면서 현대미술의 메카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억 3,400만 파운드를 투입한 테이트모던은 연간 5,000만∼9,000만 파운드의 직접적인 경제효과와 2,400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산업적 측면에서도 그 역할이 큰 점을 내세우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를 겨냥한 7층 건물로 내부는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어 있으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관람시간이 밤 10시까지 연장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획전이 열리는 1층과 4층 <세기의 도시(Century City)전> 외에 3층과 5층에서는 테이트모던의 소장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 방식이 이채로웠다. 즉 네 가지 주제로 각 11개에서 14개의 방을 꾸몄는데, 전시 방식이 일반적인 연대별·국가별·양식별 등의 전통적 분류방식이 아닌 주제별 분류로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작품이 한 방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또한 한 작가의 작품을 각기 다른 방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테이트모던은 새롭게 변모하는 미술관의 전형을 세워 가고 있었다.

퐁피두센터는 2년간 보수를 거쳐 미술관, 영상 전시공간, 음악 음향연구소, 산업창조센터, 정보도서관이 어우러진 미래 지향적 종합문화공간으로 최근 재개관했다. 광장 입구의 높은 좌대 위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에 있는 작품 <빨간화분>의 작가인 장 피에르 레이노의 <황금화분>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이 모든 예술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화분으로 퐁피두센터의 지향점을 대변한다고 여겨졌다.

외국에 가면 그 나라의 역사를 알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 것은 필수 코스다. 여행을 다녀온 후 밀린 일들로 바쁘다가도 바티칸박물관, 우피치미술관,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행렬과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앞에 선 인파가 눈앞에 가물거린다. 그것이 곧 국가의 수익과도 직결되는 무형의 재화라는 점 때문이다. 세계는 이제 문화산업으로서의 미술관이 중요시되는데 미술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 머나먼 이야기다. 초대 문화부장관이 미술관 1,000개를 세우겠다던 정책적인 구호가 이 봄날 꽃잎처럼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정부의 기부금 모집규제법을 ‘문화말살’ 악법으로 규정하고 ‘문화예술기부금장려촉진법’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즉 이 규제법 개정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고 일단 유보로 돌아선 것이다. 문화예술계로 흘러가는 약간의 후원 활동마저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준조세의 부담금으로 규정하려는 어리석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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